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때문에 자주 다투는 자아에게!



자존심 때문에 다툼이 잦고 마음의 평화를 스스로 깨는 자아여! 상대의 의견에 불과한 말과 행동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만 줄 것인가? 자존심은 자신을 거룩하게 하려는 용틀임이며, 죽는 순간까지 소진되는 않는 에너지이지만, 누가 밟으면 그대로 무는 뱀이다. 자존심은 자기다움을 지키려는 내면의 불꽃이지만, 예민하게 반응하면 대인관계를 깨는 악마다. 자존심이여, 너의 의지대로 몸과 마음을 끌고 어디로 가도 좋다. 그것은 너의 통수권이다. 그러나 알량한 자존심은 일을 그르치고, 서로의 고통을 만들고, 해야 할 일 앞에서 주저하게 한단다. 진정한 자존심은 남을 공격하는 날카로운 창이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려는 내면의 고고함이다. 당장의 자존심보다 자존심을 유보하고 달여서 내 분야의 지존(至尊)이 되자.



지나친 자존심으로 인생의 짐을 더 무겁게 하고 딱딱한 자존심으로 어울림을 깨는 자아여! 언제까지 자존심의 바벨탑만 높게 쌓아올릴 것인가? 자존심은 양심의 빛이면서 자신을 지키는 방어진지지만, 자존심이 체면의 갑옷을 입으면 안으로는 심신이 상한다. 배우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자존심만 강하면 바람처럼 왔다가 그냥 가게 된다. 진정한 자존심은 자기를 높게 세우는 허상의 계단이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려는 마음의 근육이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자존심의 탑을 낮추고, 자존심을 무디게 하자. 최고의 자존심은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의 향기다. 스스로 낮추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고 사람을 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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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구입한 새 차에 누가 중고차를 구매한다는 명함을 꽂아 두었다. 여유가 없고 자존심만 센 저돌적인 사람은 당장 명함을 보고 전화해서 “당신 눈에 내 차가 중고차로 보여? 당신 제 정신이야? 새 차에는 전단 붙이지 마.” 하면서 반말로 감정을 드러낼 것이고, 자존심을 다스리는 사람은 ‘세차를 안 했더니 중고차로 아는군’ 하면서 웃으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진정한 자존심을 소유한 사람은 여유 있게 수용(收容)한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기분은 나쁘지만 다툼을 피하자. 부족하니까 아름답다. 새 차를 잘 사용하라는 메시지’라고 마음을 달래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 똑 같은 사실을 놓고도 자존심의 강도에 따라서 대응 방법이 다르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자존심 때문에 주저하고, 수시로 다투고, 평화를 잃었다. 자존심(自尊心)은 자아를 존중하고 보호하려는 본능이면서 자기를 세우고 지키는 의식이다. 자존심은 자신의 인격과 품위를 지키고 높이는 마음이면서 자신을 고결(高潔)하게 지탱하려는 태도다. 자존심은 자기를 극진하게 떠받들고 보호하려는 생활 방편이면서 나를 교주(敎主)로 하는 1인 종교다. 자존심은 존엄한 삶을 지키려는 방어 심리이면서, 자신을 사랑스럽고 고고한 존재로 유지하려는 공격 행위다. 의식적인 수련에서 나오는 자존심은 자기 마음을 밝히고 정비하는 마음의 불꽃이지만, 지나친 자존심은 자기와 남에게 화상을 입히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병적인 자존심이 생기는 유형은 다양하다. 열등의식의 사주(使嗾)를 받는 자존심, 자신감이 부족하여 누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병적인 자존심은 스스로 마음의 상처와 스트레스를 만들고, 야수의 발톱처럼 상대의 마음을 할퀴고 찌른다. 자격지심(自激之心)과 자신감 부족이 만든 자기 방어적인 자존심은 꼭 해야 할 일도 주저하게 만들고, 자기 행동을 위축시킨다. 상대의 작은 거슬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존심은 시한폭탄처럼 의도적으로 터져서 싸움을 만들고 성장과 성숙의 기회를 잃게 하며, 지나친 자존심은 마음의 평화와 사람을 잃고,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적응 면허증을 분실하게 된다. 자존심의 덫에 걸리면 실리와 순리, 행복과 행운마저 잃는다.



들길을 한번 직접 걸어가 보라. 향기로운 꽃도 있지만  잡초도 있고, 퍼진 소똥도 있고, 풀숲에 숨은 독사도 있고, 뾰족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퇴비가 썩는 악취도 맡아야 한다. 들길을 걸으면서 보고 겪는 것도 선택이 아니라 운명적 만남이다. 복잡한 사회에서 사람으로 인해서 겪는 고통과 아픔은 운명이다. 마음에 안 드는 대상이 있다고 불평하고 싸운다면 심신이 피곤하다. ‘내가 지금 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기쁘게 받아들이자.’라고 위안하여 자존심이 몸 밖으로 튀어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그러진 자존심이 몸 밖으로 튀면 마음의 평화가 깨져서 다툼으로 발전하고 몸의 품위는 크게 손상 될 것이다.



