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이 없는 통합안보 - 양자역학과 안보책략 



미래는 모른다는 것을 증명한 물리학이 있다. 1975년 미국의 핵물리학자인 「프리초프 카프라」는 ‘물리학의 도(道)’라는 물리학과 철학을 접목시킨 책을 통하여, 최종 관찰을 하기 전에는 어떤 결과도 단정 짓지 못한다는 양자역학을 발표했다. 양자역학은 고양이 실험으로 설명한다. <밀폐된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고, 독약이 든 약병을 상자 꼭대기에 단다. 양자(전자) 운동에 의해 독약 병을 깨뜨려 고양이를 죽일 확률은 50 대 50이다. 관찰자가 관찰을 하기 전까지는 고양이는 삶과 죽음이 혼재된 상태의 허깨비로 존재한다. 관찰자의 관찰이 행해져야 비로소 살아있는 고양인지, 아니면 죽은 고양인지가 결정된다.> 극단적인 고양이 실험은 불확실 시대에 미리 예측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양자역학을 통하여 안보의 지혜를 살펴보자.



  관찰(통찰)로 양면을 다 보자. 물리학과 철학의 만남인 양자역학을 안보에 적용하면 지속적인 관찰(통찰)로 양면을 다 보자는 것이다. 양자역학에서 관찰은 판단의 분기점을 제공하여 차후 행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연을 관찰하면 생명의 본질을 알게 되고, 일을 관찰하면 일의 핵심을 알게 되고, 나와 남을 동시에 관찰하면 이해와 아량(사랑)이 생겨서 다툼이 멈춘다. 그러나 한쪽 눈으로 자연을 보면 대충 보이는 것만 보이고, 일이 놀이가 아닌 일을 일로 보면 일의 좋고 싫음이 구분되며, 나만 생각하면 남을 이기려고만 한다. 세상을 보는 관점에 따라서 주변이 다 적이 될 수도 있고 주변이 협력과 상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부분만 보면 이익을 찾지만 전체를 보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통이 큰 행동을 한다.

  스스로 독이 든 병을 달지 마라. 양자역학 실험의 초입 단계가 밀폐된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고, 독약이 든 약병을 상자 꼭대기에 다는 것이다. 물론 불확실성을 연출하려는 실험이다. 실제로 약과 과일은 독성분이 있다고 한다. 몸이 약을 이겨내야만 비로소 약이 되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자기를 지키려는 목적으로 독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자기존재를 정당화시키고 자기를 보호하려는 사상이라는 독이 있다. 자기만 생각하는 극단의 집단 심리(사상)는 스스로 선한 과일이라고 믿는 이념과 운동원리를 만들지만 상대는 그 이념을 무서워하고 경계한다.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과 우경화 추태, 중국의 중화사상, 강대국의 우리끼리만 핵 보유, 일부 대기업의 횡포, 독소 조항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갑과 을의 계약 등은 보기에는 먹음직한 과일이지만 자신과 남에게 피해를 주는 금단의 과일이다. 과일의 마지막 상태가 서로에게 좋은 과일인지, 아니면 독을 품는 과일이 될지를 먼저 생각하고, 생각의 나무를 심고 과일을 따야 한다.

  스스로 사는 길, 생명의 길을 찾자. 양자역학 실험의 중간 단계는 실과 허의 혼재 상태다. 양자(전자) 운동에 의해 독약 병을 깨뜨려 고양이를 죽일 확률은 50 대 50이다. 관찰자가 관찰을 하기 전까지는 고양이는 삶과 죽음이 혼재된 상태의 허깨비로 존재한다. 남과 북은 60년 전부터 핵무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고 서로가 핵에 집착을 했다. 현재 한국은 핵을 경제적으로 이용하는 원자력에 몰입하여 세계 5위의 원자력 강국이 되었고, 북한은 오랜 기간 핵무기를 체제 유지용으로 생각해왔고, 이제 독자적인 핵무기(독약 병)를 만든 상태이니 인정해 달라고 한다. 실제로 미국의 극우익 세력들은 북한 핵무기 시설을 선제 폭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관찰을 해야 하지만 현재 논의되는 것만 따져보면 북한은 핵무기 때문에 북한 체제의 삶과 죽음이 혼재된 상태라고 말을 할 수 있다. 누가 봐도 북한은 선한 과일이 아니라 독약이 든 병을 달아 놓고 스스로 고양이가 되어 웅크리고 있지만, 세계 여론이 북한을 그냥 둘 수 없는 쪽으로 흐르면 북한은 그 독약 병을 피해야만 하는 상황을 연출할 것이다.

