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할수록 삶의 법칙을 찾는 자아에게!



잃는 것이 두렵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복잡한 자아여! 그동안 사소한 감정에 흔들려 생각은 흐려지고 몸은 열정을 잃었다. 내가 정한 기준과 원칙 때문에 다투고 허둥대는 꼴을 중지하는 게 어떻겠니? 음양의 조화 속에 어렵게 태어나 부정적인 감정에 시달리기에 인생은 너무도 짧다. 쏟아지는 빗줄기도 작은 물방울로 분해해서 떨쳐내는 연꽃처럼, 요동치는 욕망과 잡념을 강한 자아로 분해해 버리고, 밟히면 꼬리를 끊고 도망치는 도마뱀처럼, 이미 나의 것이 아니라면 내려놓고 열정 하나로 복잡한 미로를 탈출하자. 물질에 법칙이 있다면 마음에도 법칙이 있지 않겠나?



지난 일로 미련 떨고, 현재의 아픔을 번민하고 미래 문제로 복잡한 자아여! 목적을 위해 비굴하기도 했고, 유리하다고 거만도 떨었다. 운전을 시작하면 시동을 끄고 문을 닫기 전까지는 삶과 죽음이 혼재하듯, 몸과 마음으로 구성된 육체적인 ‘나’와 보이지 않지만 에너지로만 존재하는 영적인 ‘나’가 분명 있음을 깨닫자. 육체는 떨리고 흔들려도 영혼만은 평온하자. 잃는 것을 두려워 말고, 얻는 것을 자랑하지도 말자. 스스로 빛을 만들기에 그림자를 모르는 태양처럼, 밝고 강한 자아의 빛으로 근심과 걱정의 그림자를 녹이자. 세상에 공짜는 없다. 준비와 노력으로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위엄을 갖추고, 먼저 주고 얻는다는 단순한 공식으로 함께 하는 이를 이롭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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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다. 현재까지 밝혀진 우주의 물질은 전체 물질의 4%뿐이라고 한다. 나머지 물질의 22%는 암흑물질이며, 물질의 74%는 암흑에너지라고 한다. 물질이 있으면 반물질이 있다고 한다. 물질의 속성을 정립한 물리법칙이 있다면 정신의 속성을 다룬 정신법칙도 있을 텐데, 정신세계는 형상으로 잡을 수 없고 검증을 할 수 없기에 아직 정신법칙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문학과 명언, 잠언과 속담을 통해서 정신세계의 속성을 살필 수 있다.



정신세계를 물질 현상에 비유한 말들이 많다. ‘내 마음은 호수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가도 샌다. 황금 보기를 돌을 보듯 하라.’등 그리고 차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고, 고기를 먹으면 정신이 흐려짐을 느낀다. 이를 종합하면 물질과 정신은 배타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 간섭(삼투)하며 영향을 준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물질계의 질서를 설명하는 물리법칙을 정신세계에도 준용할 수 있고, 물리법칙에서 행복의 법칙도 찾을 수 있다는 가설이 성립한다.



관성(慣性)의 법칙과 생각의 행복



제1의 물리 법칙인 관성의 법칙은 운동하던 물체는 계속 운동을 하려고 하고, 정지된 물체는 계속 정지하려는 속성을 말한다. 인간의 정신도 관성의 속성이 있다. 관심 분야만 생각하고 싫은 일은 피하려고 하고, 익숙한 것을 선호하고 생소한 것을 거부한다. 운동하는 물체가 한 방향으로 운동하려는 관성과 짝이 되는 정신은 변함없는 마음인 항심(恒心 -자기 철학과 가치관, 습관과 태도, 고정관념과 의리, 종교관과 세계관 )이며, 정지된 물체와 짝이 되는 정신은 집착과 타성(惰性)이며, 물질 속을 뚫고 나가는 중성자와 짝이 되는 정신은 통찰과 깨우침이다.



운동하는 물체와 짝이 되는 정신은 항심이다. 항심은 늘 지니고 있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다. 우리의 습관적 행동은 항심의 작품이다. 마음을 따라 행동이 간다. 화가의 그림은 손이 아니라 마음속에 이미 그려진 구체적 형상에서 나오듯, 구체적이고 긴요한 생각이 행동을 만들고, 행복해지려는 생각이 행복을 만든다. 같은 현상을 놓고 마음 선택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행복하겠다는 의지(마음의 운동)를 가지면 행복을 느끼지만, 생각이 부정적이고 의심(마음의 정지)을 내면 지저분한 우울과 걱정만 생긴다. 자기 위로와 수련으로 자신의 마음이 부단히 운동하게 해야 숨었던 행복도 발견되고 행복을 위한 행동을 하게 된다.



