愚溫達: 바보 온달

            - 박라연의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명심보감 염의편(廉義篇)에 보면 高句麗平原王之女幼時에 好啼러니 王이 戱曰以汝로 將歸愚溫達하리라 及長에 欲下嫁于上部高氏한대 女以王不可食言으로  固辭하고 終爲溫達之妻하다.  蓋 溫達이 家貧하여 行乞養母러니 時人이 目爲愚溫達也러라 一日은 溫達이 自山中으로 負楡皮而來하니 王女訪見曰吾乃子之匹也라 하고 乃賣首飾而買田宅器物頗富하고 多養馬以資溫達하여 終爲顯榮하니라는 구절이 있다.
 
   뜻은  고구려 평원왕(平原王)의 딸이 어렸을 때 울기를 좋아하니, 왕이 희롱하여 말하기를 장차 너를 바보 온달(溫達)에게 시집보내리라했다. 장성함에 상부 고씨에게 시집보내려 하니 딸이 임금은 식언(食言)을 할 수 없다. 하여 굳이 사양하고 마침내 온달의 아내가 되었다.

 온달은 집이 가난하여 거리를 다니며 구걸해오다가 어머니를 섬기니 그때 사람들이 이를 보고 바보 온달이라 불렀던 것이다. 어느 날  온달이 산 속으로부터 느릅나무 껍질을 짊어지고 돌아오니, 임금의 딸이 찾아와 말하기를 내가 바로 그대의 아내다 하며 수식(首飾)을 팔아 전지(田地)와 집과 기물(器物)을 사서 매우 부유해지고 말을 많이 기름으로써 온달을 도와 마침내 이름이 빛나고 영달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염의편(廉義篇)은 옛사람들의 청렴과 의리에 대해서 쓴 부분이다. 이 염의편에는 서조와 홍기섭이라는 인물과 평강공주가 소개된다. 그중에서 많은 드라마와 동화속에서 이야기되어지는 온달과 평강공주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 온달조(溫達條)에 나와 있는 이야기이다.  




  평원왕은 고구려 제25대 왕이었고 평강공주는 평원왕의 딸이었다. 평원왕의 딸은 매우 총명하고 도의심이 강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너무 울었기 때문에 장남삼아 한 아버지의 말을  임금은 식언을 하면 안된다고 하며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도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온달을 찾아가서 그의 아내가 되었다. 그리고  그를 도와서 집안을 일으키고 온달로 하여금 무예를 익히게 하고, 말을 길러 많은 무공을 세우게 함으로써 몸을 영달시키고 이름을 빛나게 한  평원왕의 공주야말로 의리 있고 어진 여성이라 하겠다. 이 이야기를 박라연 시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박라연




동짓달에도 치자꽃이 피는 신방에서 신혼일기를 쓴다. 없

는 것이 많아 더욱 따뜻한 아랫목은 평강공주의 꽃밭 색색

의 꽃씨를 모으던 흰 봉투 한 무더기 산동네의 맵찬 바람에

떨며 흩날리지만 봉할 수 없는 내용들이 밤이면 비에 젖어

울지만 이제 나는 산동네의 인정에 곱게 물든 한 그루 대추

나무 밤마다 서로의 허물을 해진 사랑을 꿰맨다

..가끔...전기가...나가도...좋았다...우리는...

 

새벽녘 우리 낮은 창문가엔 달빛이 언 채로 걸려 있거나

별 두서넛이 다투어 빛나고 있었다 전등의 촉수를 더 낮추

어도 좋았을 우리의 사랑방에서 꽃씨 봉지랑 청색 도포랑 한

땀 한 땀 땀흘려 깁고 있지만 우리 사랑 살아서 앞마당 대추

나무에 뜨겁게 열리지만 장안의 앉은뱅이 저울은 꿈쩍도 않

는다 오직 혼수며 가문이며 비단 금침만 뒤우뚱거릴 뿐 공

주의 애틋한 사랑은 서울의 산 일번지에 떠도는 옛날 이야기

그대 사랑할 온달이 없으므로 더 더욱




(박라연,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문학과 지성사 1994.)







  시 속의 평강공주는 가난한 산동네에서 신혼살림을 차린 새댁으로, 사랑을 꿈꾸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20대에 몰랐던 것을 지금은 알게 되는데 그것 중의 하나가 20대에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다 사랑하고 결혼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다. 정말 아니다. 지금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운명의 남자가 따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어딘가에 나만이 알고 있는 표식이 그 사람에게는 하나쯤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근데 지금은 운명의 남자는 늘 만나는 바로 그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평강공주도 울 때마다 아버지가 그러면 바보 온달한테 시집보낸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자라면서, 나중에 직접 온달을 찾아가 아내가 되지 않았던가.




 그리고 사랑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삼국사기 원문에 보면 더욱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온달은 얼굴도 못생겨 남의 웃음거리가 되었고 엄마도 눈이 멀었고, 가난하였다. 하지만 평강공주를 만나 장수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린다.  사랑에 있어 조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삼국사기에도 처음에 온달을 찾아가 평강공주가 결혼의 뜻을 밝히자 온달은 공주와 신분이 안맞는다고 생각하여 심지어는 너는 여우나 귀신일 것이다 하며 쳐다보지 않았는데 그때 평강공주는 칙구위동심(則苟爲同心) 즉 진실로 마음만 맞는다면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또 하나 영양왕이 즉위하자 온달은 왕에게로 가서 신라가 우리 한강 이북의 땅을 빼앗아 군현을 삼으니 백성들이 심히 한탄하니 자기가 군사를 데리고 가서 계립현과 죽령, 아서땅을 찾아오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며 나가서 싸운다. 그런데 온달은 아단성 (阿旦城) 아래에서 싸우다가 그만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죽는다. 장사를 행하려 하는데 상여가 움직이지 않으므로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아아 돌아갑시다 ” 하니 그때서야 관을 들여서 장사지낼 수 있게 된다. 죽음조차도 그들을 갈라놓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누가 아는가. 그 사람이 죽어서도 서로 사랑한 평강공주나 온달 장수처럼 그런 사람일지도 ........







박라연 

1951년 전남 보성 출생으로  원광대 국문과 박사,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생밤 까주는 사람』,『 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 』,『공중 속의 내 정원』,『우주 돌아가셨다』,『빛의 사서함』이 있고, 산문집으로『춤추는 남자, 시 쓰는 여자』가 있다. 제 3회 윤동주상(2008년) 문학 부문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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