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저스 구단이 류현진의 어깨 수술을 공식 발표했던 21일 홈페이지 대문.


 

류현진이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지난 21일 LA 다저스 구단은 예상대로 류현진의 어깨 수술을 공식화했고, 하루 만에 수술이 진행됐다. 일각에서는 그의 관절경 수술이 간단한 청소(cleanup)에 그칠 것이라며 회복 가능성이 높다고 애써 위안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수술을 받을 때까지 환자도 의사도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를 몰랐다는 것이다.

류현진에게 데드암 증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올 때부터 그의 어깨 관절 마모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증상으로 미루어 관절와순 파열은 아닐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나왔다. 류현진 측근의 말을 빌린 관절경 수술 이야기가 나왔을 땐 모두가 ‘최악은 면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단 열어서 상태를 보는 것’이 ‘심각하지는 않다’로 오독됐다.

그러나 22일 류현진은 파열된 왼쪽 어깨 관절와순을 꿰맸다. 받게 된다면 최악이라던 수술을 받은 것이다.

 


  1. 언론의 희망고문




 

류현진의 수술을 밀착 취재한 언론들은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며 “재활을 거쳐 내년 시즌을 준비하게 될 것”이란 당연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처음부터 그의 어깨에 대해 함구하던 돈 매팅리 감독의 립서비스도 이날은 빠지지 않았고, “상태가 좋다”는 류현진 본인의 말도 곁들였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류현진의 선수생명이 위기에 놓였다는 점은 꺼내지 않았다.

투수에게 관절와순 수술은 가장 흔한 커리어 엔딩 시나리오다. 데뷔 후 10번째 시즌에서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퇴장한 류현진은 시즌 아웃이 아니라 커리어 아웃을 걱정해야 할 처지인 것이다.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의 2004년 기사에서 윌 캐롤은 ‘관절와순이 선수 생명을 끝내버린다(Labrum, It Nearly Killed Him)’며 자신이 보았던 36명의 관절와순 수술 투수 가운데 단 한 명(록키 비들)만이 이전의 수준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그나마 2012년 제이 제프가 ‘관절와순이 선수 생명을 끝내지는 않는다(Labrum But it Didn’t Kill Him)’며 투수 67명의 기록을 추적했지만 여기서도 20명은 아예 메이저리그로 복귀하지 못했다. 재활에 성공했다고 보는 4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 역시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1명에 불과하며, 이 가운데 1,0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는 로저 클레멘스와 커트 실링, 크리스 카펜터, 알 라이터, 길 메시 5명이다. 특히 클레멘스는 1985년 관절와순 수술을 받고 8개월 후에 20탈삼진을 기록했지만 2007년 공개된 미첼 리포트를 통해 약물 복용 의혹이 불거지며 아직도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클레멘스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없다.

즉, 류현진의 복귀 가능성은 16%(400+이닝을 던진 11명)다. 이전과 같은 투구로 빅리그에서 롱런할 수 있는 확률도 5.9%(클레멘스를 제외한 1000+이닝 4명)에 불과하다. 5.9%에서도 절반을 차지하는 실링과 카펜터가 재활의 성공사례로 언급되고 있지만 이들은 빅리그 최정상급 투수들이다. 류현진과의 단순 비교는 어렵다. 특히 카펜터가 결국 은퇴해야만 했던 이유 역시 어깨부상 재발이었다. 다저스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에서 단골로 맞붙는 세인트루이스 카니널스의 에이스는 류현진이 빅리그에 데뷔하던 2013년 마운드를 떠났다.

 

 


  1. 무엇이 그를 아프게 했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재앙이 사전 징후를 보인다고 했다. 류현진의 재앙은 지난 시즌 막바지 코티손 주사를 맞으며 버틸 때 마지막 징후를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2014년 부상자 명단에 두 번이나 올랐다. 지금까지 너무 많이 던졌고, 또 빅리그로 둥지를 옮긴 이후엔 너무 빠르게 던졌다.

 


붉게 칠한 부분이 류현진의 KBO리그(위)와 MLB 투구 이닝이다. 자료=KBO/MLB


 

류현진은 2006년 한화 이글스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후 2012년까지 7시즌 동안 190경기에 나서 1,269이닝을 던졌다. 경기 수가 더 많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달성하지 못한 200이닝을 KBO리그에서 두 차례(2006•2007시즌)나 달성했다. 2013년 다저스로 이적한 이후 56경기를 더하면 프로에서 총 1,613이닝을 던진 게 된다.

