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사는 올해 초에 만들어진 회사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직까지 이렇다 할 실적을 만들진 못했었죠. 하지만 이 회사는 얼마 전 커다란 쾌거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인도까지 가서 오더를 따온 거죠. 자그마치 1억5천만 달러가 훨씬 넘는 물량이었답니다. 하지만 이 회사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오더(order)를 낸 인도 측 회사에서 일종의 보증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출하는 회사에게는 흔히 있는 일입니다. 수입업체 입장에선 만리 타국으로부터 상품을 주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출업체 측으로부터 이를 잘 이행할 수 있다는 개런티를 받고 싶어 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니까 말이죠.

 

인도 회사가 요구한 것 역시 이러한 이행보증금이었습니다. 즉, A사가 자신의 은행 계좌에 얼마간의 돈을 입금한 다음, 해당 은행으로부터 이 사실을 증명하는 레터를 받아다 달라는 것이었죠. 그 돈은 전체 물량 중 1차 분의 일정 퍼센트를 차지하는 금액으로 대략 4억5천만원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한 A사가 그러한 여윳돈을 가지고 있을 리가 만무했습니다.

 

어렵게 해외시장을 개척하여 이머징 마켓이라는 인도를 뚫은 A사. 짧은 업력이지만 불굴의 의지와 마케팅 역량으로 인도에서도 내놓으라는 굴지의 회사로부터 1억5천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물량을 따낸 쾌거. 모두들 기뻐해야 하지만 A사는 오늘도 긴 한숨을 쉬고 있답니다.

 

오더는 땄으나 돈이 없다!!!

 

짧은 업력과 작은 자본금 때문에 어떤 금융기관으로부터도 4억5천만원을 빌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은행조차도 실적과 자본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대출을 꺼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A사가 이번에 4억5천만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이번 수출 오더는 다른 쪽으로 넘어 가게 된다고 합니다. 이는 A사만의 불행이 아닙니다. 수출을 위해 물건을 만들면서 고용이 창출됩니다. 고용 창출은 소득 창출로 이어집니다. 소득의 창출은 소비의 증가로 이어집니다. 수출 확대와 내수 증가는 우리 경제가 살아나는 가장 큰 두 개의 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기란 거창한 사업이나 정책을 통해서만 살아나는 게 아닙니다. 이러한 중소기업의 작은 땀방울과 그 결실이 모이고 모여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저라도 도와줘야 할 판에 은행 들은 뒷짐을 집니다. 제2금융권은 담보를 요구합니다.

 

주택담보대출의 0.000225% 만이라도 ‘가능성’에 투자가 된다면…

 

얼마 전 집값이 다시 들썩거려 온 나라가 난리였습니다. 그러면서 집값 상승의 주범 중에 하나로 은행들의 무분별한 주택담보대출을 지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9월말 기준으로 은행에서만 주택담보대출로 나간 돈이 200조원이라고 합니다. 국가 경제 측면에선 별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아파트를 거래하는 데 은행 돈 200조원이 들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돈의 ‘0.000225%’만 A사에게 대출 될 수 있다면 A사는 무려 1천5백억원(=1억5천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 올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물론, 은행이 자선단체는 아닙니다. 주택담보대출이야 아파트를 담보로 잡고 빌려주지만 A사는 담보도 없고 크레딧도 없는데 어떻게 돈을 빌려 주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A사는 오더 계약이 있습니다. 사업이 잘되면 아파트보다 훨씬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란 게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날의 우리 은행들은, 아니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그러한 가능성에 손을 들어 주지 않나 봅니다. 그것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현물(現物)인 아파트가 더 땡기나 봅니다.

 

그러한 사회는 발전이 없는데 말입니다.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A사 뿐만이 아니라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우리나라 사회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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