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貧: 가난)


                                - 낡은 집

 명심보감 성심편 상 40장에 보면 빈거요시무상식 (貧居鬧市無相識)이요 부주심산유원친 (富住深山有遠親)이니라는 구절이 있다. 이 뜻은 가난하게 살면 번화한 저잣거리에 살아도 서로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요 넉넉하게 살면 깊은 산골에 살아도 먼데서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다. 즉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의 비애를 알 수 있는 글이다.



우리나라도 가난했던 적이 있다.  6.25가 그렇고 일제강점기 동안이 그랬다. 근데 6.25에 대해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가끔 6.25를 헷갈려 한다. 다 아픈 우리의 역사이지만 그래도 잊지는 말고 그때를 거울로 삼아 다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낡은 집
                                              이용악


날로 밤으로
왕거미 불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 줄
은동곳도 산호 관자 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찻길이 놓이기 전
노루 멧돼지 족제비 어런 것들이
앞 뒤 산을 마음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 아들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두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가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 보냈다는
그날 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 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고양이 울어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 다니는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디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항한 발자국만 눈 위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이 시는 이용악이라는 시인이 1938년 <낡은집>이라는 시집에 쓴 건데 털보네 가족 이야기를 통해서 그 당시 우리 민족의 아픔을 시로 쓰고 있다.

이 시의 시작은 나의 죽마고우인 털보네 셋째 아들이 태어나던 그때의 이야기부터 하고 있다. 낡고 초라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를 두고 동네 아낙들은 축복을 하기보다는 무심히 ‘송아지래두 붙었으면 팔아나 먹지’ 라고 한다. 이 무심히라는 단어가 그만큼 사는 것이 각박했던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말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털보도 그날 밤 소주를 마시며 태어난 자식을 앞으로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할지 고민한다. 그렇지만 아이마저도 가난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나의 친구는 작고 소박한 꿈을 키우며 성장한다.



그러나 나의 동무가 아홉 살이 되던 겨울 밤, 결국 일곱 식구들은 가난 때문에 삶의 터전을 떠나 북쪽으로 몰래 야반도주를 한다. 사람들은 털보네가 더러는 만주로 갔을 것이라고 더러는 러시아나 시베리아 쪽으로 갔을 것이라고 말들을 한다. 계절이 바뀌어 꽃이 피는 철이 오지만 낡은 집의 황폐함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시이다.



1930년대의 일제 강점하에서 가난하고 살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시이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고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가난을 견디고 이제는 우리나라도 반도체 생산량, 선박 건조율, 초고속 인터넷 사용율, 등 세계 1위를 하는 것이 많은 나라가 되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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