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하지 않으면 사임하라(Design or resign)" 하라는 말은 마가렛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수상이 한 말로 유명하다. 국가가 디자인의 혁신성을 중요하게 강조했다는 것만으로도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 화두이고, 이것이 경제적으로도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1980년대 보수당 정권에서 디자인은 곧 혁신이라는 말로 통할 정도였다. 실제로 마가렛 대처 수상은 디자인 산업 육성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해냈고, 디자인 교육내실화와 디자인 경영 교육에 힘을 쏟았다. 1982년 수상관저에서 제품 디자인 세미나를 개최할 정도로 디자인을 국가 전략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다.

디자인의 중요성은 보수당 정권의 집권이 끝나고, 1997년 노동당이 집권하면서도 유지되었다. 노동당은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충만한 국가’의 이미지를 강조하며 창조적 산업에 정책의 초첨을 맞추고 있다. 토니블레어(Anthony charles Lynton Blair) 총리도 창조산업을 국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전략을 세워 강력한 정책을 펴고 있으며, '창조적 영국(Creative UK)' 캠페인과 '멋진 영국(Cool Britannia)' 라는 슬로건 아래 공공 디자인 우선 정책을 펼쳤다.
영국은 도시 디자인에도 많은 투자를 했는데, 대표적인 도시가 런던이다. 영국 정부는 1993년 '밀레니엄 위원회'를 설립해 초기 자금 20억 파운드를 마련한 뒤,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앞세워 '밀레니엄 브리지', '테이트 모던', '런던 아이' 등을 건축하며 런던을 세계적인 도시 디자인 사례로 손꼽히게 만들었다. 런던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는 건축물들이 속속 들어서며 런던의 이미지를 디자인 중심으로 바꿔놓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비약은 아닌 것이다. 전통과 역사가 현대와 미래와도 공존하는 것이 런던의 도시 디자인에서 드러나고 있다.

영국에서 디자인을 중심으로 하는 창조산업은 영국 전체의 총부가가치 생산의 10%, 수출의 9%를 차지하는 고성장 산업이다. 디자인산업의 매출은 2004-5년 영국 전체 GDP의 1%, 창조산업 전체의 14.7%를 차지했다. 현재 영국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창조적 산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중이다.

영국에서 디자인이 정치의 주요 키워드가 된 시기는 아주 오래되었다. 섬유산업이 발달했던 영국으로서는 디자인이 섬유산업의 경쟁력과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었음을 알았고, 일찌감치 국가가 나서서 디자인 관련 정책을 펴내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적 전통과 자산이 디자인을 만나 영국의 새로운 산업 생산력과 경쟁력을 이끄는 힘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을 만들고 지원했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중엽 총리였던 로버트 필(Robert Peel)이 영국과 프랑스 섬유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디자인 진흥방안을 제시했고, 이를 계기로 디자인 박물관과 디자인 시범학교가 설립되었다. 윈스턴 처칠은 1944년 산업디자인위원회를 설립하여 산업 디자인 육성 정책을 추진함과 동시에 전후 복구 사업을 가속화했다. 1945년 ‘굿 디자인 운동’을 전개했으며, 1970년대에는 정부 산하에 디자인 협의회(Design Council)를 설치해 디자인 육성 전략을 펼쳤다.

영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디자인 활용 증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디자인 수출 지원 체계도 갖추고 있다. 덕분에 디자인 컨설팅으로 전세계에서 벌어들이는 수입만 년간 10억 파운드 규모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디자인 수출국이 되었다. 이를 위해서 영국의 디자인 정책을 상징하는 디자인협의회(Design Council)는 디자인 방법론을 개발하는 등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고 있고, 디자인 정책 및 진흥을 담당하는 정부 부서인 DTI(Design Policy Unit)는 디자인 기관들과 다른 정부 부처들과의 연계를 통해 디자인 컨설팅과 디자인 수출을 지원하고 있고, 디자인비즈니스협회(Design Business Association)는 영국국제무역(British Trade International) 프로그램에 따른 디자인 전문회사의 수출 노하우를 교육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영국디자인이니시어티브(British Design Initiative)는 디자인 자문 및 추천 서비스를 통해 해외 기업이 영국의 디자인 서비스 산업에 투자하도록 지원하는 등 영국의 주요 디자인 관련 기구가 세계 최강의 디자인 수출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19세기 내내 산업혁명을 선도했고, 20세기 중반까지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주도했던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이름 아래 영원할 것 같던 영국의 영화가  20세기 중반 이후 극심한 노동운동과 과도한 복지 정책으로 경기 침체와 재정 적자에 직면하게 된다. 대내외적으로‘영국병’ 이라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초강대국이었던 영국으로서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보수당 집권과 마가렛 대처 수상은 과감한 개혁을 하게 된다. 1979년 집권에 성공한 보수당의 대처 수상은 철밥통으로 일컬어지던 국영기업들을 과감하게 민영화하고, 경쟁력이 없는 산업들에게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러면서 디자인의 중요성과 디자인의 경제적 가치를 내세우게 되었다. 오늘날 영국의 경쟁력이 바로 디자인이고, 이 경쟁력의 근간에는 정치 지도자의 결단과 디자인에 대한 탁월한 마인드, 그리고 수많은 디자인 정책들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국 정부와 국내의 주요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디자인을 주요 화두로 거론하고 있고, 중요성을 증폭시켜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흡한 것이 많고, 디자인에 대한 정치 지도자들의 마인드는 시각적 접근에 그치거나, 토건 산업을 백업하는 대외 명분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는 우려도 크다.
“디자인 하지 않으면 사임하라(Design or resign)” 는 말은 오늘날 한국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게도 그대로 통용되어야 할 것이다. 어설픈 디자인 정책과 보여주기식 디자인 사업은 경쟁력과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예산만 낭비하는 경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디자인은 하나의 도구나 이벤트가 아니라, 정책의 중심이자 경제의 중심 요소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www.digitalcreat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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