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마신 커피의 진실 : 페어 트레이드 운동과 도덕적 소비


커피와 페어 트레이드

옥스팜(Oxford Committee for Famine Relief)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1~2002년에 영국의 소비자가 우간다산 커피에 지불한 돈 가운데 우간다에 있는 커피 재배 농민에게 돌아간 몫은 0.5퍼센트에 불과했다. 즉, 커피 제조기업이나 도매 무역업자가 우간다 농민에게 커피콩을 판매가의 0.5퍼센트에 불과한 헐값으로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커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커피콩인데 농민이 가져가는 이익은 겨우 0.5퍼센트이고 나머지 99.5퍼센트는 유통과정에 참여한 도매 무역업자와 커피 제조기업이 가져가는 셈이다. 주객전도도 이 정도면 너무 심한 것이 아닐까? 만약 커피콩을 사들일 때 페어 트레이드(Fair Trade, 공정무역)에 입각해 농민에게 좀더 높은 값을 지불한다면 그들은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페어 트레이드 운동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커피 농민의 가난이 있다. 커피콩 값은 폭락하는데도 소비자가 사먹는 커피 값은 오히려 오르고, 물가는 오르는데 커피콩 값은 하락하는 등 불공정 무역이 불러일으킨 폐해에 대한 자각에서 페어 트레이드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진한 향기가 나는 검은 음료 속에 착취당하는 커피 농민, 불공정 무역으로 가난에 신음하는 그들의 시름이 담겨 있었던 셈이다. 아마도 이제부터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이 얘기가 떠오를 것이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등 제3세계 농민이나 노동자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이유 중 하나가 그들의 생산물을 헐값으로 구매하는 불공정하고 비도덕적인 무역관행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도 화가 나지 않는 소비자가 있을까?

2005년 세계 최대 식품업체인 네슬레가 ‘네스카페 파트너스 블렌드’라는 인스턴트커피 신상품을 선보였다. 그것은 특별한 명품 커피도 아니고 새로운 맛을 가진 것도, 새로운 공법으로 가공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가 특별했다. 인스턴트커피 깡통에 페어 트레이드에 의해 생산, 구입되었음을 나타내는 설명문과 표식이 있었던 것이다. 페어 트레이드를 주창하는 소비자운동 단체의 끈질긴 압력에도 페어 트레이드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던 네슬레가 드디어 굴복했다는 얘기다.

원래 페어 트레이드 운동은 커피 원두의 왜곡된 유통을 바로잡으려는 데서 출발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가 이 운동에 동참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7년 이후 세계 커피 원두가격은 70퍼센트 이상 폭락해서 생산비용도 나오지 않을 상황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커피 값은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올라가기만 했다. 이는 커피 생산 농민에 대한 착취가 커피 기업의 막대한 수익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참고로 스타벅스는 2000년부터 페어 트레이드 커피를 일부 판매하기 시작했고, 2004년에는 전체 커피의 30퍼센트를 페어 트레이드로 거래했음을 밝히면서 페어 트레이드 운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했다. 브랜드 커피의 대명사인 스타벅스는 기업의 이미지 전략을 위해 페어 트레이드 동참을 결정함으로써 도덕적인 소비자들의 도전을 잘 받아넘긴 것이다. 정크푸드의 대명사로 각인되고 있는 맥도날드에서도 2005년부터 페어 트레이드 인증을 받은 원두커피를 선보이고 있다.

때로는 페어 트레이드 동참이 부정적 인식을 받던 기업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페어 트레이드는 기업이 거부할 수 없는 대세이다. 이외에도 페어 트레이드로 대표되는 도덕적 소비에 굴복하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는 중이다.


페어 트레이드 운동이 소비자를 자각케 하다!

페어 트레이드는 중간상인에게 이윤의 대부분을 빼앗기는 농민을 비롯한 제3세계 생산자들과의 직거래를 통해 그들에게 정당한 값을 지불함으로써 그들의 경제적 수준을 개선시키고 세계화의 폐해를 줄이자는 것에서 출발한 운동이다. 개발도상국이나 가난한 국가에는 구호 위주의 지원 정책보다 그들이 생산한 것에 대한 공정한 무역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지원 방향에 해당된다. 따라서 페어 트레이드의 캐치프레이즈가 ‘원조가 아닌 무역을!’인 것이다.

불공정 무역구조를 공정하게 바꾸기만 해도 제3세계의 가난한 삶이 훨씬 나아질 수 있지만, 기업이나 무역상은 자발적으로 무역구조를 공정하게 바꾸려 하지 않으므로 시민단체가 나서서 이를 주장하고 유도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에 공감하는 소비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페어 트레이드 운동의 주장은 하나의 소비문화가 되었고, 기업이나 무역상은 거부할 수 없는 소비자의 강력한 힘에 밀려 결국 페어 트레이드에 속속 동참하고 있는 중이다.

페어 트레이드가 가장 활성화된 지역은 네덜란드와 독일,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의 유럽이다. 그리고 여기에 해당되는 제품은 커피, 차, 설탕, 과일, 꽃, 의류, 화장품, 축구공 등 수백 종에 이르고 있으며,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는 대형유통매장에서 페어 트레이드 관련 제품만 따로 모아 파는 코너도 마련해두고 있다. 영국에선 소비되는 커피의 25% 이상이 페어 트레이드 커피일 정도로 주류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일반 제품보다 가격은 약간 비싸지만, 비교적 적은 액수로 지구촌의 빈곤문제 해결에 일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페어 트레이드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

도덕적 소비는 원재료나 상품에 가치를 부여하고 기업의 동참을 유도하는 데서 더욱 확대되어 이제는 노동문제, 환경문제, 기부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페어 트레이드에 동참하는 기업의 행렬

페어 트레이드 운동은 소비자를 자각시키는 동시에 기업을 자극했다. 그런데 자각한 소비자로부터 자극을 받은 기업은 방관할 수만은 없었다. 페어 트레이드 운동이 확산되고 소비자들이 이에 동조하면서 새로운 페어 트레이드 시장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기업은 기존 시장을 잃을 수도 또한 새로운 시장을 뺏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결국 수많은 글로벌기업을 비롯한 대기업이 페어 트레이드에 동참하게 되었다.

스타벅스, 네슬레, 맥도날드, 돌(Dole) 등의 세계적인 식음료 관련 기업은 농산물 원자재 수입에서의 공정무역을 지향하게 되었으며 세인스버리, 데스코, 까르푸 등의 대형 유통기업은 페어 트레이드 제품을 취급하게 되었다.
심지어 BBC, 메릴린치, 폭스파겐 등의 대기업에서 직원이나 손님에게 제공하는 커피 및 홍차 등에 페어 트레이드 제품을 사용하도록 납품업체에 요구하고 있을 정도다. 페어 트레이드는 기업의 실리나 이미지를 위해 동참할 수밖에 없는 주류가 되고 있는 것이다.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www.digitalcreator.co.kr)


* 본 칼럼은 제가 쓴 책 <소비자가 진화한다 (김용섭 저, 김영사, 2008. 3)>의 내용을 참조했습니다. 관련된 보다 구체적인 내용까지 궁금하시다면 책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 '칼럼가입'을 눌러 회원이 되시면, 회원전용게시판에서 회원만을 위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으며, 향후 회원들과의 교류의 기회도 만들어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