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큰 코끼리가 춤추고 축구하는 장면을 본 사람들은 코끼리의 영리함과 온순함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온순하게 길들여지기까지의 과정 뒤에는 억압이라는 숨은 그림이 있다. 어린 야생의 코끼리를 잡아와 길들이는 훈련(태국 용어로 피잔 의식)을 보면, 어린 코끼리를 작은 울타리에 가두고 ‘커창’이라는 쇠꼬챙이로 찌르고 때려서 사람만 봐도 질리게 만든다. 코끼리가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순응(順應)이 아니라 인간에게 반복적으로 당한 공포가 무서워 그냥 살기 위해 조련사가 보내는 신호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코끼리가 어려서부터 억압에 길들여지면 힘이 센 코끼리로 성장해서도 작은 말뚝에서 벗어날 생각을 못한다.

코끼리가 억압에 길들여지는 것처럼 인간도 억압에 길들여진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심성(야성)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지만 수많은 길들임의 수업을 받는다. 어려서부터 교육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얼차려와 체벌을 받고, 정도와 합리라는 이름으로 잔소리와 바가지를 긁히고, 사회는 서로 살기 위해서 예절과 질서를 강요하고, 조직은 생산성 논리로 인간을 길들인다. 인간은 잔소리가 반복되고, 조직의 통제규범과 권위라는 횡포에 시달리면 부당한 억압에도 저항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거나, 억압을 즐기는 의식적 노예가 된다. 외부의 억압은 지속되지 않는데, 당장 손해 보는 것이 두렵고, 따돌림과 왕따가 싫어서 본심을 감추고 따르는 척 한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지만 억압의 사슬에 걸리면 자기를 잃는다.



조직이 범하는 관행적 억압.

일방적이고 관행적 억압이 계속되면 사랑과 진실의 언어가 사라지고, 겉치레와 미움의 언어가 가득 차 마음은 아니면서 겉으로는 웃는 체 한다. 직장인들은 일보다 사람이 어렵다고 한다. 일은 생존과 보람을 주는 심신의 노동이자 놀이지만, 조직이 나를 지배하고 억압하면 사람이 싫어진다. 조직의 악마는 조직이 부여한 권력과 법(규정)을 앞세워 간섭하고 억누르며, 생산성을 이유로 인격을 해체하고, 차별 대우와 공정하지 못한 보상 등 사람을 압박한다. 조직이 일의 생산성을 높이고, 서로 살기 위해 통제와 간섭, 힘을 돋움 하는 활동은 불가피하지만, 질서유지라는 이름으로 억압하고, 조직의 이익을 위해 억압의 쇠꼬챙이로 찌르고, 불편한 존재를 감정적으로 쳐내는 것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다.



자아를 가해하고 괴롭히는 자기 억압

사회적 억압보다 무서운 것은 자기억압이다. 인간이 억압에 묶이는 것은 사실 자기가 자기를 억압하기 때문이다. 자기 억압은 누가 말려 줄 사람도 없고 치유도 어렵다. 누구도 나보고 불행하고 슬퍼하라고 하지 않는데도, 자기가 자기를 억압하고, 비틀면서 불행을 만든다. 이 세상 모든 일은 자기 마음에 달려 있고 자기 마음이 만든 결과다.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도 다 자기 마음이 만든 것이다. 자기 억압의 철창에 갇히면 자신감과 자부심을 잃고, 행동이 위축되고, 근거 없는 죄의식에 시달리면서 영성을 잃는다. 자기 억압에서 해방되려면 자기를 억압하는 과거의 기분 나쁜 일을 성숙을 위한 시련으로 인식하고, 자기 기준으로 만든 가책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세상을 관조하는 영혼으로 신을 찾고, 밝은 세상을 내다보아야 한다. 세상은 내가 스스로 억압하지 않으면 누구도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다.



자기를 억압하는 사람은 남도 억압한다.

나의 영성이 중심을 찾고 지키지 못하면 죄의식과 결벽증, 두려움과 걱정, 집착과 불안이 스며들어 자기를 억압의 사슬로 묶는다. 스스로를 억압하는 곳에는 자유는 없고, 각종 스트레스와 해소되지 못한 욕망이 풍선처럼 삐져나가 결핍감과 피해의식을 만든다. 결핍감은 손에 쥐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뭔가 대리효과를 찾지만 녹녹치 않다. 결핍의 마술에 걸리면 만족 허기증으로 분노와 화를 만들고 아집과 집착의 덫에 걸려 싸움이 잦다. 자기 억압이 강한 사람은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에 대해 불평하고 억압하려고 한다. 자기 억압은 결국 남까지 피곤하게 만든다.



감성과 영성으로 억압의 치유.

인간은 어떤 이유로도 억압받지 않을 자유의 존재다. 나는 나의 행복을 찾고, 만들고 누릴 책임과 사명이 있는데, 무지와 어둠에 쌓여 스스로 억압하고 있다. 빛이 없는 동굴에 독성이 강한 곰팡이가 자라고, 억압의 동굴에는 행복의 빛이 도달하지 못한다. 억압의 동굴에 갇혀 영성을 잃으면 지은 죄도 없이 우울하고 위축된다. 잡초를 제거해야 곡식이 잘 자라듯이, 나를 억압하는 근심과 걱정을 털어내고 버려야 한다. 억압으로부터 나의 영혼을 지키려면 지나간 모순과 허상을 각성으로 녹이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며, 나의 생각을 크게 펼쳐서 마음의 감옥소를 해방시켜야 한다. 억압이 사라진 곳에 행복도 영성과 함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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