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규슈여행-제3신... 봄비 촉촉한 '난조인(南藏院)'을 거닐다


창문을 열었다. 어스름이 걷힌 도시의 모습이 비바람 탓에 스산하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을 모양인가, 창밖을 보니 봄비치곤 요란하다.

출근길 시민들은 우산이 뒤집힐까 방패처럼 들고서 종종걸음을 친다.

티비를 켰다. 큐슈 곳곳에 오늘도 내일도 비가 내릴거란다.



사흘 내리 숙소를 옮겨 다녀야기에 가방부터 꾸려 놓고서

짝꿍과 함께 호텔 내 레스토랑을 찾았다. 뷔페식 브렉퍼스트다.

오믈렛과 소시지, 베이컨과 훈제연어를 담고 우리의 청국장과 비슷한

‘낫또(納豆)’까지 넉넉히 챙겨 먹었다.

해외여행 시 현지 음식에 대한 거부감때문에 늘 애를 먹는 짝꿍인데

여기선 괜찮은가 보다. 특히 일본 전통음식류에 손이 자주 가고

그 중에서도 ‘낫또’의 특별한 맛에 푹 빠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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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여행은 아무래도 불편하다. 그러나 생각하기 나름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했다. 이국에서의 봄비 아니던가.



함께한 일행들의 시간 관념은 일정 내내 철저했다.

출발 시간 5분 전이면 어김없이 버스에 올라 착석해 있을 정도다.

그만큼 여행경험도 많아져 배려와 양보 역시 성숙해져 있다.

버스는 오늘 첫 일정인 고즈넉한 산사, ‘난조인'(南藏院)으로 향했다.

비는 얄궂게도 더욱 거세게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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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브러쉬가 촐랑대며 바삐 움직이지만 역부족이다.

촉촉히 내리는 봄비라면 운치가 있겠으나 이건 좀 과하다.

습기찬 차창을 손바닥으로 쓱 문질러 창밖을 본다.



일본 산에는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많아 늘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들판 한 가운데 드문드문 들어선 농가들은 우리네 시골마을의

배산임수와는 많이 달라 보여 새롭다.



우리와 다른 점을 찾아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이다.

관심을 갖고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부분들이 하고많다.

해외여행의 재미를 두배로 즐기는 노하우다.



난조인(南藏院)이 있는 마을, 사사구리마치(篠栗町)에 들어서자, 다행히도

세찬 빗줄기는 조금씩 잦아들었다. 바람은 아직도 기세등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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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챙겨 버스에서 내렸다.

우산을 펴 드는 순간, 비바람에 우산이 나팔꽃 모양으로 뒤집혔다.

레인코트를 챙겨 온 몇몇은 이런 비바람을 예상했던 걸까?

아무튼 일회용 레인코트가 부러웠던 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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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마을을 가로질러 ‘난조인’으로 들어서는 우중 행렬이 이채롭다.

영험한 기가 가득할 것 같은 이곳에 비까지 내려 신비로움을 더한다.



日규슈여행-제3신... 봄비 촉촉한 '난조인(南藏院)'을 거닐다


난조인 입구 배불뚝이 청동달마상이 복스러운 얼굴로 객을 맞는다.

배를 정성스레 쓰다듬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 때문인지

볼록한 배 부분이 닳고 닳아 반질반질 윤이 난다.

짝꿍이 힐끔 쳐다보더니 한마디 툭 던진다.

“왜, 아들 갖고 싶으셔~?”

‘헐~’ 가당키나 한 소린가, 얼른 지나쳤다.



청동와불상으로 향하는 오름길은 완만하여 힘들지 않다.

은근히 운치 있고 묘한 기운이 감도는 산책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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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에 들어서서 느낀 점은 ‘깔끔하다 정갈하다 세심하다’이다.

이를 줄여 ‘일본스럽다’로 정리하고 싶다.

그러나 혹자는 ‘자신의 잘못을 절대로 뉘우치지 않으며

억지 주장을 합리화하는 것’을 두고 ‘일본스럽다’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에게 일본은 극과 극으로 상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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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뽑아든 채 부리부리한 눈으로 오가는 객들을 노려보는 조각상이

걸음을 멈칫거리게 한다. 부동명왕(不動明王)이다.

우리나라 절집 입구를 지키는 섬뜩한 모습의’사천왕상’을 닮았다.

‘사천왕상’은 잡귀의 범접을 막고 중생들의 마음을 깨끗히 해준다.

