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 ‘KIN’ ‘절라’ ‘~세우다’ ‘방법하다’

 

요즘 10대들의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사용하는 은어(隱語)들이 도저히 기성세대들은 알 수 없을 정도라 세대간의 대화단절로 이어지는 거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비단 10대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집단들이 그들만의 통용되는 은어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이러한 은어가 거창한(?) 집단에서 사용되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면 이는 ‘전문용어’라는 새로운 지위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비속어의 뉘앙스를 풍기며 사용되는 말들도 많습니다.

 

영화 판에서는 ‘산마이’ ‘아시바’ 이런 말들이 여기에 해당되는 데요. 일본어에서 유래되거나, 일본어와 우리말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만들어진 말들이죠. ‘산마이’란 싸구려, 3류 영화를 지칭하는 것이고요. ‘아시바’는 교두보 또는 발판을 마련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저도 한대 창투사에서 영화펀드를 운용하며 영화계 사람들을 종종 만났는데요. 이때 이러한 그들만의 은어를 알아 듣지 못해 난처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출판업계도 마찬가지인데요. ‘토비라’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책을 편집할 때 각 장의 첫 페이지에 그림이나 문양이 들어가는 것을 뜻하는 은어인데요. ‘tobira(扉)’는 일본어로 문짝을 뜻하는 말입니다. 물론, 저는 대학 때 일본대학과의 교류 동아리 활동을 한 적이 있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대략 알아 들었지만, 일반 사람들은 좀처럼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이겠죠.

 

건설현장에서도 마찬가지죠. 공사장에서 노무자를 상대로 하는 밥집을 ‘한바’라고 합니다. 이 또한 공사장이나 탄광의 노무자 합숙소인 일본어 ‘han·ba(飯場)’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런 예를 보면 알겠지만, 일반인에게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는, 그래서 그들만이 어떤 특별한 지위로 끼리끼리 뭉쳐 정보를 공유하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이러한 은어를 사용하는 의식 저변에 깔려 있다면 좀 지나친 과장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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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금감원이 금융관련 법규나 거래 그리고 공시자료에 사용되고 있는 일본식 용어, 어려운 한자용어, 외국어 및 부적절한 표현 등의 198개의 금융용어를 쉬운 말로 바꿔 쓰기로 하고 이를 홍보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따르면, ‘잔고’는 ‘잔액’(금액의 경우)과 ‘잔량’(수량의 경우), ‘선불’은 ‘선지급’, ‘내입’은 ‘일부상환’, ‘단생보험’은 ‘1인 생명보험’, ‘권원보험’은 ‘부동산 권리보험’, ‘감채기금’은 ‘채무상환기금’ 등으로 바꾸어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언뜻 들어서는 이해하기 힘든 외국어 표현도 쉬운 말로 바꿔 쓰기로 했죠. ‘롤오버’는 ‘만기연장’, ‘브릿지론’은 ‘일시상환대출’, ‘리스케쥴링’은 ‘채무상환조정’, ‘서킷브레이크’는 ‘일시매매정지’, ‘P&A’는 ‘자산부채이전’ 등이 그에 해당하죠.

 

하지만 여전히 금융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용어를 고집합니다. 이미 습관화 되어있어 기존의 용어가 더 편하다는 거죠. 하지만 이런 의식 저변에는 자신들만의 용어를 사용해야 ‘난 좀 아는 놈이다’ ‘그래 너 뭐 좀 아는 놈이구나’ 이런 인상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치 의사들이 진찰을 하면서 진찰기록을 영어로, 그것도 일부러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휘갈겨 쓴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일반인이 ‘금융’에 접근하기가 더 힘든지도 모릅니다.

 

※ P&A에 관한 글을 올린 후 어느 독자분으로부터 금융업계에서는 왜 쉬운 우리말 표현을 놔두고 굳이 이해하기 힘든 ‘P&A’라는 용어를 쓰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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