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통의 메일이 왔다. ‘세 번째 직업은 정신과 의사’라는 글을 보았다고 한다.
명문 S대를 졸업하고 외교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수년에 걸쳐 외무고시에 도전을 하였으나 실패를 하였다. 선생이라도 할까하는 마음으로 다시 공부를 하여 교대에 입학하였다고 했다.

오래지 않아 그 역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다시 심기일전하여 현재 모 기업에 취직하여 근무하고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또 다른 직업을 찾아 보고 있다고 한다.

30대 중반의 나이를 지나가는 시기에 명문대학을 졸업한 소위 엘리트라는 소리를 들었을 그녀가 왜 이렇게 방황을 하고 있을까?
그녀의 명국(命局)을 간평해 본다.

한눈에 들어오는 명국의 그림은 마치 영화 아바타 한 장면인 떠 있는 산을 연상하게 한다. 영화의 장면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지만 이러한 인생의 그림은 한마디로 안정감이 없는 인생이다.

능력이 있어도 안주할 곳이 없으면 떠돌이 인생이 되고 만다. 차라리 학벌이 없고 적지 않은 나이라면 그냥 떠돌이 방랑객처럼 살라고 하겠지만 세 번의 업을 바꾸어 가면서 나름 열심히 살아 왔지만 결과가 없으니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오행의 자리에서 그나마 쓸 만한 자리는 자신을 포함한 공부자리 뿐이다. 자생력을 가진 학업의 자리는 마치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라고 말하고 있다. 문제는 공부와 부합하는 전공, 적성의 자리가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고난 명국이 무관(無官)의 명(命)이라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하겠지만 이러한 불연(不緣)은 그녀가 그토록 꿈 꿔왔던 나라의 감투 또한 인연이 없음과 연결이 되니 아쉽지만 팔자에 정해진 운명(定命)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인생은 타고난 선천(先天)명국으로 부귀빈천(富貴貧賤)이 정해지고 후천운로(後天運路)로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정해진다.

설령 귀하게 타고 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살아가는 운의 흐름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 시기를 시점으로 인생의 재미는 시작이 된다. 문제는 그 시기가 언제이냐이다. 아쉽지만 그녀는 가지고 있는 능력은 좋았지만 운의 흐름은 뒷받침 되지 않았다.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시기에는 나라에서 주는 감투와는 무관한 흐름이었고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지금 시기는 마치 소작농이 자작농을 하고픈 시기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인생자리 자체가 공망(空亡)이었던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생의 자리는 곧 직업의 자리다. 이 자리가 공망(空亡)이면 아무리 명문 S대를 졸업 하였다고 해도 그녀는 방황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자신이 생각하는 직업도 다른 시각에서 검토 되어야 한다.
직업(職業)이란 단어를 한자로 쓰게 되면 직(職)은 벼슬 관직 등을 맡아 다스린다의 뜻이 있고, 업(業)은 생계 생업 학문 등의 뜻이 있다. 정확하게 직의 의미와 업의 의미로 구분되어져야 한다.

직(職)의 표현은 Occupation이다.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내 업무요, 책상이다. 언젠가는 다른 조건에 의해 대체가 되는 자리이다. 업(業)의 표현은 Vocation으로 적성, 자질 등으로 나타나며 나중에는 Mastership으로서의 성장이 가능하다.

오행의 자리가 나타내는 모습은 바로 적성 자질을 나타내는 업(業)을 말한다. 그녀가 지금 찾고 있었던 직업은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확히 직업(職業)이 아니라 직(職)을 찾았기에 자기 일에 만족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타고난 자리가 공망이라 어쩌면 찾지 못했던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이제 그녀가 찾아야 할 것은 업(業)의 관점에서 보는 직업이었다.
한참을 지나 자신이 하고 싶은 직업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의 얼굴에는 이내 화색이 돈다..

상담을 마치고 문을 나서면서 한마디 한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한번 보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하기야 공부가 제일 쉬운 그녀였으니 못할 것도 없으리라..

자신의 인생을 찾기위해 네 번째 도전에 나서는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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