정지된 물체와 짝이 되는 정신세계는 집착이다. 집착은 자기 생각과 일에 묶이게 하는 자기애(自己愛), 자기만 앞세우는 좁은 행위, 고집스런 행동을 만든다. 집착은 정지된 물체처럼 활력을 죽인다. 돈에 집착하면 자기 위주로 서두르게 되고, 색에 집착하면 추해지고, 빠른 성과에 집착하면 실수가 잦다. 집착에 빠지면 전부를 볼 수 없어 엉뚱한 곳으로 가거나, 특정한 일에만 잡혀서 사람 구실을 잃고 초라한 자기로 추락하게 한다. 집착이 독선으로 발전하면 남까지 어렵게 하고, 대인관계에 부딪힘이 많고, 나중에는 사람과 행복을 잃는다. 집착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한다는 것을 알지만 집착을 집중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음이 변하는 것은 기적이다. 충격적인 자아 자극으로 고정관념과 병적인 습관을 깨트려 가야 한다.



물질 속을 뚫고 나가는 중성자와 짝이 되는 정신은 통찰과 깨우침이다. 중성자가 물질 속을 빠르게 돌진하려면 아주 작게 쪼개져야 하듯, 강한 정신으로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품위 있는 행복을 누리려면 똥 같은 마음들(변덕과 이중성, 타성과 집착(我執), 독선과 오만, 고집과 어두운 마음)을 자기반성으로 분해하고, 일에 무리가 따르면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자기반성을 통한 깨우침과 방향전환이 없으면 항상 그 수준이다. 스스로 알아서 전체를 보는 것은 어렵다. ‘지금 이대론 산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자기 물음을 던지고 보다 새로운 것을 보려고 하면서 통찰력을 키워야 한다.



가속도 법칙과 열정의 행복



제2의 물리법칙인 가속도의 법칙은 물체에 힘을 가하면 힘의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저항이 생기므로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면 저항보다 더 큰 힘을 가해야 한다는 속성이다. 가속도 법칙을 자동차에 비유하면 자동차의 엑셀을 밟으면 속도가 증가하지만, 속도에 비례하는 맞바람이 생기고, 달리던 자동차가 물체에 부딪히면 (차량 무게 X 가속도)만큼의 충격을 받는 현상이다. 가속도의 법칙을 정신세계에 적용하면 정신은 뭔가를 의미 있게 추진하려고 하지만 잡념이 생기므로 원하는 삶을 살려면(슬픔보다 기쁨의 총량이 더 많으려면), 강한 정신으로 잡념을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힘과 저항의 법칙인 가속도 법칙을 행복에 적용하면, 차가 앞으로 나가려면 맞바람보다 센 추진력이 필요하듯, 행복의 길에는 불행이라는 저항이 따르므로 불행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 행운은 없고, 하나가 유리하면 하나는 불리하고, 힘이 있는 곳에는 저항도 있다. 행복하려면 먼저 행복의 방향을 잡고 열정으로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 빵 하나도 제조하려면 밀가루와 불과 기술이 만나야 하듯, 행복도 (물질x 정신X 기술)의 배합으로 만든다. 힘이 질량과 가속도에 비례하듯, 행복은 건강, 정신력, 처신술에 비례한다. 방이 추우면 춥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군불부터 지피는 의지가 필요하다.



성급한 행복에는 반드시 다양한 형태의 불행이 저항한다. 가속도가 저항을 밀고 나가게 하듯, 인생의 저항을 열정으로 밀고가야 한다. 지나친 행복은 불행으로 발전하며, 반성이 따르는 불행은 행복으로 변한다. 세속적인 행복은 욕구 충족과 발산이 원만할 때 생기지만, 욕구가 지나치면 반드시 예고하는 징조(건강 상실, 일의 꼬임, 해코지와 갈등 발생)가 있고, 그 징조마저 무시하면 불행으로 이어진다. 열정의 출발은 미미하지만 열정을 누적하면 엄청난 위력을 낳는다. 열정이 있으면 고통을 뛰어넘을 수 있고 자기 일에서 가속도를 발휘하며, 스스로 행복할 수밖에 없는 방법을 찾는다. 좋은 환경이 행복을 만들기도 하지만, 실제는 거친 환경을 이겨낼 때 행복이 생긴다. 과거 위인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열정으로 승리했다.



