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초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처음으로 2천억 달러를 넘어섰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02억 4,900만 달러로 일본, 중국, 대만에 이어 세계 4위에 등극했었죠. 이러한 자랑스런(?) 사실이 TV 뉴스를 통해 대대적으로 방송된 것을 기억합니다. 아마 97년 외환위기 당시 갚아야 할 외화부채가 1,700억 달러가 넘는 상황에서 겨우 39억 달러 수준의 초라했던 외환보유액으로 엄청난 서러움을 당했던 터라 2천억 달러 돌파가 상당히 기쁜 일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말이죠. 2008년 하반기에 들어서자 상황은 또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난데 없이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바닥날 수도 있다는 괴소문이 돌아 우리를 불안하게 했으니 말입니다. 아니, 2007년만 하더라도 최고 2,622억 달러가 넘던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불과 1년 만에 고갈되고 있다니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입니까!

 

 

우선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당시 상황이 우리나라 외환 비상금 전체가 바닥났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2008년 말에서 2009년 초에는 ‘가용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이 위험수위에 왔기 때문에 그런 괴소문이 돌았던 것입니다.

 

u      왜 그 지경까지 되었을까요?

 

(1) 원달러 환율 급등 방어용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환율이 천정부지로 올랐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환율을 잡지 않을 수 없었죠.

 

가뜩이나 경기불황이라 기업실적도 나빠졌는데 연말이다 보니 기업결산시기까지 겹쳤죠. 같은 금액의 원화라도 환율이 오르면 달러표시 금액은 작아지게 마련인데 거기다 실제 실적까지 나빠졌으니 기업의 재무보고 자료는 엉망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적이 나쁘면 외국 투자자는 떠납니다. 그러니 정부가 좌시하고 있을 수는 없었죠.

 

앞의 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오르는 환율을 잡기 위해서는 정부(한국은행)가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원화의 가치가 올라가서 환율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를 위한 달러 자금은 어디서 충당해야 할까요? 결국 손댈 곳은 외환보유액밖에 없습니다. 당시 이렇게 빠져나간 돈이 2008년 12월 한달 동안에만 50억달러 이상으로 총 400억달러가 넘었다고 합니다.

 

(2) 정부의 1천억 달러 외채지급보증

게다가 신용도가 나빠진 시중 은행들의 외화표시 차입금에 대해 정부는 1천억 달러의 외채 지급보증을 서 주었습니다. 은행의 대외신용도가 흔들리면 국가 경제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는 뻔한 것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해당 금액인 1천억 달러만큼의 외환보유액은 사용하지 않고 놔둬야 했습니다. 만일의 사태로 은행이 두 손을 들었는데 정작 우리 정부의 금고에도 그 돈이 없다면 그야말로 디폴트(default)이기 때문이죠.

 

(3) 원·달러 통화스와프도 알고보면

그러다 보니 급기야 정부는 미국과 마이너스 통장까지 개설하기에 이릅니다. 바로 300억 달러의 원·달러 통화스와프가 그것이었죠. 이 중에서 2008년 말 104억 달러를 사용했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은밀히 말하면 부채인 거죠. 만약 통화스와프 만기시 재연장이 되지 않는다면 이를 갚고 그 만큼 외환보유액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죠.

 

(4) 불안심리

여기다 불안심리까지 겹쳤습니다. 한국에 투자했던 외국인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정말 큰일난다는 어처구니없는 루머까지 돌았었죠.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자산을 처분하고 빠져나가려면 당연히 원화를 달러로 바꾸어 나갈 것이고 그럼 원화 투매현상으로 환율은 천정부지로 오르겠죠. 이를 잡기 위해서 정부는 다시금 달러를 팔고 시장에 나온 원화를 사들여야 합니다. 정말 가용 외환보유액이 바닥났다는 우려가 생길 만 했던 것입니다.

 

참고로 당시 심리적 외환보유액 한계선이 2천억 달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11월에는 그 한계선에 거의 다 달았으며 실제로는 이미 한계선을 넘어 2천억 달러대가 무너졌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었습니다.

 

외환보유액 어찌 보면 사상누각

역사는 반복되므로 우리는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2008년 말의 사태로 외환보유액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어찌 보면 사상누각일 수도 있다는 교훈을 배운 같습니다.

△ 기업이나 시중은행 그리고 개인까지 포함하여 각 민간 경제주체가 제대로 된 신용관리를 하지 않고 외화부채에 너무 의존한다든지,

△ 나라의 경제체질이 약해서 언제든지 환율이 들썩거릴 가능성이 있다면 외환보유액은 순식간에 고갈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외환보유액은 결코 부자나라의 척도가 아닙니다. 외환보유액은 일종의 비상금일뿐입니다. 물론 비상금도 필요합니다. 그것도 두둑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하지만 비상금을 아무리 많이 쟁여 두어도 소득이 시원찮고 빚이 많다면 결코 부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는 외환보유액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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