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은 행복의 방패







최근 신문을 보다가 ‘오래되고 유명한 맛 집’기사를 읽었고, 맛 집의 위치를 보면서 순간적으로 기사 내용의 맛 집이 25년 전에 정직한 감동을 준 경기 북부, 이동면의 그 집임을 알았다. 먼 길 찾아갔더니 25년 전, 8월에 ‘식은 밥은 줄 수 없다.’던 그 집이었다. 넓은 식당이었지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고, 맛은 변함이 없었다. 그 때 주인아주머니는 할머니로 변해 있었지만 성공한 맛 집의 CEO 답게 기품이 고우면서도 당당해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이동면의 유명한 맛 집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5년 전의 일이다.



정직한 영혼을 접하고 감동을 받았던 체험담 하나를 소개한다.
25년 전, 소대장 직책을 끝내고 군단장 부관 면접을 보았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모처럼 동기생을 만나 사령부 앞 허름한 식당에 들렸다. 서로 바빴고 부대로 복귀하는 버스 편도 제한적이어서 간단한 음식을 시켰는데, 주인아주머니 왈 <양심상 식은 밥을 줄 수 없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따듯한 밥을 주겠다는 주인의 단호한 명령에 어쩔 수 기다리느라, 버스도 놓쳤고, 늦게 복귀하여 질책을 받았지만, 주인의 정직한 행동은 오래도록 감동으로 남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좌표 하나를 심어주었다.







정직은 있는 그대로를 진솔하게 보여주는 심성이면서 올곧은 태도다.
인간이 체면을 세우고, 쉽고 편하게 살고 싶고, 불리한 것을 감추려는 것은 어쩌면 보호 본능이다. 정직은 사실 그대로를 말할 수 있는 용기이면서,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려는 감성이다. 인생은 불확실 위험과 고난이 따르는 여행이다. 그 고난의 여행을 이기게 하는 최대의 친구는 정직이다. 정직하면 부딪힘과 손해가 발생하고, 고지식하다는 말도 듣지만, 정직은 자신을 자랑스럽게 만들고, 남에게 감동을 주고, 자기 성찰을 통해 성공의 발판을 만들고,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인간 자본이다. 정직하게 살면 고달픈 일도 생기지만 결과적으로 신뢰와 신용으로 사람을 얻고, 삶이 행복해 진다.



반면, 거짓은 남을 속이고, 나쁜 의도를 감추려는 말과 태도다.
거짓은 3가지 유형이 있다. 1) 사실대로 말하면 - 체면 손상, 관계 불편, 노고의 가중 등 - 손해를 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나쁜 의도는 없지만 습관화된 거짓, 순간적인 체면 보호와 품위 유지 때문에 일시적인 위장, 다수의 의견에 맞추려다가 중심 생각을 잃는 이중적 태도, 자신을 과도하게 포장하는 뻥튀기는 남을 해코지할 의도도 없이 저지르는 방어적 거짓이며, 2) 남을 고의로 속여서 이익을 취하려는 검은 거짓이 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일을 꾸며서 남을 속이고, 본심을 감추고 진실과 실체가 아닌 것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행위, 고도의 사기성 연출력으로 거짓을 참으로 둔갑시키는 거짓 등은 공공의 적이 되는 공격적 거짓이다. 3) 희망과 용기를 주려는 하얀 거짓도 있다. 표현은 거짓이지만 남을 돕는 착한 거짓이다. 정직으로 행복을 찾고 지키는 방법을 보자.



1) 진실로 하나 뿐인 자아를 지키자.

자아는 자기에 대한 인식이며, 자기를 행동의 주체로 만드는 존재의 핵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대답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표현하고, 불편한 것이 있으면 불편하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자아가 성숙하지만, 자아에 거짓이 개입하면 자아(自我)를 죽여서, 자신을 허깨비로 만들고, 에너지를 낭비하고, 거짓은 거짓으로 이어져 영혼을 피폐하게 한다. 반면 정직은 항상 자기답게 당당하게 살게 하며,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 평온하게 살게 한다. 인생을 평온하게 하려면, 거짓된 자아 - 불리한 상황을 일단 피하려는 비굴한 자아, 허상으로 부풀려진 껍데기 자아, 세상은 착한 사람이 더 많은데, 세상이 온통 거짓일 줄 아는 병든 자아- 를 제거해야 한다.



죽은 나무에 꽃이 필 수 없듯, 거짓의 자아와 영혼은 실체감과 정체(正體)성을 잃기에 자기를 비굴하고, 무기력하고, 존재감이 없는 상태로 만든다. 살아 있어도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은 속이지 못한다. 작은 실수하나도 나의 영혼은 나를 보고 있다. 거짓은 자기 영혼을 초라하게 만들고 남에게도 혼란을 준다.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거짓된 자아를 죽여야 한다.(거짓은 독하게 죽이지 않으면 절대로 버리지 못한다.) 거짓이 습관이 되면 거짓의 성에 갇혀 거짓과 사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등본에 이름이 있어도 그 이름은 허구다. 잡초를 방치하면 곡식이 죽듯, 거짓을 용인하면 거짓에 자아가 죽고, 자기가 아닌 허깨비로 살게 된다.



2) 허상에 속으면 이중적인 거짓을 만든다.

