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인 자동차와 갖고 싶은 자동차는 일치할까?

 

자동차는 기계 부품들로 이루어진 ‘달리는 기계’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좋은 기계’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당연히 튼튼하고 적은 에너지로도 큰 힘을 내야 하고, 또한 오랫동안 고장 없이 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처럼 여러 덕목(?)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기계가 가장 좋은 기계의 조건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계로서의 자동차 역시 이러한 ‘효율’ 이라는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자동차를 ‘기계’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무리 기계로서의 효율이 좋다고 해도 그 자동차를 모두가 좋은 차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차’는 사실은 기계적인 효율이 높은 차가 아니라, 실제로는 ‘갖고 싶은 차’ 이다.

 

 

사실 우리가 갖고 싶은 차들은 효율적이지 않다

 

우아한 곡선으로 멋지게 디자인된 스포츠카를 갖고 싶다는 판단에 연비가 좋은지 아니면 나쁜지는 그다지 중요한 판단 기준이 아니다. 물론 ‘갖고 싶다’는 판단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아름다운 디자인의 차체 형태는 아마도 거의 모든 판단 기준을 좌우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임에 틀림 없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아름다운 디자인은 무엇일까? 결국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 문제로 되돌아온 것처럼 느껴진다.

 

아름다움에는 대가가 필요한 걸까?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아름답다는 감성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이상적인 아름다움(美)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어느 누구도 확답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대상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인류는 수많은 조형물과 건축물 속에서 그 ‘이상적 아름다움’을 찾으려 노력해 왔다.

 

인류는 역사 동안 이상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자연물 속에 존재하는 균형적인 비례인 황금비(黃金比; The Golden Section)를 발견해내고는 그것을 건축물에 적용시켜 자연물이 가지는 완성미를 인공물에서도 가지게 하는 한편, 인체에도 그것을 적용시켜, 그 모습을 신의 모습으로 표현해서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이라고 믿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아닌 대상은 아름답지 않다고 판단을 하기도 했었다.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황금비를 적용해 완벽한 균형미를 가지게 하려 했으며, 황금비를 적용한 인체로 묘사한 밀로의 비너스는 그러한 이상적 아름다움을 구현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이들 이상적 비례는 언제나 승리하는 아름다움일까?

 

황금비율의 아름다움은 불변의 진리일까?

 

디자이너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균형 잡히고 안정적인 형태와 비례, 그리고 색상들로 이루어진 형태가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그 기준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생각과 기준은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변화한다. 그리고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생각도 변화한다. 균형 잡힌 이상적인 모습이 인체의 아름다움의 완성된 모습이라면, 그것은 마치 돌을 깎아놓은 조각품과도 같은 상태가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살아 움직이고 있으며, 신체 자세와 표정, 그리고 그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자세에 의해 항상 변화한다. 그 변화하는 모습은 굳어 있는 대상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생명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주인공 시저의 표정이 담긴 포스터 출처; 20세기폭스코리아 홈페이지

 

2014년의 영화 ‘혹성 탈출: 반격의 서막’에서는 실사와 디지털 기술을 결합시켜 유인원들의 모습을 사실감 있게 표현해냈다. 유인원들의 리더 시저의 모습은 때로는 지도자로서의 엄숙함과 고뇌를, 그리고 때로는 갈등하며 슬퍼하는 모습을 극도의 사실성으로 표현해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그려진 주인공 시저의 모습은 우리가 지금까지 관념적으로 가지고 있던 유인원의 모습이 아니었다. 바로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시저는 고전적 의미의 미적 요소, 황금비에 입각한 신체 비례를 비롯해 균형 잡힌 근육질의 몸매와 같은 이상적 아름다움의 요소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그에게 공감하고 그를 응원했다.

그렇다면 어쩌면 오늘날의 아름다움은 균형 잡혀 굳어있는 이상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미 디자이너들은 본능적으로 균형 잡힌 지루함이 아니라, 사람들이 공감(共感; empathy)할 수 있는 가치를 어떻게 발견해내고 구체화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공감의 가치는 고전적인 형식과 같이 우아함이나 균형일 수 있지만, 그것이 드러나는 모습은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특징은 자동차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단지 균형적이고 우아함을 추구했던 것이 과거의 자동차 디자인이 추구했던 것이라면, 오늘날의 자동차들은 때로는 공격적이거나 과격하거나 사나운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디자인되고 있기도 하다.

 

공감을 기대하면서 개발된 디자인을 볼 수 있다

 

결국 오늘날의 디자인은, 오늘날의 자동차가 보여주는 디자인은 이상적인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공감하기를 바라는, 그런데 그것이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니라, 그것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내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맹수와 같이 공격적인 인상이 있기도 하며, 또는 귀여운 인상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오늘날의 아름다움은 하나의 이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 발견하느냐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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