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엔 삼성전자, 아니 이건희 회장을 충격으로 몰아넣는 두개의 사건이 발생한다. 이 두 사건을 계기로 삼성전자는 새로운 혁신을 준비하며 신경영을 선언했고, 본격적인 디자인 혁신에 나서게 된다. 먼저 첫 번째 충격으로 1993년 이건희 회장이 미국의 백화점과 할인점의 전자제품 판매 현장을 살피다가 삼성전자의 제품들이 3류 취급을 받으며 소비자로부터도 외면받고 있는 상황을 목격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한국에선 최고의 기업이자 브랜드였지만 막상 미국에선 3류 취급을 받는 것을 직접 목격한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짐작이 된다. 우리가 중국산 제품을 바라볼 때 3류 취급하며 값싼 것이 경쟁력이라고 하는 인식이나 당시 미국의 소비자가 삼성전자의 제품을 바라보는 인식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사장단을 불러서 미국의 백화점과 할인점 등 자신이 둘러봤던 코스 그대로 돌아보게 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공들여 만든 제품이고, 자부심이 강한 제품이자 브랜드였는데 이런 3류 취급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누가 충격을 받지 않겠나. 그리고 이건희 회장은 현지 법인 관계자에게 연회장을 마련해서 삼성전자 제품과 일본 선진기업 제품을 비교 전시하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받은 충격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일본 제품들과 직접 비교하면서 반성하고 각성하자는 의미였을 것이다. 아마 그때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경영진들이 더욱더 소니를 비롯한 일본의 전자회사들의 세계적인 제품들을 능가하겠다는 욕구가 극대화되지 않았을까.

같은 시기 두 번째 충격이 발생한다. 삼성전자의 디자인 고문이었던 후쿠다 다미오가 작성한 '후쿠다 보고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교토공과대 디자인학부 후쿠다 다미오(福田民郞) 교수는 일본과 미국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했으며, 일본의 NEC 디자인센터, 교세라 디자인실 경영전략팀을 거쳐, 1989년 삼성전자 정보통신 부문 디자인 고문으로 영입되었고, 이후 ‘후쿠다 보고서’를 작성하기에 이른다.
후쿠다 보고서는 이건희 회장에게 제출한 56페이지 분량의 적나라한 내부 비판 보고서를 말한다. “삼성전자 규모의 회사가 신제품을 만드는 데 상품기획서가 없다.”, “상품을 디자인할 때 A안, B안, C안은 출발부터 개념이 다른데도 윗사람들은 적당히 섞어서 제품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느닷없이 디자인을 사흘 안으로 해달라고 주문한다.” 등 디자이너를 바라보는 시각차의 문제와 디자인에 대한 인식 수준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당시 삼성의 구성원들이 디자인하면 패션 디자인만 떠올릴 뿐 공업디자인과 상품디자인에 대한 개념 자체에 대한 이해도 없다는 지적을 비롯하여, 삼성전자의 상품개발 프로세스에 관한 제언과 사업부제 실시에 따른 디자인 매니지먼트 방안 등도 담고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삼성전자의 디자인 인식 수준의 편협함과 몰이해에 대한 신랄한 지적이자 문제제기였던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후쿠다 보고서를 처음 읽은 것은 1993년 6월, 회의차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다고 한다. 보고서 내용에도 충격을 받았지만, 원래 후쿠다 보고서는 1991년 10월부터 세차례에 걸쳐 위로 전달되었음에도 상부에 의해 그동안 묵살되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던 것이다. 이런 충격이 삼성전자의 디자인 혁신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자 계기가 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이 바로 그런 배경에서 나온 셈이다. 신경영 선언의 핵심이 바로 디자인 혁신이었던 셈이고, 그것이 바로 삼성전자의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 경제인들 사이에서는 만약 후쿠다 보고서가 없었더라면 하고 아쉬워한다는 후문도 있다. 후쿠다 보고서가 삼성전자의 디자인 혁신을 촉발시켰고, 그 덕분에 삼성전자의 눈부신 발전을 이루면서 반대급부로 소니를 비롯한 일본의 전자회사들이 피해를 봤다는 이유에서다.