한국 나이로 29세인 류현진이 올 시즌을 정상적으로 소화한다고 칠 경우 산술적으로 2년 뒤인 31세에 통산 2,000이닝을 달성하게 된다. 그보다 4살이나 많은 팀 동료 잭 그레인키가 올 시즌 2,000이닝 달성이 유력한 것과 비교해 보면 무시무시한 페이스인 셈이다. 박찬호는 지금의 류현진과 비슷한 1,611이닝을 채웠을 때 34세였다.

‘이닝 이터’ 류현진의 어깨에 또 하나의 짐은 구속이었다. 아침마다 그의 경기 중계를 눈여겨봤다면 국내에서 뛸 때와 분명하게 다른 부분을 발견했을 것이다. 1회부터 전력투구를 한다는 점이다.

 

오른쪽 붉은색으로 칠한 부분이 2013시즌과 2014시즌 류현진의 포심패스트볼 구속.


152.8km(95마일)이 MLB 최고구속이다. 자료=팬그래프


 

류현진의 KBO리그 마지막 시즌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142.9km다(스포츠투아이 자료 기준). 메이저리그 진출 첫 해엔 145.9km, 이듬해엔 146.2km를 기록했다(팬그래프 자료, 투심패스트볼 제외). 류현진 스스로도 밝혔듯 쉬어 가는 타순이 없었고, 결국 살아남기 위해 1회부터 145km를 넘는 속구를 구사해야 했다. 류현진이 1회에 150km 언저리를 찍지 못하면 그날 경기는 두들겨 맞는다는 속설이 나왔을 만큼 빅리그 생존의 전제는 구속이었다.

 

류현진은 2014시즌 득점권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출루를 막기 위해 주자가 없을 때도 전력투구를 해야 하는 이유였다. 자료=MLB


 

구속만큼이나 류현진을 구속했던 건 선발 로테이션이다. 한 시즌에 팀당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는 KBO리그처럼 월요일이 의무 휴일도 아니고 21연전 같은 지옥 일정도 심심치 않게 존재한다. 같은 5인 로테이션이더라도 나흘을 쉬고 등판한다. 닷새 또는 엿새를 쉬고 등판하는 게 몸에 익었던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 선발 로테이션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경기를 마치면 며칠 후에 등판하는지가 국내 언론의 관심사였다. 대개의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들이 경기를 마치면 이후 다섯 번째 경기에 자동 등판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이색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또한 멀어야 서울과 부산 정도를 오가던 이동 거리가 크게 늘어난 것도 부담이었다. 류현진은 뉴 양키스타디움에 서기 위해 LA에서 뉴욕까지 4,000km를 넘게 날아갔으며, 쿠어스필드에 들렀을 땐 설악산 대청봉과 별 차이 없는 해발 1,600m에서 투구했다. 시차는 덤이다.

한편 류현진의 부상 원인이 슬라이더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부드러운 폼을 유지하던 류현진이 2014년부터 슬라이더를 본격적으로 구사하며 팔의 각도에 변화가 생겼고, 이것이 어깨의 무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김진욱 전 두산 베어스 감독은 “슬라이더 장착을 위해 팔 각도를 높이고, 온몸을 잘 사용하는 투구폼에서 상체 위주 투구로 변모하는 바람에 무리가 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류현진의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비중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표.


왼쪽 붉은색은 슬라이더, 오른쪽은 체인지업이다. 괄호는 구속(마일). 자료=팬그래프


 

실제로 류현진은 서클체인지업을 주무기로 KBO리그를 평정했다. 빅리그 첫해에도 팬그래프가 계산한 그의 체인지업 구종 가치는 내셔널리그 전체 2위에 해당됐다. 구사 비율도 22.3%에 달했다. 잘 먹혔기 때문에 한국에서보다(18.8%) 많이 던진 것이다. 그러나 피안타율 .164를 자랑하던 체인지업에 문제가 생겼다. 2014시즌 .318로 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때문에 그는 체인지업의 구사비율을 줄이고(한국에서와 같은 18.8%) 슬라이더의 빈도를 높였다. 류현진의 슬라이더는 13.9%에서 15.8%로 비중만 높아진 게 아니라 구속도 올랐다. 평균구속이 131km에서 135km로 증가한 것이다. 최고 구속은 145km에 달했다. 140km를 넘는 슬라이더가 마구로 불리는 것에 미루어 보면 엄청난 힘을 쏟아 부은 셈이다. 이렇듯 그의 어깨는 이미 과부하가 걸린 상태에서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1. 괴물의 우울한 서른즈음에




 

