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가 필요 없는 술자리가 있습니다. 상사를 도마 위에 올리면 그보다 나은 안주가 있겠습니까. 가끔씩은 상사복도 없는 자신이 처량해 보이기도 하지만 씹는 재미는 그게 최고지요.



씹히는 상사로서도 기분 나쁠 게 별로 없습니다. 윗사람이란 자리가 원래 그런 거라고 자위하면 그만이지요. 게다가 요즘엔 안주상에 올려지지도 못하는 상사들도 많답니다. 정말 비열한 상사들은 `타도 대상`이지 비판대상이 못되는 법이거든요.



직장인들은 어떤 상사를 제일 미워할까요. 한 번씩 생각해보시지요. 공(功)은 내 것, 잘못은 부하 것으로 돌리는 사람들, 직원들은 야근시키고 자기는 룸살롱 약속 때문에 일찍 퇴근하는 부류들, 자신에겐 관대하고 부하에겐 엄격한 사이비 군자들. 어디 그 뿐인가요. 위에는 아부로 기름칠하고 아래는 억지 명령으로 쬐는 부서장들이 좀 많습니까. 부하직원들이 자기 출세의 디딤돌인양 짓밟는 사람들이지요. 몇 년전 수차례 물을 먹다 마침내 임원이 된 한 대기업 이사가 한 말이 기억이 납니다. 그는 “우리 그룹에서 성공하는 비결을 이제야 알았다”며 “위에 잘 보일 것 없어, 밑에만 달달 볶으면(사실은 더 심한 말이었지요) 돼”라고 하더군요. 실적을 중시하는 그 회사 풍토를 빗댄 말이지만 섬뜩하더군요. 그 밑에서 일할 생각을 해보세요. 이런 이들에 비하면 무능한 부류들, 예를 들어 컴퓨터를 어떻게 끄는지도 모르면서 직원들이 PC앞에 앉아있으면 무조건 “게임하지 말라”고 외치는 컴맹 상사들은 양질 중의 양질이랍니다.



눈꼴사나운 짓을 하는 상사들도 배척 대상이지요. 아침마다 스포츠 신문을 들고 화장실로 간 뒤 함흥차사인 이들, 직원들 밥 사주는 돈이 아까워 혼자 점심 먹는 사람들(요즘 같아선 이런 분들은 이해해줘야 합니다), 판공비를 별도의 월급으로 생각하는 상사들을 직원들은 존경하지 않습니다.



컨설팅이나 회계법인 등 전문가 집단에서는 이밖에 결정을 빨리 짓지 못해 업무에 오히려 보틀넥(Bottle-neck)이 되는 사람들, 그냥 올려도 될 보고서를 엉터리로 고치는 `개악파`들, 업무 로드와는 상관없이 새 일을 덥석 물어오는 실적중시형, 회사 걱정하는 척 하면서 편가르는 정치꾼 등이 이 일하기 싫은 상사로 꼽히고 있답니다.



다국적 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례조사에 따르면 같이 일하기 가장 싫은 상사나 동료는 바로 `내 아이디어를 훔쳐 가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여러분도 이런 경험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실컷 새 계획을 설명해주면 공식 회의석상에서 “제 생각에는…”하면서 마치 자기 것처럼 보고를 하는 선배, 상사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런 이들은 정말 회사를 위해 솎아내야 할 사람들입니다. 부하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는커녕 아이디어를 낼 의욕조차 죽여버리는 악영향을 미치니 말이죠. 경쟁이 심해질수록 이런 일은 더 잦아질 게 분명합니다.



직장인을 위한 변명의 첫 칼럼은 이렇게 불특정 다수의 상사들에 대한 욕으로 시작합니다. 여전히 파탄지경인 우리 경제 상황이 대다수 선량한 `보통` 직장인들이 잘못한 탓으로 돌리기엔 너무 가혹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상사들의 잘못이 더 이상 술자리의 안주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건설적인 비판은 이제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야 합니다. 기업이나 조직의 성패가 작은 일들이 아니라 보다 큰 결정들에 좌우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상사들이 제대로 일하고 있느냐 아니냐는 경영진보다는 부하들이 훨씬 잘 알고, 느끼고 있습니다. 상향평가, 3백60도 평가방식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이런 점에서 다행스러운 추세입니다.



문제는 상사라는 개념이 상대적이란 데 있습니다. 말단 신입사원과 최고경영자를 빼고는 누구라도 부하인 동시에 상사인 것이지요. 상사에 대한 생산적인 비판을 해야 하는 동시에 부하들에게도 씹히지 않기 위해 열심히 뛰어야 하는 게 우리 시대 보통의 직장인들입니다. 당신은 어떤 상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