1993년 이후 삼성전자는 디자인혁신을 지향하며, 본격적인 디자인 경영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디자인 혁신의 원동력으로 꼽자면, 디자인경영센터의 구축, 디자인 뱅크 시스템의 구축, 명품 브랜드와의 협력작업 등이 있다. 디자인 역량강화를 위해 CEO 직속으로 디자인경영센터를 설립했는데, 의사결정권자와 디자이너의 거리를 좁히면서 디자이너의 의도가 보다 명확히 반영되고 혁신성과 실행의 신속성도 높아지게 된다. 디자인경영센터는 국내 뿐 아니라, 도쿄, 상하이, 샌프란시스코, LA, 런던, 파리, 밀라노 등에 해외 디자인연구소와 함께 운영되며 글로벌 디자인경영센터를 구축하게 된다. 주요 거점의 해외 디자인연구소를 만들고 현지인을 채용하여 현지 문화로 현지의 경험가치를 가진 현지 지향의 디자인을 만들고 있다. 디자인이 시각적 도구가 아닌 감성 도구, 경험 도구로서 마케팅 도구로 이어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인 셈이다.
디자인 뱅크 시스템은 디자인과 관련한 각종 정보와 디자인 안을 디자이너들이 쉽게 검색하여 활용할 수 있는 대규모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것이다. 아울러 당장 사용하지 않는 디자인 안들도 이곳에 저장되어 있다가 추후 활용가능성에 대한 여부를 정기적으로 검토한다고 한다. 이런 데이터베이스가 삼성전자의 디자이너 역량도 강화하고 동시에 삼성전자의 디자인 수준도 더욱더 높여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명품 브랜드와의 협력 작업을 통해 디자인 수준과 디자인 가치를 높이고 있다. 뱅앤올룹슨과 공동으로 명품 휴대폰 세린(Serene)를 개발하는 것을 비롯해서, 베르사체, 아르마니 등과도 휴대폰을 공동으로 개발했다. 덕분에 삼성전자의 애니콜은 세계 소비자들에게 고급스런 휴대폰의 대명사가 되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노력은 2000년 이후 결과로 서서히 나타나면서 세계적인 디자인상을 점점더 많이 수상하기에 이르고, 브랜드 가치도 점점 높아지며 세계 20위 수준까지 올라갔다. 당연히 매출도 2000년 이후 가파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디자인 혁신 10년만에 소니를 매출에서 추월하는 큰 성과를 이뤄낸 삼성의 성공신화는 해외 주요 경영대학원의 단골 경영사례가 되고 있다. 2004년 11월 29일자 비즈니스위크 유럽/아시아판에서 'SAMSUNG DESIGN'을 커버스토리로 다룬 것을 비롯 해외 언론에서도 관심가지고 지켜본 성공사례에 해당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인이 만들어낸 경제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다. 결국 삼성전자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은 1993년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해온 디자인 혁신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결코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소니를 제친 후 세계 최고의 전자회사가 된 삼성전자는 여전히 디자인 경영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2005년 4월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 회의’에서 “명실공히 월드 프리미엄 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디자인 브랜드 등 소프트경쟁력을 강화해 기능과 기술은 물론 감성의 벽까지 모두 넘어서야 한다.”며 디자인 경영을 더욱 강조했고, 디자인 경영바람이 삼성전자에서 시작하여 국내 주요 대기업들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삼성전자의 디자인 경영 성과는 국내 기업들의 디자인 경영 신드롬을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며, 디자인에 대한 기업의 투자규모는 급격히 늘어났고, 기업 뿐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의 디자인 경영도 크게 확대된 것도 결국 배경에는 삼성전자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위기는 기회를 낳는다는 말이 삼성전자에서도 증명된 셈이다. 1993년 이건희 회장에게 닥친 미국에서 3류 취급 당하는 삼성전자 제품이 몰고온 충격, 삼성전자의 디자인 수준이 열악하다는 신랄한 비판이 몰고온 충격이라는 위기가 디자인 혁신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낳은 것이기 때문이다.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www.digitalcreat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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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파워 : 소비자의 마음을 유혹하는 창조적 디자인경제학 (김용섭,전은경 공저, 김영사)>가 출간되었습니다.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힘이 궁금한 분들과, 디자인경제와 디자인경영에 대한 새로운 식견과 통찰이 필요한 분들에게 필독을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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