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투자 이야기를 올렸더니 독자 분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냥 여가를 즐기는 차원에서 보던 영화의 한쪽 면에는 돈과 투자라는 다소 생소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것이 재미있고 신기하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영화산업 이야기를 한번 더 해볼까 합니다.

 

1993년 강우석 감독은 <투캅스>란 영화를 만들어 당시 관객수 86만명이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그때 벌어들인 돈으로 강감독은 생각했죠. 영화산업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어떤 쪽을 먼저 장악해야 할까 하고 말이죠. 그는 제작보다 배급이 영화산업 지배에 관건임을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게 바로 강우석 감독의 ‘씨네마서비스’입니다. 이로써 그는 충무로자본의 대표격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90년 중반부터 충무로 파워 1위를 유지해 왔고요. 최근인 2002년까지도 영화배급사 시장점유율 중 21%를 차지해서 1위임을 과시했죠. 특히 여러분도 잘 아시듯 2003년에는 <실미도>의 배급으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대기업자본, 도전장을 내다!!

  - 충무로 자본 vs. 대기업 자본

 

90년대 말 CJ그룹이 영화산업에 눈독을 들일 때 까지만 해도 충무로에서 대기업의 영화산업 진출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죠. 영화산업이란 게 그 특성상 동료의식이 강하고 외부인이 발을 붙이기 쉽지 않는 영역이었죠. 특히 삼성 등 대기업이 영상사업단을 만들어 영화 쪽으로 진출해서 별 재미를 못 보다가, IMF 등을 기점으로 손을 땐 터라 더욱 그러했죠.

 

하지만 CJ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산업에 진출했습니다. 새로운 개념인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CGV’를 앞세웠죠. 저번 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영화수익의 가장 큰 수혜자가 극장입니다. 극장 가지고 있는 자가 이를 내세워 배급망에 손을 대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탄생한 게 ‘CJ엔터테인먼트’입니다. <살인의 추억>이 CJ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으로 배급한 영화죠.

 

잘 아시다시피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한 건물에 여러 개의 스크린이 있죠. 따라서 CJ엔터테인먼트에서 배급하는 영화는 CGV에서 거의 다 소화가 가능했습니다. 한마디로 배급력에 있어서 엄청난 파워를 발휘할 수 있었죠.

 

하지만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짓기 위해서는 상당한 규모의 자금력이 필요합니다. 제아무리 씨네마서비스가 영화 배급의 1위라고 해도 충무로의 영화자본으로는 대규모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곳곳에 짓는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죠. 이는 돈 많은 대기업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거죠. 따라서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이용한 CJ그룹은 점점 더 영화산업 지배력을 높여 나갔습니다.

 

다음에 출사표를 던진 곳이 바로 오리온그룹(동양그룹에서 분사)이었죠. 오리온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메가박스’를 내세워 2002년 경 영화배급사인 ‘쇼박스’를 만들었죠. 쇼박스는 <태극기 휘날리며> 배급으로 유명하죠.

 

이때부터 씨네마서비스의 충무로 자본과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의 대기업 자본의 한판 승부 체제로 돌입한 것이죠.

 

영화진흥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2004년 5월 기준으로 영화배급사 시장점유율을 보면 오리온그룹의 쇼박스가 27.8%, 씨네마서비스가 24.9%, CJ엔터테인먼트가 16.1%를 차지했다고 하니 그 첨예한 접전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충무로 자본 무너지는가!

 

그러나 마침내 대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04년 4월말 CJ그룹의 ‘플레너스’ 인수로 당시 플레너스의 계열사였던 씨네마서비스가 사실상 CJ그룹으로 편입되어버린 것이죠.

 

이로 인해 한때 충무로 자본과 대기업 자본의 박빙은 사실상 대기업 자본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죠.

 

결과적으로 이젠 충무로 자본과 대기업 자본의 대결이 아니라 같은 대기업 자본인 오리온그룹과 CJ그룹의 한판 승부가 펼쳐질 것입니다.

 

예전의 정겨웠던 재래시장이 대형 할인마트에게 그 주도권을 넘겨준 것이나, 토종기업의 지배시장이 대기업의 진출로 그 점유율을 빼앗기는 사례는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화나 서비스뿐만 아니라 문화산업까지도 대기업의 자본논리에 넘어 간다는 게 과연 좋은 일이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시각도 많습니다. 돈의 위력에는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의 속성이 영화산업계에서도 그대도 적용된 것이죠.

 

아무튼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 한국영화가 많이 만들어져 재미있게 즐기고 자부심도 가지고 했던 요 몇 년간 영화산업계 안에서는 이러한 주도권 싸움과 지각변동이 일어 났던 거죠. 앞으로 두 세력 중 누가 이길까요?

 

CJ그룹과 오리온그룹 중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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