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응원하고 보상하라.









2004년 3월 30일 24년 군 생활을 접고 전역을 했다. 원하지 않은 전역을 하고 사회로 나왔을 때의 심정은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추락한 기분이었지. 정의로운 집단에 의한 개인 매장을 탓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나의 잘못으로 돌렸다. 미숙했던 일을 용서하고 다시 일하게 해 달라고 탄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울하고 괴로운 기운은 오래 동안 뇌세포를 자극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를 사는 것이 걱정이었고, 과거의 불쾌한 기억은 수시로 불쑥거렸고, 몸에 배인 권의의식은 세상 속으로 동참을 어색하게 했다. 낮에 나온 반달처럼 방황했고, 나의 의도와 다르게 진행되는 오류에 비틀거렸다.



반복되는 아픔을 이기지 못해 내장이 저릴 정도로 울었지만 대책이 없었고, 옷을 벗은 몸에는 바늘 하나 숨길 공간이 없었고, 나를 방어할 힘이 없었다. 항고(抗告)에서 이겼지만 복직하지 못했다. 질서를 존중하는 조직은 선한 의도를 악으로 판결했다. 나의 성공을 기대하셨던 어머니는 쓰러지셨고, 친구들은 떠나갔다. 나는 스스로 나의 정체(正體)성을 부정했고, 세상을 두려워하는 벌레가 되었고, 벌레의 움츠린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몇몇 부하들이 찾아와 ‘다, 운명입니다. 이제부터 더 행복하면 됩니다.’ 라고 위로했지만, 나 자신이 초라하고, 가엾고, 보기 싫었다. 44세, 생을 나의 의지로 마감하려고 강원도 정선에 갔다가 할머니 한 분이 콩 타작을 끝내고 콩을 고르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는 돌만 골라내시고, 벌레 먹고 찌그러지고 덜 아문 콩은 골라내지 않기에 ‘할머니, 찌그러진 콩은 왜 버리지 않나요?’ 라고 질문했더니 할머니는 ‘콩이 찌그러진 것도 억울할 텐데 내가 버리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어, 덜 여문 콩도 들어가야 달콤한 장맛이 나는 법이여!’라고 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나는 순간 깨우침의 번개를 맞았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쓰임새가 있듯, 내가 겪는 불행 또한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며, 불행은 고통만 주는 괴물이 아니라 더 큰 영광을 주기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불행을 요리하여 행복을 만들자, 라고 위로를 했다.



그러나 불행을 수용하고 도전하는 세상은 복잡했고 편견이 심했다. 사회로 먼저 나온 동기생이 힘들게 사는 나에게, ‘인생은 아파도 참아야 하는 인생(忍生)이다.’ 라고 위로했다. 그러나 서로 바쁜 사람끼리 위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의 무의식에 갇힌 아픔을 내가 치유(治癒)하지 않으면 불안과 불행은 반복이 되었다. 사전(辭典)은 불행(不幸)을 ‘완전(完全)하지 못한 상태’로 간단하게 정의하지만, 피부로 느끼는 불행은 괴롭고, 불쾌하고, 멍하게 만들고, 식은땀이 흐르고, 목살을 저리게 하고, 삶의 의미마저 앗아갔다. 불안감이 우울함으로 발전하던 어느 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고, 인간은 새로 태어나기 위해 자신의 고정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문장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

신분 하락의 쓸쓸함과 피해의식, 가족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내 속에 패자의 수용소를 만들고 억압했다. 마음이 아렸고 마음이 아팠다. 그대로 있으면 빈곤층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생겼다. 그대로 무너지는 것이 두려워 성공을 위한 4각의 링 - 인위, 경쟁, 욕망, 비교- 에 올라가 싸웠다. 삶 자체가 생존을 위한 폭력이라고 합리화도 하고, 선택과 집중을 성공의 진리로 받들고, 뭔가(가치와 권력) 가져야 품위가 선다고 믿고, 나의 것이 될 것만 같은 상상 속의 꿈을 찾아 꿈틀거렸다. 우월한 돈벌이를 해야 행복한 줄 알았다. 그러나 몸이 바쁠수록 일은 꼬였고, 싸움은 늘어났고, 불행은 계속 되었다. 온통 아픔이었다.



아프니까 인생이다. 부족하고 부실하고 아쉽게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면 몸과 마음이 아팠고, 상대가 나 때문에 아파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아프다는 사실을 남이 몰라주면 서럽고, 이렇게 아프게 인생을 마무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허무를 느꼈고, 이런 저런 아픔으로 날이 갔다. 아픔이 아픔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고 싶어 나름대로 위로의 언어를 주문했다. 인생은 아쉽고, 아프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게임이다. 충격도 아픔도 다 지나간다. 의식의 수용소에 갇혀서 치유되지 못할 불행이라면 리콜하고 정비하여 행복으로 탈바꿈시키자.