  대담하게 안보를 주도하자. 한국은 그동안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숨을 죽이고 살아왔다. 아직도 한국의 운명은 불확실하다. 안보, 정치, 경제, 사상, 역사, 문화 등 확고하고 안전한 영역을 구축한 것은 없다. 미리 예측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먼저 관찰하고 대담하게 주도해야 한다. 자기 위로와 자기만족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독하게 생존의 이념과 행동의 날을 세우고, 생존의 동지를 만들고, 번영의 길로 나가야 한다. 한국의 안보는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 내부의 이념 갈등은 서로가 싸움으로 풀지 말고, 본래의 실체를 드러내게 하여 다수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 누가 더 진실하며, 누가 더 생산적이며, 누가 더 다수의 생명을 살리려고 하느냐에 초점을 두고 비교해야 한다. 이제 음지에서 웅크리고 앉아서 편향된 사상을 전수하고 의식 바른 세력을 할퀴려고 하는 세력은 살아남지 못한다. 다양한 사회에서 국론 통일은 있을 수가 없기에 따르는 다수를 바라보고 정책을 펴고, 강대국의 틈바구니를 탈출하는 유일한 길은 당당하게 안보 주권을 펴고, 중립국 형태의 통일 한국의 밑그림을 그리고 국민적 합의를 구하고 추진을 해야 한다.

  이기는 길에서 살리는 길로 가자. 양자역학 실험의 마지막 단계는 <관찰자의 관찰이 행해져야 비로소 살아있는 고양인지, 아니면 죽은 고양인지가 결정된다.> 그동안 한국의 대외 이념은 상대를 부정하는 반(反)에서, 상대를 이기려고 하는 극(克)으로 진보를 했다. 한국인의 정서를 수시로 상처를 내는 일본에 대하여 반일, 극일까지 진보를 했지만 아직도 미완성 이념이다. 반(反)의 이념은 편을 가르고 서로를 미워하면서 에너지를 낭비하고, 극(克)의 이념은 이기고 승리하는 방법을 찾지만 상대도 만만하지 않다. 이기려고 하다가 밀리면 오히려 죽는다. 일시적으로 이기더라도 표면적인 승리다. 마지막 관찰을 하지 않아도 이미 서로가 살고 살리는 상생의 길, 생명의 길을 찾아야 한다. 서로의 생명은 소중하기에 상대 생명을 반대하면서 상처를 줄 필요가 없고, 상대를 굳이 이겨서 지배하면 잠시의 이득은 생기지만 영원하지 않다. 생명의 길을 가려면 기존 생각을 바꾸는 일부터 해야 한다. 생명이란 그냥 단순히 살아 있는 명줄이 아니라, 서로를 생생하고 명쾌하게 살리는 실체다. 무아(無我)란 ‘내가 없다. 나라고 내 세울 것이 없다’는 선(禪)의 개념이지만, 고정되고 이미 정해진 내가 없다. 어떠한 나도 가능하다는 무한도전의 역동적인 나를 의미한다. 공(空)은 ‘아무것도 아니다’는 허무와 체념의 언어지만, 반대로 읽으면 무엇으로도 채울 수 있는 무한무변의 팽창을 의미한다.


# 그동안 2월 28일부터 오늘까지 거의 70일 동안   안보 관련 글 30편을 올리느라
   행복 관련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 <버리면 행복한 것들> 힐링도서 인터넷 서점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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