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영향인지 대립과 반목의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인간 세상을 멀리서 보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 풍경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이익 때문에 서로 다투는 외로운 정글이며, 정의를 외치고 있지만 쉽게 변하지 않을 요새입니다. 물질세계의 불안을 느낀 인간의 언어는 비판적이고 날카롭고, (상대적) 가난을 두려워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평화를 깨고 있습니다.

자유와 정의, 보수와 진보가 서로 얽혀서 싸우는 인간 세상은 평화와 행복이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밟고 밟히는 지금의 혼돈이 멈추지 않으면 마음도 통제할 수 없는 정신공황 시대로 갈 수도 있습니다.  물질 불안이 초래할지도 모를 정신공황을 미리 막고 저마다의 마음 고통을 이기는 내 마음 사용법을 단계별로 제시해 보았습니다.  

1. 위로하라, 내가 존재하기에 아픔도 있다고 ․ ․ ․ .

스스로 불안과 우울, 슬픔과 스트레스에 잡혀서 평정심을 잃어가는 정신 공황(恐慌) 시대다. 정신 공황시대를 이기는 쉽고도 어려운 인생 처방전은 자기위로다. 집단 우울증에 빠져서 자기만 봐달라고 아우성치는 세상에서 남의 칭찬과 위로로 평정심을 찾기는 어렵다. 인생 고비를 다독거리고 버티게 하는 것은 자기위로였습니다. 자기 위로는 나를 인정하고 긍정하는 행동이며, 현재의 고난의 원인을 알고 청산하고 새로 시작하려는 다짐이며, 자기 믿음으로 고통을 분해하려는 활동이며, 마음의 안정으로 평화롭고 행복한 자아를 찾는 행동입니다. 아프고 슬플 때면 내가 있기에 아픔이 있다고 위로하자.



아픔을 아픔으로 위로하고 일어서자. 열은 열로 다스려야 하듯, 아픔은 아픔으로 위로해야 한다. 환상과 기쁨, 요행과 기대감으로 자기를 위로하는 것은 일시적인 처방입니다. 주름을 감추는 보톡스에 불과합니다. 아픔은 아픔으로 씻으면서 마음을 달래고 스스로 일어서야 합니다. 아픔의 카타르시스로도 위로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밤이 가면 새벽이 오듯, 모든 고통은 지나간다. 내가 나의 마음을 선택하고 위로할 수 있다면 나는 이미 행복한 존재다.’라고 자기 주문을 걸고 자신을 위로해야 합니다.

2. 선택하라, 자랑스럽고 즐거운 현재를



마음은 원칙도 없으면서 마음의 선택에 따라 삶의 질과 운명이 달라진다. 긍정적인 마음은 늙지 않지만 부정적인 마음은 육체마저 쉽게 병들게 만들고, 강한 마음은 밝은 마음을 선택하여 중심이 잡힌 행동을 하게 하지만 약한 마음은 어두운 마음을 선택하여 변덕스런 행위를 하게 한다. 마음은 선택하는 대로 그려지는 그림이며, 마음은 자기 마음만큼 들려주는 노래다. 마음은 꼴값을 한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마음은 건강한 행동을 하고, 약하고 추한 마음은 추한 행동을 한다. 이왕이면 자랑스럽고 즐거운 현재를 선택하자.



마음은 선택하기 나름, 이왕이면 즐거운 마음을 선택하자. 모든 게 마음에 달려 있다. 즐거운 마음을 선택하면 행동도 즐겁다. 그러나 마음을 찾고 다스리는 마음공부는 쉽지 않다. 마음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고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전과 위인들의 말씀 속에 마음의 원리가 담겨 있지만 인위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고, 마음을 훈련시키는 다양한 수련과 운동들이 있지만 마음의 원리까지 체계적으로 깨우쳐 주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마음과 개념적인 행복은 형상이 잡히지 않으므로 자연을 통해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3. 서로 살자, 네가 없으면 나도 살 수 없는 것처럼 ․ ․ ․ .





세상은 음양의 조화로 운행된다. 산은 산, 강은 강이지만 산과 강을 이어주는 계곡이 있듯,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내가 있기에 세상이 있고, 웃기에 웃을 일이 생기고, 행동을 하는 대로 생각이 따른다. 세상은 서로 엇물려 돌고 돈다. 빈틈이 없다. 자기중심으로 홀로 발버둥을 칠수록 외롭고 슬프다. 서로 살면서 기쁠 수 있는 일과 행동을 찾아야 한다. 인생 50줄에 네 마음이 편해야 내 마음도 편하다는 진리 하나를 터득했다. 한 번 생긴 마음은 사라지지 않기에 함부로 마음을 내지도 말고 마음을 너무 아끼지도 말자.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짜증이 날 때면, ‘그래도 네가 있어서 나도 살 수 있다’고 되 뇌이자.



