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장은 "믿을 만한 친구가 싸고 좋은 땅이라고 소개했다"면서 "원장님 말씀에 무조건 따르겠습니다"라고 했다.

창고를 제외하곤 땅의 모양새와 기운에 문제가 있었다.

<돈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돈이 된다면 사람이 다칠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각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10년전에 이 근처의 땅을 2억원에 샀는데 근래에 1억원도 안 되는 값으로 겨우 되팔았다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 말이 파주에는 땅으로 장난치는 사람들이 들끓는다고 하더군요, 길이 날 것이라거나 공공기관이 들어설 것이라거나 하는 감언이설로 투자를 부추기는 기획들이 남발하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의 중농주의 학자 께네가 한 말에 따르면 「땅은 부의 원천이다」라는 오래된 논리를 사람들은 아직도 너무 신봉하는 것 같다.

차가 통일로를 되짚어 나오는 동안 통일은 언제,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하며 통일을 준비하고 통일시대를 잘 살아갈 최선의 방책은 무엇인가?하는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생각을 뚫고 오사장은 강남에서 점심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저는 됐습니다. 두 분이 맛있게 드십시오. 그 대신 춘분날 사장님 집무실로 찾아 뵙겠습니다. 시간 좀 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오사장님한테는 해당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

“괜찮습니다. 말씀 하십시오”

<잘 사는 세상이나 가정을 잘 꾸려가는 덕목은 돈과 권력이 전부인 것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 인격 같은 것들일텐데 말입니다.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도 돈과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착하고 자녀들도 그게 전부인 양 여기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멀리 내다보면 돈은 아무리 많이 물려줘도 소용없는 일이 될 수 있고 학식이나 지식을 많이 쌓게 하고 책을 수만 권 물려줘도 부질 없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보다 조상으로서 할 일은 덕 쌓는 일이 될 것입니다. 덕을 많이 쌓으면 좋은 후손이 태어나고 그러게 되면 후손은 스스로 부(富)도 명예도 쌓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一)라도 제대로 깨우치면 큰 인물(一+人=大)이 됩니다. 하나를 알고 둘을 깨우치면 하늘만큼(一+一+人=天) 높아질 수 있게 됩니다. 대개의 가장은 집안에서는 대통령 이상이 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지아비 부(夫)가 하늘도 뚫었기 때문입니다. 하늘보다 높으니 독존이 되기도 하는 까닭이 바로 그것입니다>

"잘 새겨 듣도록 하겠습니다"

 

<아드님과 따님은 공부 잘 하고 잘 있지요?>

"예, 덕분에…"

이때 방여사가 뭔가 말을 할 듯 하더니 함구해버렸다.

오사장의 아들은 미국에서, 딸은 홍콩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딸을 홍콩 쪽으로 보낸 것은 내가 우겨서 그렇게 됐다. 원래는 미국으로 가려고 했으나 <딸의 뜻에 따르라>고 했더니 오사장이 「정말 가고 싶은 데가 어디나」고 딸에게 물었고 딸은 홍콩이라고 했던 것이다.

오사장의 아들은 상반기생으로 병술(丙戌)일, 기축(己丑)시이고 딸은 신(申)월, 경자(庚子)일, 병술(丙戌)시여서 아들은 미국이, 딸은 홍콩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방여사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아들 문제를 털어놨다.

"사실은 재훈(財勳)이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는데 할아버지께서 헤어지라고 하셔서 집안이 좀 시끄럽습니다" 그러면서 "미안합니다. 이것 좀" 하고 쪽지를 내밀었다

원래는 내놓을 뜻이 없었는데 어쩌다가 그렇게 된 듯 했다. 종이에는 1991년 12월 19일 낮 12시 양력이라고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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