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에서 빈볼 지시를 하지는 않았다. 지도자 생활 동안 한 번도 빈볼을 지시한 적 없다. 투수의 제구가 흔들렸다.”

“죄송합니다. 어떤 말씀도 드리기 힘듭니다. 구단을 통해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상황이 복잡하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4월 12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렸던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 경기의 빈볼 논란을 두고 한화의 김성근 감독과 투수 이동걸의 말이 엇갈렸다. 먼저 김 감독은 경기 직후 벤치 사인에 의한 빈볼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동걸 역시 자의가 아님을 우회적으로 피력했다. 누구의 지시도 없었고 투수의 고의도 아니었는데 공은 타자에게로 날아갔다. 그것도 앞선 타석에서 빈볼을 맞은 황재균에게. 그리고 기어코 맞혀야만 한다는 듯 세 번이나.

빈볼과 벤치 클리어링은 야구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날 경기는 양팀 선수들의 물리적 충돌이 없었음에도 유난히 시끄러웠다. 타자만이 아닌 투수 역시 피해자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빈볼 논란을 보도한 연합뉴스TV 화면.


 

  1. 미필적 고의


이동걸은 이날 경기 전까지 야구 팬들도 잘 모르는 투수였다. 올해로 데뷔 9년차가 됐지만 1군 경기라곤 23경기에 출전한 게 전부인 2군 붙박이였다. 때문에 문제의 경기는 지난 시즌 2군 다승왕 이동걸이 고대하던 올 시즌 첫 1군 등판이기도 했다. 비록 패전처리였지만 공 하나하나가 소중한 1군 무대였다.

야구팬들이 빈볼을 이동걸의 자의가 아니었다고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렵게 잡은 기회에서 일부러 타자를 맞혀 퇴장을 자처할 리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화를 자극한 황재균에게 꽂을 ‘복수의 칼’로 이동걸이 선택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객’ 이동걸의 솜씨는 영 좋지 못했다. 포수 허도환이 노골적으로 줄곧 황재균의 몸쪽 공을 요구하는 사인을 보냈지만 한 번에 맞히지 못한 것이다. 세 번째 공을 던지기 전엔 황재균에게 가까이 다가가 앉는 허도환의 모습과 일그러지는 이동걸의 표정이 번갈아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이동걸의 표정이 잡힌 MBC스포츠플러스 중계 화면.


 

이동걸의 망설임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황재균을 맞힐 경우 퇴장과 출장정지 징계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또한 당시로서는 출장정지가 곧 1군 엔트리 말소와 다름없었다. 이동걸에겐 ‘황재균을 맞히고 2군으로 내려가든, 항명하고 2군으로 내려가든’ 하나의 선택지만 남아있었다. 이에 대해 한 선수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군 선수라면 본능적으로 빈볼을 던졌을 때 더 이상 1군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그래서 황재균을 맞히는 데 3개의 공이나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밝혔다. 그는 “왜 하필 이동걸에게 던지게 했나. 다른 투수들도 많은데"라고 이동걸의 처지를 헤아리지 않은 누군가를 지적했다. 또 어떤 야구팬은 “3구를 내리 같은 곳에 꽂았는데 감독은 제구가 흔들린다고 평가했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해당 경기 직후 KBO 규정이 긴급 개정되기 전까지 출장정지 징계는 1군 25인 로스터에 포함되어 있어야 만료 가능했다. 한화로서는 필수전력이 아닌 이동걸을 1군에 남겨 로스터를 한 자리 비울 필요가 없었고, 때문에 이동걸의 2군행이 유력시됐다. 결국 상벌위원회에선 이동걸에게 200만원의 벌금과 5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지만 ‘다행히’ 비난 여론을 의식하기라도 한 듯 이동걸의 2군행은 없었다.)

