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감성터치 - 장미와 가시



장미는 꽃의 여왕이다.  장미는 태어날 때부터 꽃들의 왕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원을 보면 그 말이 실감이 난다.  온갖 종류의 꽃들이  활짝 피어있어도 장미 앞에서 그들은 조연이다.  요리보고 조리 봐도 장미가 주인공이다.


 


장미의 가장 손꼽히는 특징은 매혹적인 향이다.  로마시대부터 장미를 증류하여 향수를 만들어 낸 것도 이 때문이다.  장미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꽃으로 18세기 이전 장미를 고대 장미(old rose)라고 하며 19세기 이후 장미를 현대 장미(modern rose)로 나눈다.


 


장미에게도 큰 흠이라고 해야 할지.  장미 나름의 고충이 있어 보인다.  바로 <가시>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들 단단하고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서 <가까이 하기엔 머나먼 당신>이다.  명색이 여왕인데 결코 가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속 또한 편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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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경기도 파주에 있는 ‘심학산 둘레길’을 다녀왔다.  몇 년 전부터 다녔는데 이번엔 꽤 오랜만이다. 예전에는 다소 한적한 숲길이었다면 지금은 인산인해로 ‘심학산 둘레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껏 변하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안전장치가 없는 위험한 구간이 여전히 방치되어 있었다.


 


한 시간 반 트레킹을 하면서 위험을 느낀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곧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구간과 아래로 미끄러진 흔적도 여러 곳 있었다. 구덩이를 연결한 나무다리는 썩어 부서질 것 같았다.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을 만나면 발 아래가 낭떠러지여서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안타까운 것은 난간에 밧줄이 연결되면 누구나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 재해 통계법칙 중에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1931년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가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법칙이다.  하인리히 법칙은 1:29:300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산업재해가 발생하여 중상자 1명이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것이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1:29:300.  살다보면 인생을 바꿀만한 큰 사고 한 번은 겪었을 것이다. 작은 사고 29번을 겪고서 스물아홉 번의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300번, 위급하지는 않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들이 삼 백 번은 족히 넘을 것이다.


 


흔히 큰 사고, 작은 사고를 겪는 심정을 절절히 표현할 때 ‘가시밭길을 걷는다’고 표현한다.  누구나 인생에서 <가시>는 각자 다르지만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은 매한가지다.  그 가시가 환우에게는 육체적인 병을 이겨내는 고통일 것이고, 어떤 이는 경제적인 어려움이고 청년들에게는 학업과 취업일 수도 있다. 이렇게 우리네 삶에는 크고 작은 가시들이 있다.


 


지금 세상 속의 가시를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얼마나 길까? 하지만 그 가시들을 인정하고 지금부터 새롭게 세상을 대한다면 가시도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돌부리에 넘어져 아픈 사람에게 그 돌부리가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음에는 그 돌부리를 조심하고 반성하고 다시 도전할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그 돌부리가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꽃의 여왕 장미는 평생토록 제 몸에 가시를 안고 산다.  그 가시로 인해 함부로 가까이 오게 할 수도, 갈수도 없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지 가엾고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장미는 가시를 안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가지를 사방으로 뻗쳐 나간다.  그리고 이 지구상에서 인류에게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는 꽃을 피워낸다.


 


아마도..


장미는 1년 중 29일 동안 장미 넝쿨에서  꽃을 피고 지고..


한 줄기에 300개의 가시를 가졌을 지도 모른다.  ©이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