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 아무리 지혜로운 말을 해 주어도 도대체 자기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 생각과 자기 판단에 맹종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또 다른 정보를 받아들이는 일은 번거롭고 이성적으로 보아 확실한 정보라 해도 수용하지 못한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너무나 잘 알아 익숙한 것, 자기가 실패와 오류를 경험하여 답을 갖고 있는 것, 그래서 누구보다 확고한 믿음으로 보증할 수 있는 것만 믿는다. 설령 그것이 지극히 자기적(自己的)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맹신한다. 실패를 하고 손해를 봐도 그 원인이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라고 믿지 않고 또 다른 문제요인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라도 믿어야 덜 불안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자신의 신념을 믿고 심지어 타인에게도 강요한다.

사람들은 과거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어 한다. 언제나 두려운 것은 선택이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되풀이 할까봐 불안하다. 자신은 물론 타인의 마음을 판단하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인간의 마음을 다 안다고 장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오만한 자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인간의 마음은 무형(無形)이다. 고정된 형태가 없다는 것은 그 변화를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다. 80, 90 혹은 100세 된 노인이라고 해도 자신이 맞닥뜨려 보지 못한 일에서 자기 마음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경험하지 못한 일에 자신 있어 하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말 한다면 그는 경솔(輕率)한 자다.

인간의 마음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 몰리는 이유는 해결되지 못하고 무의식에 남아 있는 기억들 때문이다. 이성적으로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라 해도 세포는 기억하고 있다가 과거의 경험과 비슷한 일을 만나면 바로 반응한다. 학자들은 이것을 트라우마(trauma)라 명명했다. 트라우마는 과거의 경험기억에 따라 강하게 혹은 미미하게 반응한다. 우리는 때로 어떤 상황이나 관계 속에서 자기의 이성적 판단과는 전혀 다르게 반응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경험이 있다. 그런 모습이 매우 낯설어 돌이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언행하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알게 된다.

트라우마가 표출되는 방식은 다양하다. 분노, 거부, 부정이나 방관, 무관심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본인은 그것이 자기 무의식의 기억이라는 것은 알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합당한 변명거리를 끊임없이 찾는다. 합리화(合理化)다. 똑똑한 두뇌를 가진 사람일수록 자기 합리화에 능숙하다. 이러저러한 이유 혹은 자료들을 조합해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을 잘 한다. 이런 사람은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이 상당히 어렵다. 끝까지 변명거리를 찾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조금은 부족한 사람일수록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더 잘 수용하고 인정한다.

무의식(無意識)은 인지되지 않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참 앎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자신의 경험이 전부가 아니라 수많은 것 중에 한 가지를 경험한 것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섣부르게 타인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에게 보여준 그 사람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고 전혀 다른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개인의 역사는 그렇게 수많은 상처와 아픔과 기쁨들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각자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으며 지극히 자기적(自己的)이다. 중요한 것은 내 생각에 내 판단에 그들을 끌어 들이지 말고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서로가 조금씩 내려놓고 배려하는 것만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