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핀(morphine): 아편의 주성분인 알칼로이드. 마취제로 진통 · 진해(鎭咳) · 진정 · 최면에 효력이 있으며, 부작용으로는 구토 · 발한 · 발열 · 설사 등이 나타난다




2차대전을 다룬 영화를 보면 병사들이 부상당한 동료에게 모르핀을 사용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죠. 전장(戰場)에서 총을 맞고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동료의 고통을 잠시나마 들어 주기 위한 고육지책인 거죠.




너무 고통스러워서 한방만 더 놓아 달라고 애원하는 동료에게 “조금만 참아! 이거 너무 많이 맞으면 죽는단 말이야. 좀 있으면 위생병이 와서 치료를 해 줄 거야. 넌 잘해낼 수 있어!” 하면서 달래 보지만 도무지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르핀은 전쟁과 같은 비상시국에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마약성분의 마취제일 뿐 부상자의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는 치료약은 아닌 거죠. 순간의 고통만 없애 줄 뿐입니다. 게다가 고통스럽다고 해서 과다한 양의 모르핀을 투여 받게 되면 심한 부작용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사방에 포탄은 떨어지지 위생병은 언제 올지 모르지… 정말 사선을 넘어가는 전쟁터에서 심한 부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동료에게 모르핀밖에 놓을 수 없는 병사의 심정이야 이해는 갑니다. 당장 모르핀 한방만 더 달라며 고통에 괴로워하는 동료의 애원을 뿌리 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동료가 죽을 만큼 과다한 양을 투여할 수도 없는 그 심정 말입니다.




최근 들어 저는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을 펴시는 분들이 모르핀을 사용하던 2차대전 때의 병사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심한 부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어쩔 수 없이 모르핀을 사용해야 하는 고독한 병사 말이죠.




(1) IMF가 한창이던 때 많은 기업들이 도산의 위기에 처했고 정부는 ‘화의’ 라는 제도를 부활시켰습니다. ‘화의’란 회사의 경영자가 그대로 경영을 하면서 채권자들과 합의하여 채무를 일정기간 유예하는 제도입니다.(만기를 연장해 주거나 일정기간 동안 이자를 받지 않는 방식으로)




망할 기업은 자연히 망해야 하는 것이 경제의 원칙이지만 국민경제의 큰 파급효과를 막기 위해 ‘화의’라는 제도로 망할 기업에 한번 더 기회를 준 셈이죠.




당시 저는 종금사 기업금융팀에서 대출관련 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담당하던 근실한 기업의 자금담당 부장님이 오셔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우리는 그 동안 열심히 기업 운영해서 금융기관에 이자 낼 것 다 내면서 장사하는데, 그 동안 엉망으로 운영해서 망해가는 경쟁사는 그 놈의 화의 때문에 대표이사도 버젓이 있으면서, 금융기관에서 이자 내는 거 다 봐주니 엄청 유리하게 장사 하더군요.


이자 비용 생각할 필요 없으니 이거 뭐… 입찰을 해도 우리 보다 싸게 해서 입찰 따가고… 우리처럼 근실하게 경영하는 회사는 이게 뭡니까? 차라리 우리도 빚 잔치 하다가 그놈의 화의 업체가 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거 같군요.”




정말 아이러니의 극치였습니다. 열심히 하던 근실한 회사는 비싼 이자(그 당시 이자율 엄청났던 거 잘 아시죠?) 꼬박꼬박 내면서 영업하는데…




(2) 벤처 거품이 급속도로 빠지고 그 동안 우후숙준처럼 생긴 벤처기업에 자금 줄이 말라 벤처대란이 예상되던 시기가 한 2년 전에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벤처기업 마저 망하게 되면 얼마나 많은 실업자가 생겨 나겠습니까? 그래서 정부는 를 만들어 벤처기업에 자금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아무도 손대지 않던 벤처기업의 전환사채를 통째로 모아서 를 만들어 투신사나 보험사 등에 팔았죠.




근실하게 운영해서 자금사정이 좋았던 벤처회사들은 그나마 이번 기회에 경쟁자들이 좀 솎아지나 싶었는데 덕분에 물귀신처럼 다시 살아난 경쟁자들 때문에 고생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만기가 다가 오는 를 자금사정 어려운 벤처기업들이 갚아 나갈 수 있을 지도 의문입니다. 그럼 또 한방의 모르핀이 필요하겠죠.




(3) 얼마 전 신용카드회사 들이 발행했던 카드채 때문에 채권시장이 시끌벅적했습니다. 마구잡이식 카드 발행으로 카드회사의 손실규모가 커지면서 카드채를 보유하고 있던 투신사가 휘청거리기 시작했죠.




만약 카드회사가 만기에 이 채권을 갚지 못하면 투신사 펀드상품이 망가지고 그럼 투신에 돈을 맡긴 서민들의 타격이 커지고... 그래서 10조가 넘는 카드채를 누군가에게 떠 넘겨야 했습니다.




물론, 이번에도 모르핀이 등장했죠.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 어디가 잘못되어 위험수위가 넘어서면 그제서야 정부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모르핀을 놓아 줍니다.




투신사의 타격을 분산하기 위해 은행이나 보험사가 돈을 내어 카드채를 전문적으로 사줄 5조원 규모의 뮤추얼 펀드를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입니다.




(4) 이번에 금리가 또 내렸습니다. 우리나라 경제는 현재 이상한 상황에 처해 있답니다. 폭서(暴暑)와 혹한(酷寒)이 공존해 있어 에어컨을 들여야 할지 난로를 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 한국은행 총재의 말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는데요. 국내외의 악재로 경기는 추운 겨울처럼 얼어 붙어 있는데, 유독 부동산 시장만이 무더운 열기로 달아 오르고 있는 거죠.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금리를 내린 것은 또 한번 모르핀을 주사하는 것이 아닌지 싶습니다. 아무리 경기 활성화를 위한 내수진작과 기업투자 심리 회복을 위해 금리인하가 필수적이라고 하지만, 그 돈이 모두 부동산으로 가버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오늘도 모르핀을 놓을 수 밖에 없는 정부의 고통을 이해는 합니다. 옆에서 사랑스런 동료가 만신창이가 되어 죽어가면서 한방의 모르핀을 외치는데, 이를 외면할 수 있는 전우가 과연 몇 명 있겠습니까?




하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그 동료를 살리고 싶다면 빨리 후퇴를 해서 동료를 응급실로 데려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모르핀은 해결책이 아니니까요.




전쟁에서야 완수해야 할 임무가 있고 탈환해야 할 고지가 앞에 있는데 무작정 총을 팽개치고 부상당한 동료를 업고 후퇴할 순 없죠. 그래서 다급한 상황이니 모르핀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고 합시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목적은 고지를 탈환하는 게 아닙니다. 썩은 상처를 도려내고 치료약을 발라서 살리는 것입니다. 다소 아프더라도 자를 건 잘라 내고 치료를 해야 하는 게 모르핀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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