‘부동명왕’은 악마를 응징하고 수행자를 보호해 준다.

그러고보니 이 둘의 역할은 ‘도긴개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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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명왕 바로 앞엔 거목이 우두커니 서 있는데 이 역시 범상치 않다.

다가가 살펴보니 살아있는 나무에 수호신이 조각되어 있다.

바로 낙뢰를 맞은 나무로, 신기가 있다하여 ‘神木’으로 대접받고 있다.



길목을 막아선 또다른 나무에 이르러, 가이드가 말했다.



“이 소나무는 특별합니다. 일반 소나무가 잎이 두가닥인 것과 달리 신기하게도

세가닥이랍니다. 일본사람들은 이 소나무에서 떨어진 삼지창처럼 생긴

세가닥의 잎을 주워 지니면 액(?)을 막을 수 있다하여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 주워 가는데 때마침 비가 와서 몇 개가 떨어져 있네요.”



짝꿍은 ‘산코노마쓰(세잎 소나무) 밑에 비에 젖어 떨어져 있는

세가닥 솔잎을 잽싸게 주워 리플렛 갈피에 고이 넣는다.

(지금, 집 식탁 유리판 밑에 모셔? 놓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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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조인’에는 표정과 몸짓이 서로 다른 작은 불상들도 무수하다.

또한 동자승과 개구리, 고양이, 부엉이 등을 앙증맞게 캐릭터화한

해학적인 조형물도 군데군데 눈에 들어온다.



대개 복을 불러오는 상징물이다.

눈?귀?입을 손으로 가린 세 마리 원숭이(三猿) 상을

일본 어딜가나 쉽게 만날 수 있다.

이 세상에 나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곳엔 세마리 개구리(三蛙) 상이 있다.

산자루(三猿)를 살짝 베낀 산가에루(三蛙) 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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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를 일본말로 ‘가에루(蛙)’라고 한다.

‘돌아오다’를 일본말로 ‘가에루(歸る)라고 한다.



즉 집 나간 복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컴백홈~’

다시말해 ‘개구리’는 곧 ‘행운이 돌아온다’란 의미인 것이다.



일본에서 개구리를 주로 신으로 모시는 곳은 바닷가 어촌 마을이다.

고기잡이 나간 어부의 무사귀환을 비는 의미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난조인’에는 나무 한 그루, 동물 한 마리에도 이야기가 있다.



日규슈여행-제3신... 봄비 촉촉한 '난조인(南藏院)'을 거닐다


난조인은 그야말로 ‘福의 종합선물세트’이다.

와불상 가기 전, 통과해야 하는 터널이 있는데 이 터널 속에도

귀요미? 7복신이 버티고 앉아 객들 발목을 잡아 끈다.

사업의 성공, 풍작 등에 대한 기원을 담고 있다는데 지나는 객들이

돈을 내고 향을 피워 터널 안이 매캐하다.

터널 양 벽면 부조 아래 복을 기원한 기부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日규슈여행-제3신... 봄비 촉촉한 '난조인(南藏院)'을 거닐다


터널을 나오자, 비로소 와불상의 파마머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실로 엄청난 크기다. 머리 크기만으로도 압도되는 느낌이다.



이 청동와불상은 길이 41m, 높이 11m, 무게 300t 규모이다.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눕혀 놓은 것과 같다.

청동 동상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란다.

천하태평의 자세로 누워, 내리는 비도 개의치 않으시며

온화하게 미소짓고 계신다.



이 사찰은 돌아가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곳이라 보시가 많다.

부자 사찰이란 얘기다. 그래서 동남아 불교국 어린이들에게 학용품지원을

꾸준히 해왔는데 그쪽 나라에서 고마움의 표시로 불사리를 보내왔다.



감복한 이 절에서는 불사리를 정성스레 모시기 위해 바로 이 거대한

청동와불상을 만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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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불상을 등뒤에 두고 너나없이 인증샷을 날리느라 법석이다.

그러고선 우르르 와불상 발에 다가가 발바닥을 간지럽힌다.

발바닥을 쓰다듬으며 소원을 비는 모습이다.

일본 내에서도 ‘기도빨’ 좋기로 입소문 난 곳이라 했다.

일본 프로야구 감독들도 좋은 성적을 기원하러 주로 이곳을 찾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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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빨 좋다는데 보고만 있을 짝꿍이 아니다.

열심히 와불의 발바닥을 간지럽히며 소원을 빌던데…혹시 ㅋ

<다음 편으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