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딴 식으로 일하려면 지금 당장 책상 빼."

 

우리는 직장에서 잘리는 것을 책상을 뺀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물리적 공간의 상실감은 상당히 치명적인 것이죠.

 

로레알이나 IBM 같은 외국계 다국적기업에 가면 직원들의 고정적인 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직원들은 개인 사물함에서 자신의 노트북과 서류들을 들고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아서 사무를 봅니다. 그리고 외근할 때는 다른 직원이 사용할 수 있도록 그 자리를 비워두면 그만인 것이죠. 이런 시스템은 사무실 공간축소와 경비절감 차원에서 상당히 효율적입니다. 그런데 왜 국내 기업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우리의 문화와 관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그 동안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한자리에 붙박고 살아왔죠. 조상이 묻혀 있는 선산을 지키기 위해서 전쟁이 일어나도 고향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공간의 지배에 집착하는 것이 우리와 같은 농경 정착민의 속성인 것이죠.

 

원래 농작물이란 한번 파종하면 추수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죠. 그러다 보니 그 옆에 영구히 거주할 집터를 확보해야 합니다. 또한 농사는 여럿이 모여서 협동을 해야 하는 것이 절대적이죠. 따라서 이를 통제할 법률과 관료제 같은 수직적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이런 문화에선 혈연과 지연, 학연을 중시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외부인과의 교류는 오히려 성가실 따름이죠. 공동체에서 어렵게 생산한 농작물을 나눠 줄 여유가 없는 것이며, 그래서 외부인에게 배타적이게 되고 성을 쌓아 외부로부터의 침략에 대비했습니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이 유목민의 생활입니다.

 

그들은 가축들이 뜯어먹고 살아야 할 신선한 풀을 찾아 끝임 없이 이동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소지품은 간소하죠. 그들은 물이 어디에 있고 어느 쪽이 목초지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외부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접속’하여 정보를 얻습니다.

 

그들에게 공간의 확보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오늘 밤 머무르기 위해 텐트를 치는 땅이 그들에겐 집이요 고향인 것이죠. 그들에게는 시간과 속도가 중요할 뿐이죠. 보다 신선한 목초지를 찾아 재빨리 이동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회는 복잡한 법률이 필요 없습니다. 관료제 또한 발달할 수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수평적 관계가 중시되며, 그들은 성을 쌓기보다는 길을 만드는 것이죠.

 

산업사회를 벗어나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이 판을 치는 정보통신 혁명의 시대인 21세기엔 과연 어떤 방식의 삶이 헤게모니를 잡을까요?

 

<CEO 칭기스칸> (삼성경제연구소 刊)의 저자 김종래님은 당연히 유목민의 삶에 손을 들어 주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800년 전 인류역사를 뒤흔들어 놓았던 유목민 출신의 영웅 ‘칭기스칸’으로부터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배워야 할 점이 너무나 많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과 속도를 중시하는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농경 정착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유목민을 오랑캐라고 천시하며 살아온 우리에게 또 다른 위협임에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위의 글은 중앙일보에 실었던 저의 칼럼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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