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김밥과 라면 이렇게 두 가지 상품만 존재한다고 해봅시다.

 

김밥의 가격은 1,000원이고 라면의 가격은 2,000원입니다.

 

그리고 길동이의 소득은 10,000원입니다.

 

이 경우, 소득 전부로 1,000원짜리 김밥만을 사먹을 경우, 총 10개를 사먹을 수 있겠죠.

또한 2,000원짜리 라면만 사먹는다고 하면, 총 5그릇의 라면을 사먹을 수 있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김밥과 라면을 섞어서 사먹는 게 제일 맛있을 테니,

길동이는 소득 1만원으로 김밥 6개(총6,000원)와 라면 2그릇(총4,000원), 그렇지 않으면 김밥 2개(총2,000원)와 라면 4그릇(총8,000원)을 사먹는 식으로 예산을 짤 것입니다. 소득 1만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길동이가 김밥과 라면을 얼마만큼 사먹을지는 순전히 길동이의 자유랍니다.

 

이를 아래 표로 정리해 볼 수 있겠죠.

 

 

또한 위의 표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그래프를 그려볼 수도 있는데요.

 

우리는 이 그래프를 예산제약선(budget constraint)’라고 한답니다.

즉, 주어진 소득의 범위 내에서 두 종류의 상품의 가격을 고려하여 각각 과연 몇 개를 구입할까를 합리적으로 결정한 선을 일컫는 것이죠.

 

예산제약선은 미시경제의 ‘소비자 선택이론’에서 무차별곡선과 함께 핵심적으로 쓰이는 그래프입니다. 소비자가 자기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소비의 최적점이 바로 예산제약선과 무차별곡선이 만나는 점이다. 뭐 이런 식의 이론이 도출되는데요…

 

여하튼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소득 1만원으로 1,000원짜리 김밥과 2,000원짜리 라면의 적정 숫자를 조합해서 구매를 한다는 거죠.

 

위의 그래프의 “a”와 같이 김밥 6개(총6,000원)와 라면 2그릇(총4,000원)을 사는 방식으로 소득 10,000원의 한도를 지키는 식으로 말이죠.

 

만약에 위의 그래프의 “b”와 같은 방식으로 소비를 한다면, 다시 말해 김밥 2개(총2,000원)와 라면 1그릇(총2,000원)을 산다면, 합해서 4,000원만 소비하므로 자신의 소득으로 최대한의 소비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뭐… 이건 개인의 자유니까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죠.

 

 

하지만 문제는 “c” 같은 방식의 소비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자신의 소득수준을 넘어서는 소비수준. 다시 말해 김밥 7개(총7,000원)와 라면 4그릇(총8,000원) 합해서 총15,000원을 소비하는 방식 말이죠.

 

물론, 소득이 총1만원인 상황에서 “c”와 같이 예산제약선을 넘어서는 (다시 말해, 자신의 소득수준을 넘어서는) 소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소비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아니, 대부분이 그런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다름 아닌 남으로부터 추가적인 돈을 빌려서 소비를 하는 방법입니다.

 

 

! 그럼 잠시 관점을 돌려서 공급자(생산자) 입장에서 봅시다.

김밥과 라면을 생산하는 공급자의 입장에선 소비자의 소득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김밥과 라면을 많이 팔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을 겁니다.

 

생각 같아서는 “c”점이 아니라, 김밥 10개, 라면 5그릇 아니 그 이상도 팔고 싶겠죠. 하지만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소비자들이 합리적 소비자들이라서 모두다 주어진 소득수준(총10,000원)에서 최대의 만족을 얻겠다고 할 경우, 공급자의 기대는 무참히 깨어집니다.

 

그래서 공급자들은 슬그머니 분위기를 조장합니다. 빚을 내어서 예산제약선을 넘어서는 소비를 하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빚’이라는 표현을 쓰면 괜히 어감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표현도 멋지게 스윽 바꿉니다.

 

신용(信用, credit)’이라는 단어로 말입니다.

 

“너는 빚쟁이다.” 라고 하기보단,

“나는 너를 신용한다.” 라고 한다면 아주 멋진 말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죠.

 

그리하여 사랑이나 우정만큼이나 가치 있는 단어인 ‘신용’을 ‘빚’이라는 단어와 혼동되도록 해서 소비자들을 현혹시킵니다. 소득수준 이상의 소비를 조장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죠.

 

 

신용카드(credit card) 꼼수가 여기에 숨어 있는 겁니다.

신용카드는 당신을 신용하기 때문에 발행해 주는 게 아닙니다.

신용이란 단어에는 ‘일단, 쓰고 보자. 일단, 예산제약선을 넘고 보자. 그래야 우리가 많이 팔 수 있다.’ 라는 공급자들의 꼼수가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소비자들은 오늘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예산제약선을 마구 넘나 들고 있는 겁니다. 상습적으로 넘어서는 곤란한 선을 말입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