힘이 클수록 저항도 크듯, 열정이 클수록 후유증도 따른다. 열정은 체면과 형식이라는 벽을 깨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지만, 열정의 방향이 틀렸다면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칼이 된다. 인생의 바탕이 되는 힘들, 체력과 정신력, 경제력과 실력, 통합력과 창의력 등이 행복을 만들지만, 온전한 행복은 입체적 조화력에서 나온다. 조화력만이 대인 충돌과 스트레스라는 인생 저항을 줄이기 때문이다. 몸에 맞는 식사와 활동을 하고, 상대가 시비를 걸면 그의 생각과 주장에 맞추어 주며, 나를 필요로 하는 시간과 공간에 위치하며, 서로의 이익을 조율해야 한다.



작용반작용 법칙과 상생의 행복



제3의 물리법인 작용반작용 법칙은 특정 부위에 힘을 가하면 똑같은 힘이 반대 방향에서 작용한다는 원리다. 작용 반작용 법칙은 정신세계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준대로 받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대우받기를 원하면 대우하라.’는 작용반작용을 의식한 말이며, 밝게 보면 밝은 일들이 생기고, 내가 유익한 마음을 내면 주변도 신나게 돌아가고, 상대를 이롭게 하면 그도 나에게 행복을 주고, 내가 웃음을 보이면 상대도 웃음으로 화답한다.



손으로 책상을 치면 책상도 똑 같은 힘으로 나의 손을 치고,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주는 대로 받는 것은 인생 진리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인과응보의 언어이며,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공식이며,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대변하는 법칙이다. 빛과 물로 자라는 과일도 물이 나쁘면 암(썩음 병)이 걸리듯, 아무리 정의로운 일도 부실한 원인이 개입하면 부실한 결과를 초래한다. 분노처럼 작용과 반작용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도 있고, 꽁 했다가 시차를 두고 보복하는 반작용도 있다. 정당한 지적을 하면 바로 반발하지 못하지만, 상대는 소극적 행동, 결례(缺禮), 나쁜 소문과 부정적 이야기로 지적한 사람을 공격한다.



작용반작용 법칙을 행복에 대입하면, 행복도 순리를 따르고, 행복할 수밖에 없는 행동을 해야 행복이 생기고, 남을 이롭게 해야 남도 나를 이롭게 한다. 선대가 쌓은 복으로 후손이 받는 행복도 있지만 그냥 오는 행복은 없다. 이미 누리는 행복도 착한 마음을 품고 챙겨야 나의 행복으로 등기되며, 내가 행복하려면 남도 행복하게 해야 한다. 어떤 일을 도모하기 전에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가 기분이 좋을지? 내가 이런 조치를 한다면 누가 아플지? 상대를 기분 좋게 하면서 나의 입장도 함께 사는 방법은 뭔가? 등 > 상대 입장을 고려하여 행동해야 저항을 줄일 수 있다.



힘은 서로에게 작용하기에 반대 방향의 힘을 살펴야 한다. 바둑에서 자기 돌만 보는 사람은 상대 의도를 읽지 못해 질 수밖에 없듯, 상대 입장과 반대 입장을 헤아려 배려하지 못하면 공든 탑도 무너진다. 행복하려면 행복을 작동시키는 마음들(감성과 감사, 자아와 자신감, 사명감과 사랑 등)과 인품을 뼈대로 삼고,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더불어 사는 인간 세상에 노력 없이 생기는 행복과 나만의 행복, 홀로 만드는 행복은 없다. 행복도 서로 엇물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가 길면 하나는 짧은 게 자연 이치다.’ 좋은 일에는 마가 따른다. 호사다마(好事多魔)다. 행복과 불행은 짝으로 움직인다. 이유 없는 무덤이 없듯,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어떤 일이든지 지나치면 멈추게 한다. 돈이 많다고 행복하고, 로또에 당첨 된다고 부자 되는 것이 아니다. 배부른 돼지는 가난한 시인의 행복을 모른다. 의지와 욕망의 중심을 살피고, 악마가 홀린 돈과 권위의 마법에서 깨어나라. 돈과 권력은 행복을 주지 않는다. 지금 내가 하는 일과 내가 보고 있는 상대가 바로 행복의 산실이며, 인간 세상의 이치를 살피는 것이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행복을 얻는 길이다.



역풍은 항해를 돕는 조력자, 밤은 새벽으로 가기 위한 침묵이며, 역경은 영광을 위한 시련이며, 불행은 행복을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다. 행복을 위한 노력을 했는데도 불행하다면 그 불행을 약으로 삼고 기다려야 한다. 행복하려면 자기 원칙으로 세파의 흔들림을 막고, 주변 환경이 거칠다면 불평하지 않고 유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나에게 누가 대립각을 세우고 흔들고, 반대하고 시비 건다면 무서워하지도 맞상대 하지도 말고, 나를 강하게 하는 약으로 삼아야 한다. 역풍과 맞서 항해하는 배처럼 인생도 고통 속에 진보해야 행복을 누린다.



