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불우한 환경 탓도 있지만, 인간 스스로 만드는 불행도 많다. 몸과 정신의 부조화로 인한 무절제, 말초신경에 끌려가는 욕망, 중심이 없는 가치관, 결과 중심의 성급함, 현장 확인을 못하는 게으름은 스스로 불행을 만든다. 필자가 행복의 글을 쓰는 것은 불행을 체험하고 불행을 요리하는 방법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잠시 불행했던  시간 한 토막을 소개하여 행복의 본질을 생각해 보자.



심심풀이로 카지노에 갔다가 손목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혹독한 아픔을 겪었던 일이 있었다. 카지노는 쓰린 맛과 함께 절제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약자가 변명을 앞세우는 것처럼 카지노를 가게 된 이유는 황도사의 유혹의 강의 때문이었다. <카지노는 단순 도박이 아니다. 확률과 조합이라는 수학 게임이다. 대원칙을 정하고, 기록해가면서 일관성을 유지하면 돈을 잃지 않고, 그리고 바로 덤비지 말고, 잃은 사람 자리를 찾아서 자리를 정하고, 화가 난 사람과 반대로 하면 딴다.>는 카지노 속설(비법)을 듣고, 도박은 죽어도 하지 않겠다던 내가 재도전의 길을 재촉했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카지노를 찾았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일인당 5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공황에서 입국 수속을 밟듯이 검사를 받고 입장했다. 우리 일행을 인도했던 황도사의 조언대로 공짜 음료수부터 마시고 객장을 둘러보았다. 먼저 다양한 사람이 보였다. 남녀의 구분이 없었고, 등산 복장부터 양복차림까지 복장도 다양했고, 눈이 퀭한 사람,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 멍한 시선으로 기계를 작동하는 사람 등 객장은 사람으로 가득 찼지만 웃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기계와 싸우는 게임, 카드놀이, 돌림판, 3개의 주사위를 던지는 게임 등 도박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도박의 원리는 같았다. 공짜 심리가 있는 사람을 유혹해서 빈털터리를 만드는 악마의 게임이었다.



음료수를 마시고 객장을 둘러보는 순간까지는 환상 단계였다. 환상은 미리 승자를 만든다. 나에게 큰 행운이 올 것 같은 예감, 좋은 일을 하고도 가난하게 살아 온 나에게도 큰 행운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 오늘은 뭔가 될 것 같은 주술적 힘에 끌려서 만원의 지폐를 코인으로 전환하고 게임을 시작했다. 5분이 경과하자 도박은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계속 기계 속으로 지폐를 투입했다. 황도사가 지도한 비법은 먹히지 않았고, 기계는 지폐를 먹는 하마였다. 마음은 점점 본전 생각으로 무거워졌다. 환상은 무너지고 영혼은 심한 갈등을 겪었다.



이미 진 게임에서 피해를 줄이는 것은 바로 일어서는 것인데, ‘나의 행운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한번만 더....’라는 기대감에 묶여 시간이 갈수록 고통의 깊이는 깊어지고, 은행을 다녀오는 횟수와 동선은 증가했다. 절제가 무너진 영혼은 욕망의 포로가 되었다. 카지노로 데리고 온 황도사가 미워지고, 분노의 기운이 비집고 나와 기계를 때리기도 했다. 나답지 않은 행동에 깜짝 놀라기도 하면서 형체 잃은 영혼은 ‘지금이라도 일어서라.’고 호소했지만, 본전 회복에 집착하는 마음은 ‘곧 나의 행운이 온다.’고 믿으며 배팅 금액만 높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심각한 상태의 인간 군상들이 보였다. 초점을 잃어버린 얼굴, 욕설을 해대는 미치광이들(?)의 소란 속에서도 행운의 팡파르 소리는 환상곡처럼 울리면서 사람들을 자리에서 묶어둔다. 질 수 밖에 없는 확률 게임, 일어서는 것이 빠른 구원의 길임을 알면서도 손을 털지 못하고 유혹을 끊지 못한다. 카지노에서 15시간 동안 많은(?) 돈을 잃으면서 인간의 이성적 한계를 느꼈고, 욕심과 영혼이 싸우는 이중 곡선을 읽었고, 환상에서 영혼의 파멸에 이르는 길이 너무도 순간적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기계에 붙들린 나를 일어서게 한 것은 영혼의 울림소리 ‘아직도 늦지 않았다. 돈은 땀으로 벌어야 한다. 기계와 싸워서 돈을 버는 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를 듣고, 남아 있는 코인도 챙기지 않고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오자 밤바람이 시원했고, 흐린 하늘 사이로 별이 보였다. 빛나는 별이 원점으로 돌아온 영혼을 축하하는 듯했다.



욕망 속에 살아가는 인간에게 절제는 평생 수련해도 실천하기 어렵지만, 최소의 행복을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언어다. 마음이 욕망을 따르거나 긴장감이 와해되는 순간 무절제 상태로 돌변하여 몸의 노예가 된다. 비현실적 환상과 집요한 욕망은 무절제의 뿌리이며, 거친 기질과 조급증은 무절제의 동반자이며, 중독성 기계(컴퓨터, 게임, 인터넷 사냥)는 무절제에 이르게 하는 도구다. 절제에서 무절제로 가는 것은 순간적이다. 무절제에 빠지면 영혼이 방황하고, 악에 붙들려 놀아나고, 마음은 끝없이 추락하면서 고통의 늪으로 빠진다.



행복의 싹을 밟는 무절제 극복 법.

성선설(性善說)은 인간은 본래 착하기 때문에 수련으로 욕망을 다스릴 수 있다고 보며, 조상들은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면서 깨우침을 통한 자기 절제를 강조했다. 그러나 아닌 길인 줄 알면서도 털고 나오기가 쉽지는 않다. 욕망에 쫓기면 추해져서 사람다움을 잃고 영혼의 평화를 잃고 어둠 속에서 허둥거리게 한다.

욕망 쪽으로 나의 발이 움직이려고 하면 ‘이건 아니야.’라고 호통을 쳐야한다. 그래도 욕망이 죽지 않고 활동하면 ‘욕망의 행적은 하늘이 기억한다. 욕망은 나를 포함한 가까운 이에게 악영향을 준다.’라고 내면을 긴장시켜서 욕망을 누르고, 독한 마음으로 본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절제는 행복을 지키는 에너지이며. 고고하고 맑은 쪽을 택하게 하는 영혼의 동지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