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가끔씩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신 어머니의 특별한 나들이에 따라가곤 했습니다. 열 명 남짓의 아주머니들이 음식점에 모여 식사를 하며 한참을 웃고 떠드는 자리였습니다. 몸이 배배 꼬일 정도로 꽤 오랫동안 앉아 있어야 했지만 좀처럼 먹기 힘든 만난 요리를 먹는 재미에 그 날이 기다려지곤 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이 ‘계’모임이었습니다. 몇 달 후 어머니 순서가 되어 곗돈을 타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에 보니 아버지께서 두툼한 겨울 코트를 새로 장만 하셨습니다.

 

 곗날은 작은 축제였습니다. 고된 가사에 웃을 일 없으시던 어머니께서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 웃음 치유를 받는 날이요, 바듯한 가계부에 목돈이 수입으로 올라오는 날이었습니다. 어린 필자에겐 자장면과 탕수육을 실컷 먹는 날이기도 했고요. 요즘에도 좋은 일이 생기면 ‘계 탔다.’또는‘곗날이다.’라는 표현이 자연스레 나옵니다.

 

 계(契)의 기원이 삼한시대(三韓時代)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니 참으로 오래된 우리 고유의 전통입니다. 계의 형태와 목적도 다양했다고 합니다. 무신의 난이 일어났던 의종 때에는 문무간의 반목을 없애고 우호적인 교제를 꾀하고자 만든 문무계(文武契)가 있었습니다. 또 혼인준비를 위한 혼상계, 동네사람끼리 구정 때 푸짐한 음식을 마련코자 들던 세찬계(歲饌契), 동년배들끼리 드는 동갑계(同甲契)도 있었습니다. 또 토지를 공동 경작하는 농계(農契), 소를 공동으로 사육하는 우계(牛契)등 실로 다양한 형태의 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계의 기본 정신은 상부상조(相扶相助)입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친구와 가라는 외국 속담을 우리민족은 계라는 형태로 실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혼자 힘으로 헤쳐 나가기 어려운 일들을 함께 해결해 가는 지혜인 셈입니다. 우리의 핏속에는 ‘혼자’보다는 ‘함께’가,  ‘나’보다는 ‘우리’가 더 진하게 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지혜가 있었기에 이 작은 나라가 숫한 경쟁국들을 제치고 리더 국가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한국구세군에서 작년 말에 펼친 ‘자선냄비 모금활동’에서 총 51억3485만원이 모였다고 합니다. 1928년부터 진행한 자선냄비 모금 활동 중 최고액이라고 하니 놀랍습니다. 세계경제 침체니, 가계부채 1000조 시대니 하는 암울한 한 해의 끝자락에 이룬 성과기 때문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힘을 모으는 우리의 <계(契)>정신이 아직도 펄펄 끓고 있는 듯 하여 가슴 뿌듯했습니다.

 

 벌써 올해의 반인 6월이 되었습니다. 남은 시간들은 지금까지 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가겠지요. 그래서 올 연말이 되어 한 해를 스스로 결산해 볼 때 나만을 위해 살아온 한 해가 아니라 함께 쌓아온 일년으로 결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흐르고 있는 <계(契)>정신이 온전히 발휘되도록 함께 힘을 모아봅시다. 그리고, 다 같이 손뼉 치며 외쳐봅시다. 우리는 “계(契)~한 민족! 짝짝~! 짝! 짝짝~!” 이라고 말입니다.

ⓒ 김도영 20130601 (dykim9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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