양자역학과 통찰의 행복



세상에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내 마음을 내가 모르고, 상대 마음은 더욱 모르고, 초 단위로 변동하는 주식의 종가(終價)도 모르고, 누가 승리자가 될지를 모르고, 5분 뒤의 나를 모른다. 세상은 온통 모름의 연속이다. 미래를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한 물리학이 있다. 1975년 미국의 핵물리학자인 「프리초프 카프라」는 ‘물리학의 도(道)’라는 책을 통하여, 최종 관찰을 하기 전에는 어떤 결과도 단정 짓지 못한다는 양자역학을 발표했다.



양자역학은 고양이 실험으로 설명한다. <밀폐된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고, 독약이 든 약병을 상자 꼭대기에 단다. 양자(전자) 운동에 의해 독약 병을 깨뜨려 고양이를 죽일 확률은 50 대 50이다. 관찰자가 관찰을 하기 전까지는 고양이는 삶과 죽음이 혼재된 상태의 허깨비로 존재한다. 관찰자의 관찰이 행해져야 비로소 살아있는 고양인지?, 아니면 죽은 고양인지? 가 결정된다.> 양자역학은 불확실 시대에 미리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관찰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양자역학을 행복에 적용하면, 정해진 불행도 정해진 행복도 없다. 끝까지 지켜보아야 그 결과를 알 수 있다. 눈으로 보는 현재와 내가 위치한 공간도 전부가 아닌데, 온통 걱정하고 두려움에 빠져 있으면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2개의 나로 존재한다. 육체적인 나와 영적인 나다. 영적인 나는 에너지로 존재하면서 나를 지켜보고 관찰하면서 나를 보호하려는 ‘나’다. 육체가 스스로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허깨비로 추락하면 영적인 나를 호흡으로 불러서 안정을 찾게 하고 육체가 실존하게 해야 한다. 필자가 꿈의 존재를 해석하면 두뇌의 활동이 둔해진 상태에 영성이 찾아와 현재의 영성 상태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꿈이 조잡하고 산만하다면 자기 영성과 교감이 안 되고 있다는 뜻이다. 진정한 행복은 육체적인 나와 영적인 나가 조화를 이룬 상태에서 얻을 수 있다.



고민했던 것이 고통으로 연결되는 것은 3%도 안 된다고 한다. 거동불능의 불행이 아니라면 불행은 패배의식일 뿐이다. 현재의 고민과 고통은 껍데기 의식의 작품이다. 껍데기가 아닌 실체로 존재하려면 확실한 현재를 활동하고, 강한 마음으로 불확실과 불행을 무시하고, 마냥 행복하다고 마술을 걸어야 한다. 지금 불행하다면 불행한 이유를 백지에 적어보자. <지나간 서러움과 아픈 추억, 상사와의 갈등과 직장 불안, 실수로 손해 본 일, 사고로 인한 몸의 부자유, 물질의 궁핍, 동료에게 상처 입은 일 등> 불행한 이유는 수 만 가지가 넘을 것이다. 백지에 적을 수도 없는 부끄러운 일과 실수도 있을 것이다.



불행하다고 나열한 대다수의 일들은 스스로 마음이 만든 불행이거나 생활의 불편 요소일 뿐이다. 욕망과 욕심으로 인간 구실을 잃고, 물리적 구속과 거동 불편으로 몸의 자유를 잃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일들은 불필요한 근심이 만든 허깨비들이다. 마음이 만든 불행은 실체가 없으면서도 몸에 붙어서 악착같이 괴롭힌다. 행복하려면 허깨비 마음이 만든 불행의식을 영성으로 모조리 제거해야 한다.



통찰(洞察)은 불행도 행복임을 알게 한다. 통찰이란 처음과 끝을 훤히 꿰뚫어 보는 능력이다. 통찰은 지금의 나는 우주 생명체의 총합이며, 삶과 죽음이 하나이며, 죽음은 끝이 아니라 탈바꿈 과정임을 알게 한다. 통찰하지 못하면 연결된 세상을 모르고 자기중심으로 행동하고, 소유와 권리로 행복을 찾다가 사람을 잃는다. 통찰이 없으면 허상 속의 환상, 꿈속의 꿈에 빠져 자기 에너지를 자기가 착취한다. 지속적인 수련으로 통찰의 힘이 생기면 불행과 행복을 동전의 양면으로 해석하며, 강한 마음을 선택하여 세파를 밀고 가며, 때로는 부족한 현재에 적응하는 것이 행복임을 깨닫는다. 통찰은 나는 2개의 존재지만 물속의 물처럼 하나로 어울리게 하는 관찰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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