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 행복, 미래사 )

때로는 문학보다도 더 문학적인 삶을 살았던 문학가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청마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이란 이 시는 유치환이 시조시인 이영도한테 보낸 시이다. 그들이 처음 만난 것은 박철석에 의하면 1947년 이영도가 21세에 사별을 하고 딸 하나를 둔 과부로 통여여중 가사교사를 할 때고 청마는 만주를 떠돌다 해방이 되자 통영여중에서 국어 교사를 하던 때 만났다고 한다. 또 하나는 1946년 < 죽순>이라는 잡지에 두 사람의 시가 실린 것으로 보아 대구에서 만났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통영여중 교사로 둘 다 재직하고 있었을 당시 그들은 자주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유부남이었던 청마에게는 늘 그리운 사람이었을 것이고 , 그는 그녀의 수예점(그 당시 그녀는 교사로 재직하면서 형부가 경영하는 약국 곁에 부업으로 수예점을 차리고 있었는데 )이 잘 보이는 우체국 창가에서 5000여통의 연서를 쓰며 자신의 마음을 달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영도가 유교적인 전통적인 규범을 깨뜨릴 수 없었기에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그고 청마의 마음을 받아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1967년 청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이 연서는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는 제목의 서간집으로 출간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플라토닉 러브라고 또 어떤 사람들은 불륜이라고 하지만 사랑은 예술인들에게 정신적 자양분을 주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청마에게는 그의 시세계가 확장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고 이영도에게는 외로움과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적 뒷받침을 해 주었다고 본다.


반도 끝자락의 작은 도시 통영 , 예향의 도시로 유치환, 박경리, 김춘수, 전혁림, 윤이상 ,이중섭 등 수많은 예술인이 자라고 활동한 곳이다. 지금도 그들은 문학관 , 미술관 등으로 아직도 그들의 예술 활동은 멈추지 않는 것 같다.


유치환의 문학관을 구경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거기에는 이영도와 관련된 자료도 부인 권재순과 관련된 자료도 있다. 물론 유치환은 생전에 가정에 충실한 가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다시 만난다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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