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을 한지 17년이 지났습니다.



처음에는 자동차부품을 중남미에 수출하겠다고 했지만, 별로 재미를 못보고 어찌하다보니 이제는 발가락양말과 맨발신발에 주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수많은 품목을 만져보았습니다. 방탄복, 화장품기계, 향초, 철강제품, 시멘트, 중장비부품, 란제리, ……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왠만한 아이템에 대하여 누가 물어본다면 적어도 한두마디는 할 정도가 되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전 무척이나 교과서적인 무역을 했고, 또 그만큼 정석적인 마케팅을 한 것 같습니다. 브랜드마케팅, 가족기업, 전문화가 내가 나를 돌아보는 경영의 주요 키워드였습니다. Feelmax라는 브랜드를 통하여 발가락양말과 신발산업에서 뭔가를 이루어보자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7년동안 별로 이루어 놓은 것도 없네요. 전 사업을 시작하면 아주 큰 것을 무역을 통하여 금방 이루어낼 줄 알았습니다.



애초에 제가 시작했던 자동차부품은 제가 사업을 시작할 1995년도만해도 블루오션이라고 할 만했지요. 중남미 지역에 대우, 현대, 기아등 한국의 자동차들이 공격적인 브랜드마케팅을 하면서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갈 때였고, 그에 따라서 한국산 부품에 대한 수요가 막 일어나고 있었으니까요. 무역관에 있다보면 하루에도 여러 명의 바이어들이 찾아와서 부품을 구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서 ‘이 것을 하면 되겠구나!’하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자연스럽게 알게된 중남미 바이어들, 무역학과를 나와서 무역진흥공사의 무역관에 있었으니 무역에 대하여는 누구보다 잘 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와서 무역회사를 차렸지요.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저에게는 오히려 한국내의 사정이 어두웠습니다. 자동차 부품을 하려면 경쟁력있는 가격으로 남들이 구하지 못하는 부품을 구할 수 있는 능력도, 바이어들에게 팔 수 있는 능력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지요.



그리고는 방탄복을 했었습니다. 딱히 저의 특별한 아이템이었다기보다는 친구가 그 분야에 있었기 때문에 우연치않게 관여하게 되었고, 실제로 수백만불을 벌 뻔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은 무위로 끝났습니다. 거의 모든 절차도 끝나고 계약만 남겨둔 상태에서 수출대상국에 갑작스런 천재지변이 일어나면서 예산자체가 소멸되버렸습니다. 화장품 기계는 좀 특별했습니다. 1-2년인가를 하면서 경영진과 종업원의 관계를 아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요. 그리고 그 회사에서 생산하는 왠만한 기계에 대하여는 외국의 인콰이어리에 대하여 제가 견적을 내고 상담을 할 수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기계분야와 화장품분야에 대한 경험도 상당히 쌓았고요. 이때는 대만의 한 기계 판매회사와 연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연간 500만불의 판매를 전제로 하여 상호간에 독점계약을 맺고, 그 회사의 주선으로 북경기계박람회에도 나갔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박람회장에 기계가 고장나는 바람에 단 한 대도 팔지 못하고, 계약마저 무산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그 회사는 사라졌습니다. 기술적 실력은 있었지만, 경영능력이 부족하면 기업을 운영할 수없다는 사실을 아주 확실하게 보았습니다.