- 자존심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호랑이 우화가 있다.

천재 호랑이는 항상 먼 하늘을 쳐다보고, 몸은 깡마르고, 먹이를 먹더라도 1시간 뒤에 잠시 잠을 자는 특징이 있다. 천재 호랑이를 사냥하는 방법은 호랑이가 잠시 잠들었을 때, 호랑이의 코앞으로 코피 묻은 휴지를 돌멩이로 싸서 던진다. 호랑이는 피 냄새를 맡고 일어나 눈앞의 피 묻은 휴지를 분석한다. ‘아니! 이것은 인간의 죽은피가 아닌가? 내가 깡말랐다고 누가 동정어린 짓을 했구나. 그렇다면 피가 아니라 고기를 보내야지. 백수의 왕인 나에게 죽은피를 먹으라고 하다니.’ 이렇게 자존심이 상한 호랑이는 고민하다가, ‘인간에게 이런 수모를 당하느니 차라리 깨끗하게 죽자’ 하고는 벼랑으로 떨어진다.



호랑이 우화는 지나친 자존심 때문에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좌절하고, 생을 포기하는 인간을 꼬집고 있다. 누구라도 자존심이 상처를 받으면 공격적인 행동을 취한다. 상처 입은 자존심은 살 속을 파고드는 티눈처럼 자기 마음으로 파고들어 마음에 화상을 입히고, 자존심을 상하게 한 대상에게 노골적인 욕을 퍼붓거나, 심리적 반항, 또는 나쁜 소문을 낸다. 공격적인 자존심은 대인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어 외톨이가 되고, 자기 존재를 지키려고 생명도 버린다. 자존심은 자신을 깨끗하게 지탱하며 자기를 고고하게 하지만, 힘도 없이 자존심만 세면 대인 충돌이 잦고, 대인기피와 행동 위축, 현실도피로 발전한다. 자존심을 다스려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을 살펴보자.



일생이 편하려면 자존심을 다스리자. 인간 세상은 나를 존중하고 인격체로 대하는 사람보다 나를 이용하고,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사람이 더 많다. 내가 겸손하고 성실해도 인격을 건드리고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 꼭 있다. 누가 나에게 시비를 걸고 나를 무시한다고 자존심이 발동하면 바로 싸우게 되고, 나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면 뾰족한 자존심이 작동하여 상대를 찌르고 공격하여 서로 원수가 되기도 한다. 자존심이 가슴의 불꽃이 되어 내면을 정비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지만, 자존심의 창칼을 마구 휘두르면 잠시 마음이 시원할지 모르지만, 서로 불행한 피를 흘려야 한다. 마음이 평화를 지키고 행복하려면 자존심을 다스려야 한다.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여 자신의 마음 중심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자존심이다.



이기적인 자존심을 첨병으로 세우지 마소. 첨병(尖兵)은 행군 할 때 적의 접근을 조기 경고하기 위해 행군대열 최고 앞에 세우는 전투원이다. 살면서 누가 인격을 건드린다고 자존심이 첨병으로 먼저 나가면 꼭 사고를 친다. 단순하고 이기적인 기분을 따르는 성급한 자존심은 ‘버럭’ 화부터 내는 기운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여행을 순탄하게 하려면 자신감이 선두에 서고, 그 뒤에 자부심, 그 뒤에 지존이 되려는 야심, 마지막 후미 첨병에 자존심을 세워야 한다. 살면서 충돌이 생기고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자신감, 자부심, 내 분야에서 지존(至尊)이 되겠다는 야심을 순차적으로 취해야 위태롭지 않다. 누가 자존심을 건드리면 자신감으로 대응하여 상대의 거슬림에 반응하지 말고, 상대가 힘과 권위로 무시하면 당신보다 내가 더 우수하다는 자부심으로 대응하여 자기를 위로하면서 안정을 찾고, 정말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언젠가는 만인이 우러러보는 지존이 되겠다는 야심으로 대응하여 자기의 힘을 키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삼손의 자신감으로 상대의 시비와 공격을 무시하자. 모든 생명체는 그 자체로 존엄한 가치를 지키며 살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세상인심은 내가 아무리 정성과 노력을 투자해도 몰라주고, 이해관계 때문에 무시하고 공격을 한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고, 꽃도 꺾으면 아파하며, 동물도 학대하면 저항한다. 특히 인간은 누가 시비를 걸고 뿌리를 건드리면 자존심 상한다. 자존심이 상한다고 바로 대응하면 자존심을 더 다친다. 자존심이 흥분하는 경고등이 들어오면 자신감으로 대응해야 한다. ‘난, 너보다 한 수 위다. 넌, 싸울 대상이 아니야.’ 라고 속으로 위안을 삼으면서 삐딱한 상대를 소리 없이 제압해야 한다. 인간 세상은 법이 약자를 보호할 수 있지만 자존심까지 법이 지켜주지 못한다. 스스로 힘을 갖추고 자신감과 자부심을 키워야 한다.



