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와 기쁨이 무더위를 가르고 있다. 대표팀의 원정 첫 16강 진출은 흐뭇하다 못해 감격스럽기 까지 하다. 축구광이 아니더라도, 축구공 한번 만져보지 못한 여성이라도 월드컵은 관심 그 자체다. 32개국 64경기를 밤잠 설치며 다 보고 16강 진출 국가를 분석하는 매니아들이 주변에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축구를 아는 것의 몇 천분의 일이라도 6.25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아마 16강 진출 국가는 꿰뚫고 있지만 UN참전 16개국은 거의 모를게다.

서울의 4배 크기 밖에 안되는 작은 나라 ‘룩셈부르크’가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한국전쟁에 와서 인구대비 참전병력비율 및 전사상자 비율 1위를 세웠다는 사실은 거의 알지 못하리라.
20대와 30대가 한여름 밤의 신나는 응원열기로 온몸을 감쌀때 당시의 20-30대는 주저없이 전쟁터로 향해 눈물겨운 분투로 온몸을 불사랐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월드컵 축제의 그늘에 80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고 1000만의 이산가족을 만들어낸 세계 전쟁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쓰라린 6.25전쟁의 기억은 사라지고 있다. 자칫하면 지금 이순간 이렇게 신나는 월드컵을 즐길 수도 없었을 절대절명의 6.25의 의미를 무의식적으로 홀대하고 있는 것이다.

축구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위기의 순간이 6.25전쟁에도 있었다. 만약 김일성이 서울을 탈환한 후 공격기세를 늦추지 않고 단숨에 진격했다면 미군의 참전기회와 반격계획의 시간적 여유를 박탈하여 한반도는 적화통일이 됐으리라. 북한은 서울에서승리의 도취감에 3일을 머무른 것이 이후 패전의 쓰라린 원인제공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6.25전쟁에서 제공권(공군력)과 제해권(해군력)을 어느정도 갖고 있었더라면 전쟁의 양상은 또 달라졌을 것이다. 당시 김일성은 미국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보급선을 차단하지 못한 것을 뼈져리게 후회했다고 한다. 이는 이후 북한이 잠수정을 증가시키는 계기를 만들었고 오늘날 천안함 침몰의 역사로 이어졌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6.25는 안보 불감증과 정신적 해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에 대한 경종을 울린다.
전쟁은 당시 정부가 비상경계령을 해제하고 고급 지휘관들이 음주를 즐기는 등 긴장감이 풀어진 틈새로 파고 들었다. 북한의 치밀한 준비하에 경황없이 날벼락을 맞은 전쟁은 초기에 그야말로 아수라장 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린 전쟁내내 미군의 화력과 장비에 의존해야 했고 독자적인 작전권마저 넘겨 주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다. 그 작전권은 이제야 환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당시 중공군은 약해진 국군만 집요하게 공략하여 괴롭혔고 국군은 좌표 없는 1/60만 지도를 가지고 전쟁을 수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이름 없는 농군출신의 장병들은 마지막 까지 목숨을 바쳐 이 나라를 구해낸 6.25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제 이 땅의 전쟁 공포가 사라졌다고 안도할 수 있을까? 우리가 월드컵 축제를 마음 놓고 즐기는 이면에도 아직까지 엄청난 긴장의 세계가 도사리고 있다.
만에 하나 그 아픔이 조금이라도 다시 재현된다면 과연 우리나라의 자유를 위해 그때처럼 미국이 발 벗고 나서줄까? 수많은 국가들이 참전하여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 줄까? 우리 병사들이 백전불굴의 사투를 할 수 있을까?

가장 해이해질 시기에 역사는 한줄기 획을 긋는 법이다.
신나게 월드컵 축제를 즐기는 것은 좋지만 안보불감증과 함께 놀지는 말자. 적어도 6월 25일 이날 만큼은 진지하게 그리고 가슴 벅차게 6.25를 상기하고 예의를 갖추도록 하자. 16강에 오른 나라 중 6.25때 우리를 도와준 나라를 응원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