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갈수록 불신(不信)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탐욕 세력의 모순을 노출시켰고, 민도(民度)의 향상으로 자기만을 위해 사는 군상들을 식별하게 되었고, 과학의 이름으로 깨트려선 안 되는 성역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제 누구도 믿지 않으려는 삭막한 세상이 되었다. 우주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인간에게 어쩌면 믿음은 가공(加功)의 세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정신세계는 바람 빠진 공처럼 허접하고 생기를 잃는다.



믿음은 그대로 받아들여 의심하지 않는 마음이다.
엄마는 자기만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기의 믿음부터, 믿을 것은 자기밖에 없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 신은 결정적일 때 나를 보호한다는 신에 대한 믿음까지 믿음의 유형은 다양하다. 믿음은 힘과 용기를 주고,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보다 행복한 자리를 잡아준다. 생명체는 빛으로 성장하면서도 누적된 빛의 흔적을 볼 수 없고, 향기를 맡을 수 있지만 손으로 잡을 수 없고, 제단의 향불이 타는 것은 볼 수 있지만 신이 응감하는 것은 알 수가 없다. 믿음이 있으면 생체 에너지가 흔쾌하게 가동되어 인간이 하지 못할 일이 없다. 믿음이 없으면 인간은 동물에서 진화된 가벼운 생명체에 불가하고, 고통의 세상에 빠져 행복을 잃는다. 믿음으로 행복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보자.



1) 믿음의 눈으로 오묘한 세상을 받아들이자.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상 자리까지 잡아주고, 의심은 내가 딛고 선 기반마저 무너뜨린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마저 흡수하여 3차원의 삶을 가능하게 하고, 그러나 믿음이 없다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몽땅 잃어버리고 2차원 세계에 머물게 한다. 믿음은 일목요연하게 세상을 보게 하지만, 믿음의 결핍은 초점이 흐린 안경처럼, 금이 간 렌즈처럼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2개의 형상이 잡힌다. <신이 있다. 없다. 사후세계가 있다. 없다. UFO가 있다. 없다.> 믿음은 현상 세계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받아들임이다. 믿음으로 세상의 이치와 현상을 정리하지 못하면 반쪽 인간으로 추락하지만, 믿음으로 수용하면 나는 우주의 유일한 존재로, 불안감 없이 당당하게 살 수가 있다. 신에 대한 믿음은 단순한 막대기도 마법의 지팡이로 승화시키지만, 신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신은 똥칠한 막대기처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오묘하게 진행 되는 세상을 보면서도 신의 존재를 조각내면 믿음은 표류하고, 신에 대하여 논리와 분석의 칼을 대면 비린내가 붙고, 믿음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2) 큰 믿음으로 행복의 에너지를 보충하자.

인간은 자연물의 사용자일 뿐이다. 인간은 물방을 하나 만들지 못한다. 인간 세상을 운용하는 주체, 세상 운행을 뒷받침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가정하지 않으면 해석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벌레 하나의 움직임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신의 세계를 믿어야 정신적 회의감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행복한 조건을 갖추고도 믿음이 부족하면 행복의 에너지가 누수 되어 행복을 유지할 수 없지만, 불행 속에서도 믿음이 있으면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있다. 뭔가 큰 힘의 일부로 살고 있다고 믿을 때, 나의 기대와 반대로 가는 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불행한 일이 발생해도 두렵지 않고, 눈앞의 거절과 이별도 큰일을 위한 시련으로 위로할 수 있고, 죽음을 소멸이 아니라 마지막 삶의 과정, 본래의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여행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3) 나에 대한 믿음을 키우자.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나는 나를 믿어야 한다. <잘 할 수 있는 나, 하면 되는 나, 어디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나, 준비와 노력으로 원하는 바를 얻으려는 나, 여건이 부족하면 더 노력 나. 등>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 나는 나로 존재하며, 불가능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생긴다. 자기에 대한 믿음으로 평안과 강대함을 가지려면 자신과 대화를 해야 한다. <나는 어디에 정신의 뿌리를 내려야 하나? 나의 사명과 장점으로 찾아야 할 일은 무엇인가?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뭔가? 등 등 > 생각을 반복하고 생각을 정리하여 영혼의 씨앗을 찾고, 묻고, 기다리면 믿음의 소리를 듣게 되고, 우리는 생명체의 일부로 태어난 단순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된다.



삶이 벅차고 힘이 들면 믿음을 키워주는 가상의 영혼과 대화하자. 배신당하여 미움이 생기면 자비로운 부처와 가상의 대화를 하고, 존재문제로 고민되면 창조주 하느님과 대화를 하고, 인간의 본성 문제로 의심이 생기면 인간 질서를 세운 공자와 대화하고, 다투느라고 잃은 것이 있다면 간디의 영혼과 대화해야 한다. 가상 존재와 영혼의 대화를 하면 큰 에너지가 생긴다. 자기 대화 속에 믿음이 생기면 물질과 정신이 연동한다. 물질은 정신을 구원하고, 정신은 물질의 본래 자리를 찾아주어 고귀하게 한다.



4)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갖자.

인간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이라고 하지만, 함께 하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삶은 너무도 피곤하다. 상대를 보는 눈을 믿음으로 정비해야 한다. <인류는 한 뿌리 자손, 미운 상대도 나의 일부다. 상대를 미워하는 것은 나를 미워하는 것이다. 등 > 상대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 함께 살 수가 있다. 믿음은 묵은 감정을 세척하여 새로 시작하는 활기와 기회를 주지만, 의심은 묵은 감정을 더 악화시켜 완전하게 멀어지는 이유가 된다. 믿음은 결론이 명확한 논문처럼 세상의 질서 자리를 잡아 주지만, 의심은 마무리와 종결이 없이 항상 의문 부호로 남는다. 인간에 대한 믿음은 생기를 주고, 불신은 불안감을 준다. 신이 준 행복이든, 나의 의지와 정신력이 만든 행복이든, 상대와의 교감에서 오는 만족감이든 행복의 실체는 믿음에서 오고, 믿음으로 유지된다.



5) 믿음도 수련으로 성장한다.

나무에 꽃이 피었다고 다 열매가 되는 것이 아니고, 한번 믿었다고 영원한 믿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믿음을 지속할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육체는 밥의 힘으로 활동하듯, 정신은 수련으로 보다 큰 믿음을 만들고, 세상에 대한 믿음은 행복을 만든다. 행복자산이 숙성되고 행복이 머물게 하려면 정신을 닦고 정비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세워야 한다. 먼저 주면 받는다는 믿음, 참고 기다리면 기회가 온다는 편안한 믿음, 촛불을 끄면 달빛이 비추어 준다는 믿음을 갖자. 거친 돌도 반복해서 다듬으면 옥석이 되듯, 자기 의지로 만들고 싶고, 얻고 싶은 믿음도 반복하면 이루어진다. 지성이면 감천이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믿음도 노래하고 수련하면 온유함과 따뜻함이 응감하여 어둠도 사랑으로 빛나게 하며, 아픔은 행복을 위한 보약이 된다. 엄연히 존재하는 영혼의 세계, 무한 에너지를 주는 영적인 세상을 믿고 행하면 능히 이루지 못할 것이 없고, 어디에 위치하더라도 조화로운 존재로 살 수 있다.

# 저는 종교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랜 군생활을 하면서 종교에 대한 편견을 버렸습니다.

   이번 글을 종교적 비교 잣대로 보지 마시고,
   저마다의 믿음의 기준으로  보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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