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면의 갈등 없이 자아를 인식하려면 여유가 필요하다. - 크리슈나무르티







여유가 없어서 현재 불감증에 걸린 자아에게!



여유가 없어서 불안하고 조급한 자아여! 불안과 조급함은 강박증과 모난 자존심이 만든 불량품이 아니더냐? 서두르고 조바심을 낸다고 안 될 일이 되는 게 아니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조급한 마음이 아니라 순리와 순서를 따르는 여유다. 여유는 넉넉하게 생각하고 차분하게 행동하게 하는 에너지다. 앞서 가려다 기회를 잃지 말고, 내 것을 챙기다가 인심을 잃지 마라. 꽃도 피는 순서가 있고, 하나의 꽃망울에 하나의 꽃이 피는 법. 일이 나의 기대와 반대로 가더라도 놀라지 말고 웃음으로 대응하자. 일이 복잡하고 답답할수록 원인을 찾지 말고 쉬운 해결책부터 찾자. 행복이 무엇인가? 를 찾지 말고 행복한 상태를 만들자.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걱정하고 고민하는 자아여! 걱정과 고민은 고난을 이길 자신이 없어서 생기는 마음의 출혈 아니냐? 누가 겨눈다고 즉각 반응하지 말고, 누가 침묵한다고 방심도 하지도 마라. 시간은 흘러가는 강물도 고정된 벽도 아니다. 시간은 우리가 정해놓고 우리를 매몰시키는 블랙홀이다. 시간은 돈이며 섭리(攝理)지만 조급함 속에 흘러가는 시간은 마음의 평화를 파괴한다. 시간을 아깝다고 쪼개지 말고, 시간을 정해놓고 일을 하지 마라. 급할수록 시계를 보지 말고 마음의 스위치를 내리자. 내가 일을 쫓지 말고 일이 나를 즐겁게 쫓아오게 하자. 우주의 물질로 만든 몸에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 우주의 기운을 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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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을 가보면 여러 유형의 상주(喪主)를 만난다. 슬픔에 잠겨 말조차 잇지 못하는 사람, 경황없이 허둥대는 사람, 이성을 잃는 사람, 호상이라며 스스로 위로하는 사람, 가끔은 초연하고 평온함을 유지하는 상주도 있다. 자녀를 잃은 고향친구를 위문 차 갔더니, 너무도 초연했다. 위로를 하는 필자에게 ‘좋은 곳으로 갔을 겁니다. 고인도 제가 마음의 평화를 잃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겁니다.’ 의외의 말에 놀랐고 그 평온함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마음의 평화를 잃으면 마음에 예민한 가시가 돋는다.(반대로 예민해서 평화를 잃기도 한다.) 고대 사냥꾼의 불안의식(매일 먹이를 찾아 헤매던)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인지, 사소한 일에도 마음에는 민감한 가시가 돋아난다. 걱정과 고민의 가시는 수시로 자신의 마음을 찌르고,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생기는 건강 의심증 가시는 몸을 더 상하게 하고, 동료가 무성의하게 악수를 받거나, 상관이 무심하게 답례해도 생기는 불안의 가시는 심장을 따끔거리게 하고, 자기와 관련된 나쁜 소문을 들으면 분노의 가시가 경기(驚氣)를 일으키며, 욕망(성취감)이 상대 때문에 꺾이면 반발의 가시가 돋아나 상대를 공격한다. 마음에 예민한 가시가 생기는 것은 앞뒤 상황을 살피고 대응할 여유가 없고, 그 상황을 이길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여유(餘裕)는 넉넉한 마음의 공간이며, 내면의 소리를 듣는 진지함이다. 여유는 홀로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야생초의 초연함이며, 벌레 먹은 잎을 감추지 않고 보여주는 나무의 당당함이다. 숨을 쉬는 일 외에는 서두를 일이 없다. 조급한 사슬에 묶이면 시간의 노예가 되고, 3초의 여유 부족으로 30년을 잃기도 하고, 3분도 기다리지 못해 생명을 잃기도 한다. 여유는 차분한 행동을 하게하는 마음의 안정제이며 ,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마음 씀씀이며, 한 박자 쉬면서 주변과 반대편을 보는 습관이며, 욕심의 강도를 조절하는 절제력이다. 여유는 느리게 가더라도 똑바로 가려는 심성이며, 큰 것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인생 전략이다.