김 감독은 논란이 확산되고 자신을 겨냥한 비난이 봇물을 이루자 “정신적 빈볼도 아프다”라는 말을 남겼다. 감독 복귀가 후회된다는 그다운 말도 덧붙였다. 물론 김 감독이 수차례 선을 그은 만큼 그의 지시는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의 빈볼은 감독이 아니더라도 코치진, 혹은 선배들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주장 김태균이 나서서 해결하겠다며 기자회견을 준비하자 이를 말렸다는 김 감독의 말은 이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KBO가 선수단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어 이례적으로 김 감독과 한화 구단에 제재금을 부과한 것 역시 정황상 증거를 뒷받침하고 있다. 김 감독의 직접적 지시가 아니더라도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는 의미다. 김 감독은 선수단 장악력이 매우 뛰어난 감독이다. 미필적 고의를 세상 모두가 알고 있는데 당사자들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경기 직후 롯데 팬들은 이동걸을 향한 비난을 퍼부었고, 그를 두둔한 건 한화나 김 감독이 아닌 야구팬들이었다. 그날 사직구장에서 이동걸이 받은 야유는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비열하고 외로운 마운드였다.

 

  1. 복기


“프로 생활 8년 동안 한 번이라도 승리 투수가 되고 싶었다.” 이동걸이 지난해 10월 1군 경기에 선발 등판해 승리를 놓친 후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앞서 밝혔듯 이동걸은 빈볼 사건 이후에도 1군 로스터에서 제외되지 않았고 지난달 25일 SK 와이번스 전에서 마침내 프로 데뷔 후 첫 승을 따냈다. 그런데 여기서 휴먼 드라마가 탄생한다. 김 감독이 이동걸을 감싸 첫 승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엔트리 손해를 감수하며 이동걸을 1군에 남길 수밖에 없었던 정황이 배려로 오독됐다. 경기 결과만 본 까닭이다.

구원승이 어떤 의미인지를 곱씹어 본다면 이날 ‘승리투수 이동걸’이란 기록의 중량이 달라진다. 게다가 필승조나 추격조가 아닌, 이동걸 스스로도 인정한 패전조로서의 구원승이라면 냉정히 말해 요행의 느낌이 강하다.

복기해 보자면 이동걸은 한화가 2 대 4로 뒤진 7회 1사 만루에 마운드에 올라 밀어내기 볼넷으로 한 점을 내줬다(비자책, 2 대 5). 이어진 7회말 공격에서 한화 타선이 2점을 뽑아 4 대 5로 추격했지만 이동걸은 9회초 다시 실점, 한화는 2점을 뒤친 채 9회말을 맞았다. 패하는 경기의 흔한 투수 운용이었다. 하지만 한화 타선이 마지막 공격에서 폭발하며 한 점 차로 따라 붙었고, 2사 만루에서 2타점 끝내기 안타가 터지며 이동걸은 승리를 챙겼다. 축하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경기를 끝낸 김경언인데 이동걸과 김 감독이 겸연쩍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게 이날 경기 기록이 말해주는 사실이다. 과장을 보태 간추리자면 ‘언론이 하도 떠들어서 1군에 데리고 있었고, 이번에 질 것 같아 패전투수로 올렸지만 좋은 결과로 승리투수가 된 셈’이다.

 



 

김 감독에게 날을 세운 언론들이 아니었다면 이동걸에게 기회조차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결과적으론 서로에게 잘된 일이지만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처음부터 “이동걸에게 잘못이 없다”라는 식의 그 흔한 코멘트라도 남겨 감싸 안았더라면 그래도 뒷맛이 개운한 이야기가 됐을 것이다. 또한 김 감독이 논란의 중심에 서서 집중 포화를 맞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4년 연속 꼴찌가 점쳐지던 한화의 성적이 수직 상승하자 김 감독에 대한 논란도 대체로 수그러드는 분위기다. 시즌 144경기 중 28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벌써부터 ‘김성근 리더십’이 대서특필되기 시작했고, 일거수일투족에 어쩌면 그도 생각지 못했을 의미가 부여됐다. 왕조를 이뤘던 SK 감독 시절부터 있었던 일이다. 스타 감독인 그는 늘 좋은 기삿거리였다.

김 감독 역시 말이 적은 편은 아니었기에 언론과의 대면도 잦았다. 물론 이러한 기자들과의 속기(速棋)는 곳곳에 자충수를 남겨 김 감독의 발목을 잡았다. 사실 이동걸의 빈볼 배후로 김 감독이 지목된 것도 지금까지 그가 말하고 보여준 야구가 그랬기 때문이다.

 

  1.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고?