마음은 주는 대로 받는다. 선한 마음을 주면 선한 대가를 받고, 덕을 베풀면 언젠가는 후덕을 입는다. 평화로운 마음에 행복이 깃들기에 평화로 행복을 구하자. 행복과 마음의 평화는 서로의 본질은 다르지만 서로를 살리는 상생의 관계다. 평화가 현재 완료형이라면, 행복은 현재 진행형이며, 평화가 날숨이라면 행복은 들숨입니다. 날숨과 들숨이 이어져 호흡이 되듯 평화와 행복은 한 몸입니다. 행복이 황금이라면 평화는 소금이며, 행복과 평화가 만나는 곳은 지금입니다. 평화가 항구라면 행복은 항해이며, 평화가 마음의 수평잡기라면 행복은 수직 사다리 오르기입니다. 수평과 수직이 만나려면 서로 조율을 해야 합니다. 평화가 살아야 행복도 산다. 이제 마음의 평화와 행복의 접속점을 찾을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4. 행동하라, 손과 발을 다시 얻은 것처럼 ․ ․ ․ .


자기위로로 평정심을 찾고 자연을 통해 고통을 이기는 마음을 선택했다면 이제 행동할 차례다. 행동은 마음의 웅변이며, 마음을 키우는 수단이다. 100톤의 말보다 1그람의 행동이 위대하다.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하지만, 행동을 멈추면 탈이 난다. 사냥꾼 시절의 인류는 낮에는 일(사냥)을 하고 밤에는 쉬던 유전자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멈추어야 할 것은 지나친 욕심이지 행동이 아니다. 한 번 품은 마음이 두려워서 변덕을 부리기 전에, 마음이 긴장해서 조급하게 굴기 전에 행동하자.

마음을 키우는 것은 행동이다. 말로써 말의 믿음을 증명하기 어렵듯, 마음으로 마음을 키우는 것은 한계가 있고 마음만의 노력은 음풍농월에 빠지기 쉽다. 마음을 키우는 것은 행동이다. 행동을 통해서 마음을 조율하고 마음의 강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도구와 약에 의존하는 100세 시대는 축복이 아니다.  스스로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100세 시대를 살려면 나의 행복은 내가 설계하고, 고통을 홀로 이기는 열정이 있고,  즐겁지 않으면 버리는 배짱이 있고, 마음이 정해지면 밝고 적극적인 행동을 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유를 챙겨야 한다.

5. 통찰하라, 잃었던 눈을 다시 찾은 것처럼 ․ ․ ․ .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게 아니라 자기가 보는 대로 믿으려고 하기에 갈등이 생긴다. 현상과 사물을 꿰뚫어 보는 통찰이 필요하다. 불안을 줄이고 삶을 유익하게 보내려면 자기를 돌아보는 자기 통찰력이 필요하고, 대립과 반목의 매듭을 풀고 서로를 이해하려면 잃었던 눈을 다시 찾은 것처럼 세상과 사물 꿰뚫어 보는 사회적 통찰이 필요하다. 즐겁고 자기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소비의 쾌감을 위해서 고된 일을 하는 것은 아닌지?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이용하는 일은 없는지? 편리한 도구에 길들여져 도구의 노예가 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하나라도 걸리는 게 있으면 덜 벌고 덜 소비하는 삶으로 탈바꿈 하자. 서로 엇물린 세상이 평화롭고 저마다 행복하려면 통찰해야 한다. 소수의 이익과 다수의 이익이 충돌하는 사회, 100그람의 소고기를 얻기 위해 100평의 야산을 태우는 육식 사회는 통찰력이 없는 야만인 사회다. 통찰력이 없으면 문제는 문제로 이어지고, 자기가 자기 에너지를 착취하고, 이익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터전을 파괴한다. 서로가 사는 절제된 방법을 찾는 통찰력이 절실하다.



마음은 보는 만큼 보인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도, 나를 진정한 부자로 만드는 것은 마음이다. 그러나 마음은 도깨비 같아서 수시로 변덕을 부리기에 전체를 보기 전에는 성급하게 말하지 말고, 마음과 행동은 항상 평화와 행복을 생각하여 작은 실수도 줄이자. 통찰의 눈을 키우려면, ‘삶은 고통이다. 세상에 그냥 생기는 것도 없고 영원한 것도 없다. 주도하지 않으면 당한다.’는 것을 깨닫고 지속적인 정신수련과 자기대화로 마음의 원칙을 정하고, 아닌 것을 차단할 수 있는 의지와 내공을 쌓고, 즐겁지 않은 걱정과 고민을 버릴 수 있는 수양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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