우리는 생각을 생산하는 공장장이다. 생각과 의식의 연료(밝음, 여유, 사랑, 비교, 분석, 분노)에 따라 생산되는 마음 제품도 달라진다. 밝음, 여유, 사랑의 생각은 불행한 일도 담담하게 받아들여 평온을 유지하게 하지만, 어둠, 조급함, 미움의 생각은 이미 좋은 여건마저 버리고 부정과 불쾌감, 화와 우울한 기운을 만든다. 생각의 공장(두뇌)은 생각의 스위치에 의해 가동하고 멈추는데, 생각 스위치를 순차적으로 여유 있게 누르면 고통도 기쁨으로 전환시키지만, 생각 스위치를 조급하게 누르면 자주 열을 받고, 쉽게 분노하여 엉뚱한 짓을 하고, 심지어 감사할 일에도 화(火)를 낸다.



여유는 마음의 공간을 넉넉하게 하는 여백으로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하게 하지만, 여유가 부족하면 서두르다가 일을 그르치고, 때로는 치명적 실수로 사람과 기회를 잃는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수만 가지 마음을 만든다. 여유를 가지면 낚시로도 큰 고기를 잡지만, 여유가 없으면 저인망으로도 불가사리만 잡는다. 의식은 전체를 동시에 볼 수 없고, 상황은 유동적이며, 상대는 본심을 감추고 말을 하기에 최대한 오판하지 않고 실수를 줄이려면 여유를 가져야 한다.



인생 사업은 욕심을 부린다고 성공하는 사업이 아니다. 인생 사업은 생각과 행동에 따라 큰 사업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큰 발자취를 남긴 위인들은 결정적 순간에 여유를 갖고 신중하면서도 넉넉한 행동을 했다. 여유는 생각의 여백에서 태어나 품위 있는 행동을 만들고, 정서를 안정시켜 웃음을 만든다. 여유가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고, 해코지하는 대상도 포용하고 용서하며, 남에게 웃음과 신바람을 줄 수 있다.



누가 공격하면 문을 열어주라. 삼국지 촉지 제갈량전에 보면, 제갈량은 조조 군을 공격하기 위해 대장군 위연을 양평에 파견하여 성(城)은 거의 비어 있는데, 사마의가 이끄는 조조의 대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성문을 열어둔다. 사마의는 성안에 복병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면서 성을 공격하지 못하고 철수한다. 제갈량의 공성(空城)계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여유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여유로 좋은 기운을 불러 모으자. 여유는 생각과 행동의 완충지대를 만들고 좋은 기운을 불러 모은다. 여유는 충분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기에 실수가 적고 마음을 평화롭게 만든다. 여유는 상대에게 인품의 향기를 풍겨서 감동과 호감을 주며 상대를 편하게 한다. 여유는 나와 다른 생각도 존중하게 하며, 타인의 장점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맞추려고 한다. 우리의 유전자 속에는 사냥꾼 시절 몸에 배인 조급한 본성이 남아 있어서 각성만으로 쉽게 여유를 누리지 못한다. 수양과 수련으로 자기 정신세계로 몰입할 수 있어야 자신이 보이고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없으면 쳇바퀴 속의 다람쥐에 불과하다.



마음의 출입자를 감시하자. 무수한 마음들이 생기고 입장한다. 부정적 생각, 의심, 기분 나쁜 마음이 입장하면 불안과 두려움의 인계철선을 건드려 화(火)가 폭발하게 한다. 센스 있고 무게 있는 화는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불의에 대한 화는 정화(淨化) 기능을 하지만, 지나친 화는 자신의 심장을 태우고, 마음을 찌그러뜨리며, 가까운 사람도 쫓고, 혈육의 정마저 끊어지게 한다. 화는 일단 발화되면 진화(鎭火)하기 어려운 불기운이므로 부정적인 생각과 미움 자체를 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수양이 필요하다.



자기를 초라하게 만드는 예민함을 죽이자. 자기 의도와 반대로 가는 현상을 목격하거나 손실을 입으면 예민하게 대응한다. 어쩌면 방어 본성이다. 예민함은 천성적인 것도 있지만, 나의 작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손익을 계산하고, 자기 이익 외에는 눈을 감기 때문이다. 얕은 샘에 돌을 던지면 바로 소리를 내듯, 대범하지 못한 사람은 어떤 자극을 받으면 바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우리를 예민하게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가 착하게 굴면 당한다는 후천적 학습 때문이다. 예민함은 순발력 있게 대응하여 조기에 악의를 제압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평화와 안전의 고리를 끊어버리며, 쉽게 화를 내게 만들고, 병적인 행동으로 자기를 초라하고 가벼운 존재로 추락시킨다. 자신에게 예민함과 화가 남아 있으면 행복은 물론 친구조차도 다가오기 어렵다는 것을 명심하자.



