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초 내가 전방 소대장을 할 때 대대에는 정말 무서운 작전장교 한분이 계셨다.
수색이나 정찰 등의 상황보고를 할 때면 그의 너무나도 강한 포스(?)앞에 모두들 주눅이 들었고, 그에게 일언조차 말을 섞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이었다.
강자 앞에 한없이 약해지는 모습은 ‘까라면 까라’식의 어떠한 불합리한 명령도 감수해야함을 강요받았다.

자랑일지는 몰라도 난 그런 강자에게 논리적으로 다부지게 맞섰다. 소부대 전술 교범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모른다. 행여 그에게 약점 잡히지 않기 위해서 소대원들은 빈틈없이 훈련시켰다. 그러자 어느 날부터 그가 나에게는 함부로 하지 못했다.
반대로 나는 약자에게는 약했다. 소대의 풀어진 고참병들에게는 엄하게 대했고  이등병들에게는 그들이 시기하여 몰래 기합을 줄 정도로 온정을 베풀었다.
어려움도 많았다. 군대만 아니고 계급만 없으면 고참병들이 단체로 시위라도 벌일 아찔한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런 강자들과 타협했으면 군생활이 편했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그러나 진가는 일년 후부터 나타났다. 고참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약자였던 이등병들이 소대의 실세들로 부상했을 때 나는 달콤한 소대장 생활을 누렸다. 약자일 때 잘해주던 소대장을 고마워 했던 그들이 강자가 되어 알아서 척척 돌아가는 소대를 만들어 나를 도와준 것이다. 그당시의 약자들과는 전역후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모임을 갖는다.

나의 역발상 처세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힘없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약해질 것이고 강자에게는 자존심을 굴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한 게임을 마쳤지만 우리 축구가 이런 것 같아 매우 기분이 좋다. 유로 챔피언 그리스 강자와 맞서 너무나 멋진 활약을 보여 주었다. 리드를 하면서도 강자에게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던 모습은 가슴이 후련하기까지 하다. 특히 세대교체 신세대들이 월드컵 A매치에서 긴장감으로 표정이 굳어지지 않는 점이 대견스럽다.

17일 16강 고비의 상대 아르헨티나는 정말 강자 중의 강자이다.이후 나이지리아 팀도 만만치 않다. 그런 강자에게 보란듯이 강해 졌으면 좋겠다. 아르헨티나 감독 마라도나가 허정무 감독에게 ‘태권축구’라고 계속 비아냥 거린다면 당당하게 들이대서 예상을 뒤엎는 한판 승부로서 우리의 날카로움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강자에게 너무나 많은 힘과 소유물이 집중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세상은 강자들의 횡포(橫暴)요 그들만의 회포(懷抱)라고 여겨 강자들에게 한없이 굽히고 약자를 겁 없이(?) 짓밟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그릇된 약육강식의 논리는 사라져야 한다. 언젠가는 강자도 약해지고 약자도 강해진다.

현실에 의기소침 하지 말고 나를 누르는 강한 기(氣)를 가진 강자에게는 더욱 자신감 있게 맞장을 뜨자. 그리고 힘없는 약자에게는 약한 모습으로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하도록 하자. 분명 그 노력은 값진 보상으로 다가온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 대한민국 역시 16강 그이상의 성과를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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