고교 시절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던 류현진은 누구보다 부상에 민감한 투수였다. 조금만 아픈 낌새가 보여도 무조건 쉬었고, 팔에 무리가 올 것을 염려해 선발등판 이전 불펜 피칭도 사양했다. 미국 현지에서도 류현진이 불펜 피칭을 거르는 이유에 대해 조명했을 정도다. 류현진은 누구처럼 자신의 몸 상태를 숨기고 “마, 함 해보겠십니더” 하는 투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류현진은 23일 “미국에 진출하기 전부터 관절와순이 조금 찢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다저스 구단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라고 밝혔다. 그동안 통증을 참고 던졌음을 실토한 것이다. 어깨 수술은 투수에게 사형선고와 다름없음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19세~25세 시즌에 1,269이닝을 던진 것’과 ‘특히 너무 어린 나이(19세~20세)에 각 200이닝 이상을 던진 것’에 대한 우려가 언급되어 있다. 류현진 관리에 자신을 갖고 6년 장기 계약을 맺은 다저스로서는 사실상 베팅이 실패할 기로에 놓인 셈이다.

어쩌면 올 시즌 시범경기에서 던졌던 패스트볼이 류현진의 인생 마지막 150km일지도 모른다. 복귀와 재기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복귀할 것이다. 그러나 재기의 가능성은 앞서 밝힌 대로다. 선수에게 경미한 부상이나 간단한 수술은 있을 수 없다. 야구의 역사를 들출 필요도 없이 현대야구에서 나온 사례만으로도, 그리고 안타깝게도 류현진의 미래는 예견이 가능하다.

 

류현진은 MLB에서의 두 시즌 동안 500개의 땅볼 아웃을 잡아냈는데


이는 플라이볼(30.3%)과 라인드라이브(20.5%)에 비해 크게 높은 수치다. 자료=팬그래프


 

수술 이후 구속 하락이 예상되는 만큼 류현진이 기교파 투수로 변모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지난 두 시즌 인플레이 타구의 절반 가까이(49.2%)를 땅볼로 유도했기 때문에 기교파 투수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류현진은 전형적인 파워피처다. 기교파 투수로서의 성공 가능성은 크지 않다. 160km를 넘나드는 패스트볼을 뿌려야만 파워피처가 아니다. 야구 명언처럼 류현진은 ‘지옥에 가서라도 구해 와야 하는 150km 좌완’이었다. 체인지업으로 재미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빅리그에서도 먹히는 꽤 괜찮은 패스트볼 구속 덕분이었다.

체인지업은 배구의 시간차 공격과 가깝다. 속공을 막으려던 블로커들이 시간차에 속수무책이듯 패스트볼을 노리던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구종이다. 타자를 윽박지르는 패스트볼이 없다면 체인지업은 배팅볼이나 다름없다. 류현진이 수술 이후 구속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자신을 괴물로 만들었던 주무기마저 잃을 가능성이 높다. 불꽃 같은 패스트볼을 뿌리던 투수들이 그것을 잃고 난 뒤에 어떤 말년을 보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을 것이다.

 

일각에선 괴물이란 별명을 가진 아시아 투수들의 평행이론까지 주장했다. 원조 괴물이었던 일본의 마쓰자카 다이스케, 그리고 그가 떠난 일본을 주름잡았던 다르빗슈 모두 빅리그 3년차에 고장이 났다. 류현진과 이들은 커리어마저 닮아있기에 괴물 평행이론은 설득력마저 있어 보인다. ‘철완’ 다나카 마사히로는 말할 것도 없이 2년차에 로스터에서 제외됐다. 괴물이란 별명은 없었지만 대만 출신 왕첸밍도 3년차에 부상으로 신음한 이후 다시는 이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들이 모두 어깨 부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팔꿈치 수술을 받거나 재활을 선택했다. 그러나 예외의 한 명이 류현진과 같은 어깨 관절와순 수술을 받은 왕첸밍이다. 그는 2009년 수술을 받고 2년이 지나서야 빅리그에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구속이 하락했고, 자연히 주무기였던 고속 싱커를 잃었다. 한때는 무려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였고, 또 박찬호의 아시아 투수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두 차례나 깼던(2006⋅2007시즌 각 19승) 투수는 그렇게 평범한 마이너리거로 전락했다.

이 비극의 평행은 아시아 투수들이 너무 많은 공을 던지고 프로에 데뷔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중⋅고교 시절 소화한 이닝은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이에 대해 김형준 기자는 자신의 메이저리그 칼럼에서 “투혼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되는 어린 투수들의 혹사는 류현진, 그리고 지금까지의 투수들로 족하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야구계 자성의 목소리가 부디 ‘류현진을 잃은 대가’가 아니길 빈다. 한국 야구의 비싼 수업료로 지불하기엔 그는 너무 아까운 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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