네팔의 산악인은 최악의 생활을 하는데도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최고로 높다는 기사를 읽었고, 크게 성공한 사람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주변에 행복한 사람이 많을수록 상대적인 불행을 느낀다는 외국의 논문을 접하면서 인생은 성공보다 행복에 대한 자기 이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수시로 노출되는 불행은 아픔의 생산물이며, 불행은 행복의 방해물이 아니라 행복을 제조하는 에너지라는 사실, 어쩌면 인생은 불행을 요리하여 행복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우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



불행이여! 너는 어둠에 빠진 영가(靈駕)이며, 슬며시 찾아오는 인생의 감기다. 너는 불안과 패배의식을 주는 괴물이며, 자기 사상이 없는 철학이다. 불행에 떨다가 가기엔 너무도 짧은 인생인데, 기준도 없는 불행에 속고 불행을 두려워하면서 아까운 시절을 허비했습니다. 인생은 불행을 요리하는 과정이며, 아플수록 행복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소서! 작은 불행에 호들갑을 떨지 말고, 피할 수 없는 불행과 아픔을 동반하는 불행이라면 행복이 약이라고 노래하게 하소서! 인간은 자기 문제는 자기가 해결해야 하는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감으로 문제를 이기게 하소서! 다시 일어서는 자아여, 불행의 꼬리표를 떼고 내 제국의 황제로 돌아가자. 배고프면 밥을 먹듯, 불행할수록 더 행복을 먹자.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이라면 하늘이 너에게 큰일을 맡기기 위한 시련으로 위로하자.



불운(不運)이여! 너는 불행과 안도감의 경계선이며 다시 일어서라는 경종이다. 넘어뜨리는 것은 다시 일어서게 하려는 의도임을 알면서도, 부족과 불운에 상처를 입었고, 상처의 긁으면서 덧나게 했습니다. 불운이 오더라도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는 불자(不字)의 언어들을 버리고, 고독의 강으로 가지 말고 삶을 채찍질 하게 하소서! 미운 종아리에 채찍을 들어서 새로운 힘을 주고, 경쟁으로 끊어진 인간다리를 관심으로 연결하여 정과 사랑이 오고가게 하소서! 불운을 털고 앞으로 나가려는 자아여, 너는 가능성의 존재이며 대본이 필요 없는 자유 연출자다. 불행과 불운이 오더라도 기죽지 말고, 내가 나를 응원하고 나의 애씀을 보상하라. 나의 역사는 내가 구상하고 내가 직접 쓰자.



불굴의 의지여! 당신은 넘어져도 바로 일어서는 오뚝이입니다. 문제는 풀라고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행과 불운에 잡혀 에너지를 낭비하였습니다. 청춘은 도전한 만큼 청청(靑靑)하고, 중년은 일어선 만큼 중후(重厚)하고, 노년은 신중한 만큼 노련(老鍊)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생명의 의지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고난도 불굴의 의지로 이겨가게 하소서! 암반에 뿌리 내린 소나무처럼 슬픔의 뿌리에서 기쁨의 꽃을 피우고 불행의 언덕을 넘어 행복의 정상으로 가게 하소서! 불굴의 자아여, 운명이 나를 속인다고 억울해 하지 말자. 불행이 나를 넘어뜨리면 강한 의지로 일어서고 일이 꼬이면 생각, 습관, 행동을 바꾸자. 타인을 의식하는 껍데기 자아를 죽이고 본디 나의 모습인 황제로 살아가자. 삶이 고단하고 힘이 들었기에 더 행복했노라고 노래하자.



자기 위로여! 당신은 내가 나의 정부(政府)를 인정하는 것이며, 아직은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비극적인 삶으로 마무리되는 오페라의 주인공을 보면서 인생무대는 누구나 아플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위로받게 하소서! 어떤 형태의 아픔과 불행이 오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오래된 친구와 대화하듯 자신을 위로하게 하소서! 불행은 나의 본성이 만든 결과물이 나에게 온 것에 불가하다고 나를 달래게 하소서! 아직도 나에겐 불행과 고통으로 마비된 손가락보다 행복의 감각을 느끼는 손가락이 남아 있음을 알고 불행이 악수를 청해오면 행복의 감각을 느끼는 마지막 손가락을 펴서 불행을 맞이하게 하소서! 항상 당당한 자아여! 나의 장점으로 나의 역사를 쓰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도 당황하지 마라. 잡초를 보면서 생명력을 불태우고, 마음이 몸과 함께 움직이도록 참으면서 수련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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