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강의 시간에 한 교수님이 우스개 소리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우리나라에는 헌법보다 더 위에 있는 법이 있는데 그게 ‘국민정서법’이 랍니다. 그런데 이 법의 제 1조가 “불법, 탈법, 위법도 떼로 덤비면 합법이다”라고 한답니다.

 

아마 집단 이기주의를 이용해 쪽수로 밀어붙이면 원칙마저 무시되고 마는 몇몇 불미스러운 일들을 비꼬아 하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쪽수로 밀어붙이는 게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죠.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정치 행위 중의 하나가 바로 선거인데요. 그게 바로 쪽수의 원리에 철저하게 충실한 제도 아니겠습니까. 본인이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다수의 국민이 지지하면 대통령이 되는 것이니까요. 제 아무리 많이 배운 사람이라도, 제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1표 밖에 행사할 수 없다는 것도 선거의 묘미겠죠.

 

그러나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시스템인 주식회사에서는요. 이러한 쪽수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상법 제369조 제1항에는요.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은 1주마다 1개로 한다’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만약 A주식회사에 주주가 모두 5명인데요. 그 중에 4명이 L씨를 이사로 선임하는 것을 반대했더라도 발행주식의 60%를 보유하고 있는 나머지 주주 1명이 찬성을 한다면 L씨는 이사로 선임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돈 많은 사람이 A주식회사의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나머지 주주가 쪽수로 밀어 붙여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식회사는 주주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주식 한 주 한 주가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죠.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시쳇말을 ‘억울하면 돈 많이 벌어서 주식 사모아라’라고 바꾸어 볼 수 있겠네요.

 

참고로 주주총회에서 일반결의는 출석한 주주(여기서 주주란 주식의 수이지 사람의 수가 아닙니다)의 과반수와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 1 이상의 수로써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이러한 ‘1주 1의결권의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이 됩니다. 하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게 바로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입니다. 이는 재벌 소속의 금융기관 들이 아무리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어도 이를 전부 의결권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재벌 소속 금융기관 들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비금융 계열사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쳐 30%를 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단계적으로 15%선으로 줄이려 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예를 들어 본다면 현재 특수관계인이나 비금융 계열사의 의결권이 8.9%이고 삼성생명 등의 금융기관이 가진 의결권이 8.9%입니다. 따라서 삼성그룹에서 가지고 있는 내부 의결권은 총 17.8%가 되죠. 그런데 이를 15%로 줄이게 되면 삼성생명 등의 금융기관이 가진 8.9% 중 2.8%는 의결권이 없는 주식이 되어 버리는 거죠.

 

그야 말로 상법상의 ‘1주식 1의결권의 원칙’이 위배 되어 버리는 것이죠. 같은 주식인데 단지 계열 금융기관이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일정 비율이상은 의결권을 박탈 당해버리니까 말이죠.

 

그래서 말이 많습니다. 지금도 칼라일이니 론스타니 뉴브리지니 하는 외국계 헷지펀드가 호시탐탐 적대적 M&A를 노리고 있는데 재벌 들의 금융기관이 가지고 있는 의결권 비율을 제한한다면 이들의 적대적 M&A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느냐는 주장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금융기관에서 사들이는 계열사의 주식은 대부분이 고객들이 맡긴 돈인데 이를 이용해 재벌들은 자신들의 계열사 지배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죠. 자기 돈이 많아서 그걸로 주식 많이 사서 의결권을 확보하는 거야 뭐라 할 수 없지만 고객 돈으로 그런 짓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이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의 주식회사 란 자본(돈)을 많이 가진 자가 많은 권리를 가지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은 쪽수의 원칙보다는 ‘1주식 1의결권의 원칙’이 더 존중 받는 것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자신의 돈이 아닌 남(고객)의 돈으로 그룹을 지배하려는 현재 재벌의 행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벌 들이 외국계 펀드의 적대적 M&A로부터 자신들의 회사를 지키려면 차라리 자신들이 벌어들인 돈을 더 많이 사용해서 주식을 사모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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