사자(獅子)의 자부심(自負心)으로 상대의 힘과 권위에 대응하자. 자신감과 자부심은 자존심을 지키는 보호벽이다. 자부심은 자신의 재능과 정신세계에 대한 우월감이자,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믿는 에너지다. 자부심이 있으면 상대보다 정신적 우위에 있기에 자존심 상할 일이 있어도 상처 입지 않는다. 자부심과 꿈이 결합되면 강력한 평화 장치가 된다. 한신 장군은 지기 무예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세상을 평정한다는 꿈이 있었기에 젊은 시절, 불량배 앞에서 무릎 꿇고 가랑이 사이를 기어갔다는 일화가 있다. 크고 장대한 꿈이 있으면, 체면을 유지하려는 자존심, 민감하고 예민한 자존심을 꿈을 이룬 날까지 자존심을 유보할 수 있다. 꽃의 자존심은 아름다움이며, 나무의 자존심은 좋은 열매이며, 물방울의 자존심은 바다로 가는 것이며, 인간의 자존심은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여 보다 큰일을 하는 것이다. 살면서 예절과 배려심이 없고, 이기적으로 남을 어렵게 하고, 악의에 찬 사람을 만나더라도 자부심으로 대응하면 정신이 성숙하고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오기의 자존심은 지존(至尊)이 되는 것. 자존심은 자기만 보호하는 자기 영역이라면, 자신감은 싸우지 않고 상대를 이기게 하는 비법을 전수하는 코치이며, 자부심은 상대보다 정신적 우위에 서는 법을 깨우쳐주는 스승이다. 지존은 자기 분야의 일인자가 되어 만인의 존경을 받겠다는 야망의 성역이다. 자존(自尊)에서 지존(至尊)으로 가려면 한글 (ㅏ)의 ․ 점만 지우면 된다. 그러나 그 점을 지우려면 ‘나’라는 아상과 집착을 죽이고 수양해야 한다.  마치 한 알의 밀알들이 썩어야 많은 밀이 생기듯, 예민한 자존심을 유보하고 썩혀야 지존이 된다. 지존이 되려면 상대의 깔깔한 공격 창날을 자신감으로 대처하고, 때가 이롭지 않으면 자존심을 유보해야 한다. 자기 하나만 지키는 자존심을 택할 것이냐? 마음의 평화를 누리면서 만인에게 존경 받고 만인을 얻는 지존이 될 것이냐? 는 자신만의 선택 사항이다.



육체의 자존심은 품위를 지키는 것이다. 자존심은 정신만의 영역이 아니라 육체에도 자존심이 있다. 자기 몸을 항상 고고하게 유지하는 것이 육체의 자존심이다. 몸은 정신의 거울이기에 자존심은 결국 몸으로 드러난다. 배고픈 상태에서 밥을 먹더라도 천박하게 서두르지 않고,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웃음을 잃지 말고, 백만 군중 앞에 서더라도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자존심은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지켜 자기를 이기는 것이다. 남에게 자존심 세우지 마라. 야수의 발톱에 불과하다. 몸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자존심은 평소에는 평온을 유지하고 죽음마저 고고하고 초연하게 맞이하는 자세다. 성인군자는 죽는 순간에 몸의 미련을 끊고 웃으면서 세상을 떠났다.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억센 자존심을 유지하려면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순신 장군은 1597년 9월 16일 명량해협으로 쳐들어오는 왜군을 막기 위해 출격 직전에 병사들에게 비장하게 독려한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 그 결과 13척의 함선으로 333척의 왜군을 상대하여 122척을 파괴 또는 수장(水葬)시킨다. 세계 해전(海戰)사에 빛나는 전공을 세웠다. 이순신 장군의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명언(名言)은 자존심 상할 일이 너무도 많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진정한 자존심에 대한 지혜를 준다. 나를 지키려면 모난 나를 버려야 하고, 진정한 자존심을 지키려면 얄팍한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특히 생업 관련해서는 알량한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자존심 때문에 주저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자존심을 작동하면 몸을 욕되게 하고, 영혼마저 분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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