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힘이 있는 나라가 힘 없는 나라를 직접 통치하던 시기였죠. 우리나라는 당시 불행히도 힘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일본이라는 힘 있는 나라에 식민통치를 받는 치욕을 겪었죠.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이젠 식민통치를 하는 제국주의 시대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힘의 논리가 국제사회에 지배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당시엔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한 군사력이 힘의 원천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각종 금융기법과 어마어마한 자금을 바탕으로 한 자본력이 힘의 원천이란 것만 다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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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펀드의 적대적 M&A에 대한 우려가 점점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SK의 경우, 소버린의 적대적 M&A설로 상당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물론, 국내의 백기사 들이 SK를 돕기 위해 지분을 결집하였고 소비린 펀드에 우호적이었던 웰링턴(2.8%)과 CRMC(0.7%)의 지분 매각 등으로 인해 경영권 판도가 SK에게 유리하게 되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위험의 요소는 내포되어 있습니다.

 

삼성물산의 경우, 영국계 헤르메스 펀드가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M&A 가능성을 제기하였죠. 그 후 주식시장에서 M&A 재료로 인해 주가가 급등하자 매집 했던 삼성물산 주식 전량을 매각해서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겼답니다.

 

KT&G의 경우는 몇 달 전 해외에서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TCI펀드로부터 자사주 전량 소각을 요구 받아 충격을 주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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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지분율은 2000년 말까지 만해도 30% 정도 였었죠. 그러던 것이 최근 들어 40.9%까지 올라갔습니다. 이들이 각종 금융기법과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금으로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유린한 게 어제 그제의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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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세계화에 역행하는 ‘국수주의적 관점’이 아니냐고 비난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그리 쉽게 저의 이야기를 매도해선 안될 것입니다.

 

97년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 달러를 빌려 가라고 적극 권장하던 게 바로 외국계 금융기관이었습니다. 무조건 연장을 해줄 테니 싼 달러를 빌려다가 동남아에 대출해주면 예대마진을 엄청 먹을 수 있다고 우리를 꼬드겼죠. 그러다 동남아 기업들이 부도가 나자, 인정사정 없이 우리나라에 상환 요청을 해 왔던 게 또한 그들이었죠. 그 결과가 바로 외환위기이고 IMF 구제금융이었죠.

 

이로 인해 망해가는 기업이 헐 값으로 내놓은 부동산이나, 채권들을 싼 값에 사서 또 다시 막대한 차익을 낸 것도 그들이었죠. 외국계 펀드나 금융기관들은 이미 중남미의 IMF에서 똑 같은 방법으로 큰 돈을 번 경험이 있기 때문에 IMF 사태가 터진 우리나라가 거의 물반 고기반의 기회였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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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 때부터 세계화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우리는 세계화를 외치지 않는 사람은 낙후된 마인드를 가진 사람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외국자본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만 하면 무조건 선진 경영기법을 전수 받고, 나라가 선진국이 될 거 같은 착각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본의 속성은 언제 어디서나 마찬가지 이듯 자신들이 ‘고수익’을 가져가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엔 외국자본도 결코 예외가 아닙니다. 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아무 이유없이 우리가 향후 먹고 살아가야 할 첨단 산업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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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교수(캠브리지大)의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라는 책은 이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선진국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정상에 서면 다음 개발도상국이 열심히 그 뒤를 따라오는 걸 도와 주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올라온 사다리를 정상에서 걷어 차 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서 장교수는 선진국들이 현재 개발도상국 및 후진국들에게 강요하는 정책과 제도가 과거 자신들이 경제발전 과정에서 채택했던 정책이나 제도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며 후진국들에 대한 그들의 설교가 매우 위선적이라고 신랄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미국 역시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에서는 자유무역을 주장하지만 정작 자신의 이해관계와 엇갈리는 부분에선 경제민족주의를 철저하게 추구하고 있답니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외국자본 배척주의자 만큼이나 이에 대한 선호주의자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점에서 세계화와 Globalization이 얼마나 우리에게 실익을 가져다 줄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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