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엄마는 돼지가 새끼들을 끌고 다니듯이,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자녀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엄마들의 대표를 뜻하는 은어이다. 모 케이블 방송에서 강용석씨가 대치동 신조어 “마포구 돼지엄마가 바로 우리 아내다”라고 하여 공감을 자아냈던 말이다.

아이들의 ‘성적’에 따라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른바 ‘계급’이 결정되는 현실이 되었다.

아이의 성적이 좋고 유명 학원에 보낼 경제력에 정보력까지 갖춘 엄마들은 일명 ‘돼지엄마’로 불리며 그룹을 주도하고 멤버를 결정하는 ‘권력(?)’을 누린다고 한다. 물론 진원지는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다.

‘돼지엄마’의 무리에 같이 있다가 아이의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엄마는 점점 소외되기 시작한다. 아이가 한 번 등수가 뒤로 밀리면 소문이 어느새 엄마들 귀에 들어가 부모와 아이들 모두 그룹에서 따돌림을 당한다고 한다.



큰 아들의 고등학교 진학 상담을 위해 방문하였던 어머니가 둘째 아들의 진학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다시 방문을 하였다.

외고를 졸업하고 명문대에 입학한 큰아들의 고민을 해결한 어머니는 형과는 너무 다른 둘째의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고민도 깊어갔다. 그동안 누려왔던 선망의 위치를 둘째에게서도 바라고 싶었던 어머니는 현실이 녹녹하지 않음을 알았다.

강남의 종합병원 의사로 근무하는 남편은 물론 자신의 뜻대로 여태껏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돌아갔다고 여겼던 삶의 시스템은 둘째의 중학교 입학과 함께 점차 무너지고 있었다. 삶의 시스템이란 당연히 어머니 자신이 추구하는 시스템이다.



이제는 둘째가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큰 아들처럼 명문외고를 가느냐의 선택이 아니라 어느 지역의 고등학교로 가는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둘째 갈등의 골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만 간다..

강직한 성격에 카리스마가 출중하여 남을 설득하고 상담하는 직업이 어울리는 어머니는 큰 아들을 명문대에 보낸 후광으로 여러 어머니들의 교육 관련 멘토가 되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돼지엄마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목적지향적인 큰 아들의 성향과는 다르게 작은 아이는 관계지향적인 성향이다. 어머니 역시 목적지향적인 성향이었기에 큰 아이는 엄마가 이끌고 당기고 하며 나름 밀당의 재미가 있었다. 당연히 그 결과 또한 서로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었다.



문제는 작은 아들이다.

친구와 어울리는 것이 좋고 공부 성적도 어머니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오지도 않으니 도대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학업 자체도 본인이 원하는 것만 하고 싶어 하는 편식위주의 성향이라 뭐든지 잘해야 하는 어머니와는 또 다른 갈등을 자아낸다.

불과 일년 반 전까지 큰 아들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어머니의 모든 커리큐럼을 큰 아들위주로 하였던 터였다. 이제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작은 아들에게로 쏟아야 하는데 어머니와 성향이 전혀 달랐던 작은 아들은 어머니의 계획에서 시작부터가 삐걱대고 있다.

더구나 사춘기의 마지막 끝자락 흐름에 처해있는 둘째의 모습은 평소 어머니가 알고있었던 고분하고 착한 밝은 모습의 작은 아들이 아니었다.



“선생님! 둘째에 대한 모든 기대를 내려놔야 할까요?” 마치 내 자신은 노력하고 있다는 어머니의 하소연이다..

부모와 자녀가 겪고있는 갈등의 대부분은 자녀를 내 방식대로 해보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외국과는 다르게 자식들을 마치 소유품으로 여기는 정서 때문이라고도 볼수 있는데 자식사랑법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둘째는 충고나 어떻게 해보라는 설득보다는 차라리 이해하고 적극 공감하여 자신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거라고 하였다. 어머니의 성격상 어쩌면 힘든 일일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엄마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소의 시간이 소요됨은 당연한 과정이다.

어머니의 말처럼 둘째에 대한 모든것을 내려놓을 필요는 없다. 정말로 내려놔야 할 것은 성적의 눈높이에 대한 기대치가 아니라 내 자식을 내 뜻대로 이끌고 가보겠다는 보이지 않는 마음속의 아집(我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