정직하게 살고 싶은데 허상에 잡히면 본의 아니게 거짓을 범한다. 허상은 물속의 보름달 건지기처럼 없는데도 있다고 믿는 착시현상인데 허상에 빠지면 자기가 자기에게 속고 또 남을 속이게 된다. 허상은 실체도 없이 가상으로만 존재하는 망상, 체면이 만든 과시행위, 실존하지만 실체감이 부족한 미확인 사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못하는 허풍, 자기 상상이 만든 요행수와 막연한 기대감, 자기 판단만으로 내린 성급한 결론, 지키지도 못하면서 말이 앞서는 약속은 모두 자기가 만든 허상이다. 자기가 만든 허상은 어떤 나쁜 의도가 없이, - 다만 통찰 부족으로- 자기가 자기에게 속게 만든다. 자기가 만든 허상에 말리지 않으려면 자기 마음속에 잠자는 공짜 심리, 사행심리, 요행수를 순장시켜야 한다.



어떤 허상은 의도적으로 만든 것도 있다. 종말론, 원리주의자들의 성전 강요, 부동산 거품, 닷컴 거품, 서브프라임 사태는 소수의 사기꾼이 계획적으로 만든 허상이며, 소수의 이익을 위해 부풀리기하고 사탕발림을 한 의도적 허상이다. 의도적 허상을 만드는 사기 세력은 남을 이용하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허상의 바벨탑을 쌓고, 가치 이상의 거품을 만들고, 자신들이 만든 거품에 상대가 속아 주기를 바라며 거품을 판매한다. 허상을 조작하는 사기꾼들은 초기에는 이윤의 부스러기를 주면서 허상의 바벨탑을 믿게 했고, 허상의 바벨탑이 무너지면 의도는 좋았는데 다수의 협조가 부족했다라고 변명을 한다. 남이 제공하는 허상에 속지 않으려면 직접 보고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3) 세상을 직접 보고, 읽고, 살펴라.

논술시험을 잘 보려면 문제해결 능력보다 문제와 지문(誌文)부터 잘 보고 잘 읽어야 한다. 문제와 지문 속에 출제자의 출제 의도, 출제자가 요구하는 문제의 핵심, 어떻게 연결하고 풀어갈 것인가? 하는 글의 전개 방향과 해답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만 급하여 지문을 대충 읽고 문제해결에 치중하면 핵심 키워드를 놓치고, 엉뚱한 방향으로 글을 전개하고, 글을 압축하고 연결하는 힘이 떨어져 출제자가 요구하는 좋은 논술을 만들지 못한다. 어떤 말을 할 때, 마음만 급하여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자기중심과 자기 개념만으로 이야기하면, 나쁜 의도를 품지 않았지만, 거짓된 말을 하게 된다. 반대로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살피지 못하면 속을 수 있다. 상대가 이야기하면, 좀 알더라도 안다고 말을 끊지 말고, 끝까지 듣고, 의문이 있으면 끝까지 물어서 진의를 파악해야 한다. 상대의 진의를 모르고 덤벙거리면 자기도 속고, 자아를 허깨비로 만들 수도 있다.



4) 네모 구멍엔 네모 못을 박아라.

살면서 너무 바른 소리하고, 정직해서 큰 손해를 본 적이 있고 자리를 잃기도 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너무 솔직하게 자기감정을 표현하면 갈등을 만들고 평화를 깬다. 너무 고지식한 정직은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기 쉽다. 어느 의사가 말기 암 환자에게 ‘아무 이상이 없으니 밥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라.’고 했더니 완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표현은 거짓이지만 믿음을 주어 사람을 살린 경우다. 좀 못생긴 사람에게 ‘뭔가 모를 기운과 기품이 있다.’라는 하얀 거짓이 있듯, 상대가 네모를 요구하면 일단 네모에 맞추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상대가 네모를 요구하는데 네모가 틀렸다고 원을 끼우면 충돌이 난다. 정말 동그라미가 맞더라도 네모의 모자람을 힐난하고 비웃을 것이 아니라 네모난 구멍에 일단 맞추어 주고 난 뒤에 동그란 모습으로 변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의 주장과 내 기분을 조금 줄이고 서로 맞추어 살 때 그것이 평화요 사랑이다.



5) 오로지 정직하려면 욕심을 줄이고 절제하라.

진짜 거짓은 욕심이 만든 모순과 잘못이 노출되면 손해를 보거나 기존 관계가 깨질 것이 두려울 때 생긴다. 따라서 거짓의 원천은 욕심이다. 바다는 메울 수 있어도 욕심은 채우지 못한다. 욕심은 기준도 없고 채울수록 증가하기 때문이다. 욕심이 증가하면 욕망과 기대감이 상승하여 무리한 행동을 하고, 무리한 행동은 모순과 잘못을 범하고, 용기마저 부족하면 거짓으로 잘못을 감추려고 한다. 남을 해코지하는 공격적 거짓은 욕심 때문에 생긴다. 마음에 과욕의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양심에도 제어되지 않는 면역성이 높은 거짓이 자리를 잡고 불안과 불화를 생산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정직을 지키려면 ‘오로지 정직’이라는 사령관을 임명하여 원거리에서 쳐들어오는 탐욕과 나쁜 짓을 차단해야 한다. 정직한 영혼은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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