김 감독은 SK 감독 시절이던 지난 2008년 조영민이 빈볼을 던진 뒤 모자를 벗어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아무리 선배라도 필드에선 적이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며 호되게 꾸짖은 바 있다. 김 감독은 2회부터 구원등판했던 조영민을 9회까지 내리지 않았고, 결국 조영민은 15피안타 9실점으로 신나게 두들겨 맞은 뒤 바로 2군으로 강등됐다. 이른바 ‘120구 벌투 사건’이다. 또 몇 달 뒤 SK는 KIA 타이거즈와의 3연전 내내 빈볼로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SK 투수 윤길현이 사과 대신 욕설을 하며 인성 논란이 일어났다. 사과 때문에 2군으로 간 동료를 보고도 사과를 할 수 있었을까. 비난이 이어지자 결국 김 감독이 나서서 사과와 함께 자진 결장하며 일단락 됐지만 7년 뒤 사직에서 묘한 데자뷔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야구는 전쟁이 아니라고 일갈했던 김 감독의 말이 더욱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SK 와이번스의 잠실 원정까지 쫓아와 윤길현의 빈볼과 욕설에 항의하는 팬들.


 

야구를 오래 봤다면 김 감독의 말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는 점을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앞선 발언이 이후 발언이나 행동으로 상쇄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최근엔 혹사 논란에 대해 “투수들에게 3연투를 시키지 않는다”라고 반박했지만 권혁, 안영명, 박정진, 김기현이 4월에만 한 차례씩 3연투를 한 바 있다.

자서전의 제목으로도 쓰였던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라는 김 감독의 유명한 말 역시 한대화의 은퇴 과정에 걸친 잡음, 송구 동작을 문제 삼은 이대수의 트레이드 등에서 ‘포용의 리더’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공교롭게도 김 감독과의 불화로 은퇴식마저 열지 못했던 한대화는 감독으로서 ‘암흑기’ 한화와 함께했고, 김 감독의 SK를 떠나야 했던 이대수는 두산 베어스를 거쳐 지난 시즌까지 한화에서 뛰었다.) 특히 SK에서 해임된 직후엔 자신이 2군 감독으로 좌천시켰던 이만수 감독이 감독대행을 맡자 “이만수 그 놈은 예의에 어긋난 놈”이라는 원색적 비난을 하기도 했다. 자신에게 상의도 없었을뿐더러 감독대행으로서 첫 경기를 치르고 한참이 지나서야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물론 김 감독은 이 감독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후 김 감독은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삼고초려에 못 이겨 사령탑에 앉았다. 지난해 해체되고 말았지만 패자들에게 기회를 줬던 김 감독의 이야기는 영화(파울볼)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고양 원더스가 마지막 시즌에서 냈던 6할3푼2리라는 기적의 승률엔 그림자도 있다. 팀이 소화한 715.2이닝 가운데 무려 77%인 552이닝을 용병 투수들이 던진 것이다. 일구이무(一球二無)라는 김 감독의 말처럼 다음이란 게 없는 이들,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 타자만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물론 ‘두 번째 공은 없어도[二無] 세 번째 공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김 감독이 증명한 바 있다. 끝장승부가 폐지됐던 2009년엔 KIA와의 경기에서 ‘무승부=패’라는 승률 계산 방식에 항의하겠다며 12회말 3루수 최정을 투수로 올렸다. 결국 최정의 끝내기 폭투로 승부가 마무리됐다.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상 초유의 경기 포기였다. ‘포기를 잊은 한화 야구’라는 요즘 기사 제목이 더욱 우스꽝스러운 이유다.

 

  1. ‘야신’과 ‘인천 예수’


주지하다시피 김 감독에겐 ‘야신(야구의 신)’이라는 멋진 별명이 있다. 야구 변방 SK를 맡았던 네 시즌 반 동안 세 차례의 우승과 한 차례의 준우승을 인천에 안겨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시에 ‘인천 예수’로도 불린다. 다만 이것은 야신의 국지적인 표현이다. 인천에서만 신적인 존재라는 의미다.