그다음이 발가락양말입니다. 싱가폴무역관에 있는 선배로부터 ‘바이어가 들어가니 며칠동안 같이 다니면서 알아봐달라!’는 부탁이 계기가 되었지요. 이후 저는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독일과 핀란드의 바이어들을 만나면서 발가락양말에 매진하게 됩니다. 핀란드와 독일의 바이어는 인터넷 홈 페이지를 통해서입니다. 1997년경에 제가 일일이 인터넷 프로그램 언어인 HTML코드를 손으로 치면서 만들었는 데, 얼마 후에 ‘삼성’에서도 홈 페이지를 만들었다고 신문에 날 정도로 빨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수출을 처음시작하려고 하는 분들께는 ‘일단 홈 페이지부터 만들어라!’고 합니다. 그래야 바이어가 나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들과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같이 발가락양말을 했고, 지금은 맨발신발을 새로이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FEELMAX라는 이름으로 유럽에 수출하는 발가락양말은 한동안 꽤나 커졌었습니다. 그래서 ‘고생끝 즐거움 시작’인 줄 알았지요. 그런데 유럽과 미국에서 시행해왔던 양말에 대한 수입물량 제한, 즉 쿼터제도가 폐지되면서 중국산의 물량공세에 밀려서 규모가 많이 줄었습니다. 이 때도 저는 별로 경쟁자도 없는 유럽의 발가락양말시장에서 경쟁자들이 들어오면 시장전체가 커지고, 그런 가운데 저희는 ‘시장선도자’의 입장으로서 어느 정도는 이득을 챙길 수있을 것라는 기대를 했지요. 마케팅교과서에 그렇게 써져있으니까요. 하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은 시장규모에 비하여 너무 큰 물량이 들어오니 백화점이나 로드샵같은 유통업체도 어찌할 수없을 정도로 흐름이 굳어버리더군요. 이후 저는 세상은 너무 많은 변수들이 있어서 예측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불확실성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요즘은 밑창이 1mm에 아주 부드러운 고무로 만들어서 전혀 신지 않은 듯하면서, 발을 보호할 수 있는 기능만을 하는 ‘맨발신발’로 다시 사업의 내실을 기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발가락양말을 같이하는 핀란드 파트너가 개발한 제품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두툼한 쿠션기능이 있는 신발을 신기 시작한 것은 불과 40여년에 불과하지만, 그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그런 관념에 저항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신발에 희망을 갖는 것은 ‘트렌드’입니다. 현대인이 인체의 자연적 구조에 반하는 ’과학적 신발‘을 신음으로서 야기되는 수많은 문제는 의학계에도 영향을 미쳐 ‘족부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탄생시켰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barefoot running(맨발달리기)에 대한 논쟁이 스포츠과학분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두다 ‘신발’이 ‘맨발’보다 나을 게 없다는 전제하에서 ‘어느 정도까지 맨발로 돌아가야 할까?’라는 고민을 담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 요즘 ‘트렌드’라는 단어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몇 가지만 적었어도 꽤 길어졌습니다. 백화점만큼이나 많았던 아이템들중에 선택과 집중을 한 결과이지요. 일부는 제가 선택하기도 했지만, 더 많은 아이템들은 주어졌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사업을 하면서 많을 일을 하는 것같지만 사실은 주변 사람들이 권하거나, 현재 하고 있는 사업으로 인하여 관여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제가 하는 것보다 10배는 더 많은 사업아이템을 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어쨌든 처음 시작한 것을 가지고 끝까지 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지일관하는 것이 나은지, 조삼모사하듯이 쉼없이 바꾸는 것이 나은 지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건 본인의 경험, 지식, 성격, 국내 환경, 국제환경등 수많은 변수를 감안한 다음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선택의 과정입니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 쉽게 이루어지는 경우란 없습니다. 오히려 실패가 더 일반적이라고 할 수있지요. 그렇다고 실패를 권장하지는 않습니다. 작은 실패는 얼마든지 감수하더라도, 생존을 걸고 해야하는 위험은 될수록이면 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큰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작은 모험들을 피했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제가 해왔던 무역은 분명 여러 분들 모두의 무역과는 많이 다릅니다. 모든 사람의 삶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삶과 다른 것과 같지요. 자기의 삶은 자기가 만들어 가듯이, 자기의 사업방식 또한 자기가 만들어야 합니다. 그 과정을 하나도 허투루 지남이 없이 체계화하고 정리해서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야 합니다. 저도 제가 해왔던 과정을 나름대로 정리하다보니 몇 권의 책이 나왔고요. 저나름대로 제가 하는 과정에 대한 체계화를 시켜보고, 다시 같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하여, 앞으로는 더 잘해보겠다는 의지, 그리고 이 책을 보고 무역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17년동안 나도 무역을 했고, 무역을 처음하고자 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무역에 대한 질문을 하고 저도 아는 한까지는 답변을 할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사례는 저의 사례일 뿐입니다. 어느 순간, 누가 여러분에게 ‘당신은 어떻게 무역을 했나요?’라고 물을 때 적절한 대답을 할 수있음은 물론이고, 남들에게 모범이 될만한 성공사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큽니다. 우리 모두 파이팅!!!

(이 글은 무역&오퍼상 무작정따라하기 2013 개정판에 게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