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과 여러 모로 비교되는 미국의 존 내쉬가 지난 24일 타계했습니다. 향년 86세. 미국 뉴저지주 턴파이크에서 타고 가던 택시가 가드레일과 충돌하면서 동승한 부인 알리샤(82)와 함께 숨졌습니다. 내쉬는 1948년 카네기공대에서 프린스턴으로 옮길 때 지도교수의 추천서에 "이 학생은 천재다"라는 단 한 줄만 기록돼 있었다는 일화로 유명합니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이런 극찬을 받았을까요.

내쉬는 1950년 약관의 나이에 '비적대적(non-zero sum) 게임에서의 균형설'을 창안해 고전 경제학의 근본을 흔들어버립니다. 여기서의 '균형'이란 어떤 게임 상황에서 플레이어들이 서로의 선택을 바꿀 마음이 없는 안정적 상태를 말하는데요. 최상이 아닌 차선이라도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전략의 쌍을 가리킵니다. 내쉬의 일생을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는 이 이론의 영감을 얻는 술집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러셀 크로)이 금발 미녀를 독차지하려는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하지요.

"아담 스미스는 틀렸어. 우리 모두가 미녀를 꼬시려 쟁탈전을 벌이면 (콧대가 높아진 그녀에게 선택권이 주어져) 전부 퇴짜 맞을 수 있어.(혹은 한 명만 선택됨) 그후 그녀 친구들에게 가봤자 무시만 당할 거야. 대타 기분, 알잖아? 그런데 아무도 미녀를 넘보지 않는다면? 우리 중 누구도 그녀를 취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녀 친구들을 데리고 놀 수는 있어. 그게 모두가 이기는 길이야. 스미스 왈, 개인이 최선을 다하면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된다고 했지? 하지만 이건 불완전해. 최고의 결과는 자신은 물론 집단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실현되는 거야."

최대의 이익인 '미녀와 즐긴다'는 목적은 이루지 못하지만 치열한 경쟁 때문에 어떤 여자와도 짝을 맺지 못하는, 이른바 '제로섬 게임'만은 피할 수 있다는 건데요. 간단하다면 간단한 이 직관이 오늘날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된 '게임 이론' 발전의 기폭제가 됩니다.


△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존 내쉬로 분한 러셀 크로.


하루 아침에 학계의 스타가 된 내쉬는 그후로도 10여 년 남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를 불가사의한 집중력과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 제2의 아인쉬타인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때 이른 부친 사망, 징병 강박증과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겹쳐 환청과 망상에 사로잡힌 '정신의 암' 환자가 되고 맙니다.

외계의 암호를 찾는다며 신문과 라디오에 매달리고 세계 평화를 위한 비밀 요원, 남극 대륙의 황제를 자처했다지요. '중국의 마오쩌둥은 13살에 성년식을 했는데 이날은 소련의 브레즈네프가 할례를 받은 지 13년 13일째 되는 날' 같은 낙서를 하고 다니는 등 30년 동안 유령처럼 살다가 1990년 기적적으로 회복됩니다. 그의 재기에는 부인을 비롯한 측근의 헌신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후 내쉬는 1994년 노벨경제학상, 1999년 미국 리로이 스틸상을 수상했습니다. 사흘 전의 타계 사고도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벨상'을 노르웨이에서 받고 귀국해 집으로 향하던 길에 일어났습니다.

'내쉬 균형'은 전쟁과 도박, 폭력과 스포츠처럼 한 사람의 이득이 다른 사람의 손실로 귀착되는 적대적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상생(相生)을 추구한 이론이라는 점에서 박수를 받을 만합니다.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군사, 외교 부문에서도 유용성이 입증됐지요. 2001년 제작, 7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거머쥔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트리오는 다음과 같은 추모사를 남겼습니다.

"충격이다. 훌륭한 파트너십을 가진 두 사람은 아름다운 이성, 아름다운 열정의 소유자였다."(배우 러셀 크로)

"존과 알리샤 내쉬는 내게 큰 영감을 줬다. 그들이 남긴 업적을 진심으로 존경한다."(배우 제니퍼 코넬리)

"내쉬 부부의 반평생을 작품으로 그릴 수 있어 영광이었다."(감독 론 하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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