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어렸을 때 ‘소년중앙’이라는 월간지는 어린이들이 매달 손꼽아 기다리는 인기 잡지였습니다. 다양한 만화도 재미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세계의 미스터리였습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니 초능력이니 UFO 니 하는 이야기들은 호기심 많은 어린이 독자들의 혼을 쏙 빼 놓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중 아직도 생생히 이미지가 기억나는 것이 바로 이스터섬의 거석(巨石) 이야기 입니다.


 

 기다란 얼굴에 움푹 팬 눈과 높은 코, 축 늘어진 귀에 굳게 다문 입을 가진 무표정한 이 괴석(怪石)들은 그 모양새로 보나 크기로 보나 참으로 기괴합니다. ‘모아이’라 불리는 이 거석들은 대개 크기가 5m가 넘는데 큰 것은 30m에 달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섬 전체에 무려 887개의 모아이가 있고 채석장에 방치된 모아이만도 397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어린이 잡지에서는 이것들이 외계인의 흔적이라며 괜스레 으스스한 주장을 펴곤 했는데 실상은 가슴 아픈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스터섬은 남미 대륙에서 3,800킬로미터, 가장 가까운 핏케언 섬에서도 2,6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남태평양상의 절해고도(絶海孤島)입니다. 얼마나 숲이 울창했던지 약 1억 그루의 야자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나무가 많았기에 각종 새들과 과실들도 당연히 풍부했습니다.  주민들은 숲의 나무로 배를 만들어 생선이며 돌고래 같은 바다 생물들을 잡아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 주민들은 석상 모아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큰 모아이를 만들었습니다.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더 많은 돌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석상을 옮기고 작업을 하기 위해 더 많은 나무들이 필요했지요. 부족 간에 경쟁적으로 더 크고 더 많은 모아이를 건립하면서 어처구니없게도 섬에는 나무 한그루 남지 않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무가 없으니 숲의 동물들이 사라지고, 카누를 만들 수도 없어 고기를 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섬의 자원이 떨어지고 희망이 사라질수록 종교적 염원을 담은 모아이는 점점 대형화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더 이상 모아이를 만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상황을 회복하기에 너무 늦어버렸지요. 인구는 늘고 섬의 자원은 완전히 고갈 되었던 것입니다.  부족 간의 치열한 전쟁과 굶주림 그리고 인간사냥과 식인풍습까지 생기는 비극적인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스터섬은 완전히 멸망하였습니다.




 이스터섬의 역사는 서로 화합하지 않는 공동체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향해 엄숙히 서있는 모아이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함께 살려하지 않으면 함께 죽는다.”고 말입니다.




 자, 잠시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삶을 100m 달리기 시합으로 여깁니다. 늘 조급하고 허덕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우리의 삶은 혼자 달리는 경주가 아닙니다. 삼인일각(三人一脚) 달리기와 너무 닮았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발을 묶고 어깨동무를 하고 달리는 시합 말입니다. 혼자 살려고 뛰어 나가면 여지없이 다 같이 넘어지고 맙니다. 동행자와 마음을 맞추고 구령을 맞추며 “헛둘, 헛둘..”하며 달려야 합니다.




 이젠 생각의 축을 바꿔봅시다.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옆>도 보면서 달려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외롭고 치열했던 트랙에 웃음과 박자와 신바람이 넘칠 것입니다.

ⓒ 김도영 20130529 (dykim9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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