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 2가 젊음의 거리. 골목마다 입간판 천지다. 시민들이 입간판을 피하려다 발을 헛디뎌 비틀거리기 일쑤다. 입간판의 강한 조명 탓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보도 위 입간판은 사실상 모두 불법이다. 그런데도 업주들이 입간판을 경쟁적으로 설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각 구청에서 단속을 철저하게 하지 않아 입간판 문제가 빠른 시일내에 해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서울시내 골목 100m당 불법 입간판 평균 40여개

서울의 대표적 번화가인 홍대 거리, 목동 오거리, 종로 젊음의 거리에는 골목 100m당 평균 40여개의 입간판이 늘어 서 있다. 한경닷컴 스내커 대학생 기자단이 최근 조사한 결과다. 홍대 상상마당 인근 골목에는 42개, 목동 오거리 골목에는 38개의 입간판이 설치되어 있다. 종로 젊음의 거리에 설치된 입간판은 47개에 달한다. 유동인구가 밀집된 골목일수록 입간판이 많다. 이렇게 설치된 입간판 대다수는 내부에 공기를 채우고 조명을 켜는 에어라이트와 엑스(X)형 받침대에 천을 연결하여 세워두는 엑스배너다.

기자단 조사 결과, 번화가에 설치된 불법 입간판 1000개 중 카페를 포함한 음식점 홍보에 사용된 입간판이 43.4%로 가장 많았다. 대부분 해당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메뉴를 소개하는 엑스배너였다. 주점(21.7%)과 노래방(15.2%) 광고에 사용된 입간판의 경우 에어라이트의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마사지, 당구, 찜질방, 통신사, 헤어샵 등 다양한 업종에서 호객 목적으로 입간판을 사용하고 있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따르면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입간판은 설치 자체가 불법이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에는 이동할 수 있는 광고물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일부 입간판의 경우에만 시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시·도 조례에 따라 설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지난해 행정자치부에서 발표한 개정안에 따라 각 시·도 및 시·군·구에서 조례가 제정될 경우 건물 부지 안에서도 상가 반경 1m 내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높이가 1.2m 이하인 입간판만 설치할 수 있다.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업주들이 입간판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제작 기간이 짧고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입간판 제작 업체에 따르면 에어라이트 제작에 3, 4일이 소요되며 비용은 약 20만 원이 든다. 엑스배너의 경우 주문 후 서너 시간 내에 제작이 가능하다. 비용도 7만 원 정도로 매우 저렴하다. 입간판은 일반 간판이 보이지 않는 비좁은 골목에서 가게의 위치를 알릴 수 있어 홍보 효과가 크다. 영업 상황에 따라 운반과 관리가 쉬워 번화가 업주들 사이에서 인기다.

 


서울 서교동의 한 번화가 골목. 보행자 키보다 큰 불법 입간판들이 줄지어 있다. / 사진=권민지


불법 입간판 이용 업주, 제작 업체  “불법인 걸 알지만…”

제작 업체의 대다수는 입간판 관련 시행 법령을 알면서도 불법행위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서울 관철동의 한 간판업체 관계자는 “허가가 나지 않는 에어라이트 설치가 불법인 걸 알면서도 다들 제작한다”며 “규격이 크면 클수록 비용이 늘어나니 받아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입간판을 이용하는 업주들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강남에서 주점을 운영 중인 임 모 씨(43∙남)는 “아무래도 입간판 제작이 홍보에 도움이 된다"며 "한 명이라도 더 눈길을 끌 수 있다면 우리로선 큰 이익”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다른 상가들은 다 하는데 우리만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생계형 홍보 수단으로 입간판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했다.

불법 입간판 경쟁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비단 입간판 미설치 업주뿐만이 아니다. 번화가 골목 상당수는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불명확하고 폭이 좁은 이면도로인데, 가뜩이나 위험한 이면도로 위에 설치된 불법 입간판은 시민의 통행을 방해하고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부에 조명이 들어 있는 에어라이트의 경우 빛 공해까지 일으키며 지나가는 시민을 괴롭힌다. “너무 불편해요. 대체로 그런 것들이 유흥가에 있어서 안 그래도 사람도 많은데 그런 것까지 있으니까 다칠 뻔한 적도 많거든요.” 서울 종로에 사는 대학생 이정현 씨(22)는 번화가 보도에 설치된 입간판에 대한 불만을 이렇게 토로했다.

 

현실적으로 단속 어려워 … 행정자치부, 주민 주도 불법 유동광고물 정비

서울시가 불법 입간판 문제를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 도시관리과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 2월 불법 입간판 누적 정비 건수는 마포구 178건, 강남구 183건, 종로구 365건으로, 자치구의 단속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기간 서울시 전체 누적 정비 건수는 3531건에 이른다.

각 구청은 업소를 상대로 불법으로 설치된 입간판에 대해 1차 자진 철거를 요청하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강제 철거를 집행한다. 철거한 입간판을 상인들이 찾아갈 때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단속을 진행하고 있다. 불법 입간판이 적발되면 설치 업주는 평균 15만 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인들은 과태료를 내고 입간판을 찾아가지 않고 아예 새 입간판을 제작, 설치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마포구청 관계자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과정이 맨 나중으로 되어 있으니 상인들은 과태료 15만원 무느니 5만원 주고 새로 설치한다”라며 단속 절차에 따른 어려움을 토로했다.

행정자치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5월 17일 불법 유동광고물 근절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지역 주민들이 주도하여 불법 광고물을 신고하고 정비하는 방식이다. 보도에 무단 설치된 입간판을 포함하여 불법 현수막, 벽보 등 불법 유동광고물이 중점 정비대상이다.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불법광고물 모니터단은 생활불편 스마트폰 신고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불법 유동광고물을 신고한다. 행정자치부는 신고실적이 우수한 모니터를 선발해 보상품을 제공하여 신고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 매달 불법 유동광고물 정비 실적을 공개하고 평가해 우수한 기관 또는 직원을 표창할 예정이다. 우수 지자체에는 간판개선 시범 사업비를 지원할 방침이다.
*한경닷컴 스내커 대학생 기자단이 직접 취재하여 작성한 기사입니다.

권민지 한경닷컴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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