SK는 김성근식 야구로 왕조를 이룬 대신 전국구 비호감 팀이 됐다. 이구동성으로 이겨서 미운 것이 아니라 이기는 방식이 얄밉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은 김 감독이 호성적에도 해임된 이유다. 당시 SK는 성적부진을 이유로 들었지만 실은 김 감독 자체가 늘 딜레마였다. 아무리 야신일지라도 야구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던 SK에겐 비호감 야구란 이미지가 골치였다. 문학구장을 찾는 관중이 날로 늘어나고 있었지만 SK가 원하는 것은 롯데나 KIA 같은 전국구 인기 구단 타이틀이었다. 구단의 유일한 스타 김광현이 이 즈음 자주 TV광고에 노출된 것도 같은 이유다.

결국 SK는 이미 선수들에게 우승 DNA가 생겼다고 판단해 김 감독을 해임했고 그 자리엔 이만수 감독이 앉았다. 이 과정에서 앞서 말한 김 감독과 이 감독의 불화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 감독은 졸지에 ‘인천 예수를 버린 유다 만수’가 됐다.

 


김성근 감독 경질에 항의하는 SK 와이번스 팬들. 이날 문학구장 마운드가 불탔다.


 

김 감독은 자신의 야구가 비호감 야구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야신에 대한 시기와 스몰볼의 필연으로 인식한다. 일리는 있다. 개개인만 놓고 본다면 그다지 뛰어날 것 없는 SK 구성원으로 리그를 접수했고 자연히 스포트라이트는 김 감독에게 쏠렸다. 늘 밝히듯 자신은 비주류이기 때문에 이것이 누군가에겐 아니꼽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김 감독의 생각과 달리 ‘김성근이 이겼기 때문’이 아니라 이기는 과정에 있었다. 김 감독이 보여준 야구는 ‘이기면 장땡’식 야구와 다름이 없었다. 선수들의 비신사적 플레이와 위장 선발, 사인 스틸, 빈볼, 전력분석원의 경기 개입(당시 전력분석팀장이 김 감독의 아들 김정준 현 한화 코치), 판정 불복 논란은 전성기 SK의 꼬리표이기도 했다. 또한 타 팀 내정간섭의 아이콘 김 감독을 겨냥한 작심 발언들이 곳곳에서 이어졌고 상대팀 감독들과 설전도 유독 잦았다. 롯데를 두고는 “조직력이 모래알 같은 팀”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큰 점수 차로 리드하면 9회 아웃 카운트별로 투수를 교체한다거나 번트를 하는 것도 김 감독, 그리고 SK의 특기 아니었던가. 승부가 결정된 상황이라도 당장의 상황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김 감독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4월 12일, 롯데의 황재균은 한화와의 경기에서 승부가 결정된 상황에 도루를 감행해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두 번의 빈볼을 맞았다. 앞서 강조한 대로 김 감독이 빈볼을 지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최선을 다해 따라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보복 타깃이 될 것을 우려해 간판 타자 김태균을 서둘러 교체했을 뿐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이유로 한화가 김 감독을 선임한 것은 결단에 가까워 보인다. 야신의 후광을 대전으로 가져가는 대신 인천 예수라는 비난도 그대로 승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프로를 떠난 3년여 동안 어느 구단에서든 감독 후보 1순위로 거론되어 왔지만 어디에서도 부름을 받지 못했다. 성적을 내는 감독이지만 시대와의 불화를 안고 살았기에 잃는 것도 분명한 카드였다. 다만 올 시즌은 신생 구단 kt 위즈가 일찌감치 꼴찌를 예약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야신의 한화는 성공으로 끝날 것이다. 열패감에 젖어 있던 대전 팬들에게는 4년 연속 꼴찌를 면하는 적당한 성적만으로도 축복에 가까울 것이다. 경기 중계 시청자 수와 이글스파크 관중 수만 봐도 한화는 벌써 축제 분위기다. 게다가 SK에 남아있던 김 감독의 팬들도 한화로 환승하는 모양새다. 가히 ‘야신 신드롬’이다. 샴페인이 벌써 터지고 있다.

 


어떤 신?


 

“신과 경기하는 것 같다”라는 말로 김 감독에게 사실상 야신이란 별명을 지어준 김응용 감독은 “신도 여러 가지 신이 있다”며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바 있다. 어떤 접두사가 붙는 신을 말하려던 것이었을까.

어쨌든 김 감독은 돌아왔다. 오해와 억울함을 입에 달고 살았던 만큼 부디 이번엔 신의 품격을 보여주길 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