화가 나면 마음의 안전거리를 두자. 화가 치밀면 먼저 자신에게 항복해라. 누가 실없이 태클을 걸고, 사실과 다른 말을 하고, 부당한 요구를 하면 심호흡을 하고 일단 한 박자 쉬자. 3초를 참으면 분노에서 진정으로, 미움에서 연민으로 바뀐다. 예민함을 치유하려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의 침을 놓고, 뭔가 보호받고 있다는 종교적인 울타리 의식을 갖고, 스펀지 같은 수용성 마음(사소함에 대한 무시와 무관심, 흡수와 포용)을 취해야 한다. 상대가 뾰족한 침으로 도전하더라도 맞서 싸우지 않고, '네. 그렇군요.' 라고 너그럽게 인정하여 자신을 편안하게 하여야 한다. 나에게 힘이 없고 대세가 아닐 때는 안전거리를 두고 참는 자가 이긴다.



바쁠수록 한 박자 쉬자. 웰빙과 느림보 운동은 모두 여유를 찾자는 운동이다. 현대인은 일이 바빠서 여유(餘裕)가 없는 것이 아니라, 여유가 없어서 바쁘다. 열심히 부지런하게 산다고 행복하지 않다. 여유를 가지면 신중하면서도 무게 있는 나를 창조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평온할 수 있다. 빨리 간다고 일이 종료되지 않는다. 일을 빨리하면 또 다른 일을 맡아야 한다. 인류의 고등 가치관인 희생과 봉사, 배려와 관심, 사랑과 정, 인간존엄성 문화는 다 여유에서 생긴 작품이다.



마음의 여백(餘白)은 넉넉한 물리적 공간이며, 좋은 것만 바라보는 마음의 공간이다. 한국화는 선과 색도 없이 그냥 비워 두는 여백이 있어 보기가 편하듯, 손해를 보더라도 대담하고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이 생기면 스스로 쪼들리지 않고, 남을 간섭하거나 세상과 거리를 두는 경계의 울타리를 치지 않는다. 죽으면 다 놓고 갈 물질 때문에 허덕이지 마라. 마음의 여백이 생기면 지나친 농담도 상대가 나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으로 유리한 해석을 하고, 참기 어려운 인격 침해를 당하더라도 화로 대응하지 않고, 한 박자 쉬었다가, '이런 것들이 저에게 불편함을 주는 군요'라고 말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고 관계 또한 더 친숙해 질 것이다.



모순까지 흡수할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을 만들자. 마음의 여백은 충격을 거두고, 기다렸다가 최상의 행동을 하게 한다. 3초만 참는 여유만 있어도 살인을 면한다고 한다. 지나간 아쉬웠던 일들과 현재 불행은 거의 다 여유와 여백 부족으로 생겼다. 여유 부족은 눈앞의 이익에 쫓겨 생체 리듬을 잃게 하고, 긴장된 생활을 만들고, 뛸수록 고통을 만든다. 여백 부족은 누울 자리도 안 보고 다리를 뻗게 하여 아픔을 만든다. 행복과 불행은 호흡하는 순간에 있다. 여유를 갖고 심호흡 한 번 하면 미움도 분노도 사라지고, 마음의 여백을 가지면 우주의 공간도 품을 수 있지만, 여유 없이 내 지르면 바늘 하나도 꽂을 자리가 없다.



절제로 여유를 보강하자. 여유와 절제가 짝이 되면 금상첨화다. 여유 있게 수용을 하더라도 절제가 없으면 욕망이 던지는 추파에 말리고, 상대의 깐족거림에 싸움을 한다. 여유를 부려도 절제력이 없으면 본색이 드러난다. 절제력은 여유를 유지하는 힘이다. 여유 있게 시작을 하더라도 결과물이 작고, 어려움에 처하면 허둥거리고, 일이 반대로 가면 짜증을 부린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일단 수용하고 절제력으로 뒷감당을 해야 한다. 여유와 절제가 있으면 욕망의 창을 이성의 방패로 막을 수 있다.



아닌 것은 놓아주는 대담(大膽)성을 갖자. 개인적인 브리핑 자리에 서거나 이익이 걸린 사안이 생겼을 때 대담하지 못하면 조바심을 내게 되고, 심장박동수를 제어하지 못해 실수의 인계철선을 건드리게 되거나, 때로는 마냥 두려워한다. 잘 된다는 신념과 결정적일 때는 책임을 진다는 각오를 하면 여유가 생기고 대담해진다. 조바심을 내면 일을 그르치기 쉽다. 잡을 것만 잡고 버릴 것은 버려야 여유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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