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마케팅) 거짓 협상은 그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
협상은 어떻게해야 할까? 그 말속에는 어떻게하면 나의 전략을 숨기고 상대의 전략을 알아내서 나의 최대한의 이익을 도모할까를 고민하는 말이다. 그리고 한국사람은 협상에 약해서 항상 손해를 본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일본인을 대표하는 성격이 혼네(속마음)와 다테마네(겉모습)이다. 겉으로는 무척 친절하고 속을 다 내어줄 것같으면서도 실제로는 그 마음속을 알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외국 사람들이 오해를 많이 한다. 이에 비해서 한국인은 지나치게 솔직해서 문제가 된다. 그래서 한국인의 협상력은 세계 최저라는 말도 있는 데. 한국사람은 일단 속내부터 털어놓고 시작한다. ‘자 내 생각은 이렇다, 넌 어떠냐?’ 이런 식이다.



한국에는 삼국지나 손자병법이나, 이태리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처럼 온갖 음모로 점철된 책도 없다. 또한, 성경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해놓고, 주를 믿지 않는자는 지옥의 불속에 빠지리니 하는 식의 책도 없다. 대신 한국 사람은 상황에 대한 임기응변에 능하다. 대충 말하자면 네가 그렇다면, 난 이렇게 하겠다는 변수를 많이 만들어 낸다. 지난 5천년의 역사에서 우리가 먼저 일으킨 전쟁은 몇 되지 않고 항상 침략을 당하면서도 살아남은 저력이다. 우리가 무역을 처음 시작할 때 외국에서 사기를 당한 경우가 많지만, 이제는 한국 사람을 상대로 사기칠 수있는 민족은 한국민족 밖에 없다. 자기를 확 드러내놓고 시작하는 것이 가장 강한 협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거짓말할 필요가 없고, 나는 너를 믿었는 데, 네가 이럴 수있어 라고 확실히 말할 수있어, 나중에 곤란해질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협상이란 실리를 얻기 위한 명분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생각대로 안되면 확 파토놔버린다. 임상옥이 중국에서 인삼을 태워버린 것처럼. 물론 이 이야기는 결국 중국의 상인들이 타고있는 인삼이 아까워서 원래 가격을 수십배를 지불하고, 임상옥은 거부가 되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만일 중국인들이 그렇게 지고 들어오지 않았으면 임상옥은 결국 인삼을 다 태워버렸을 것이다. 그게 한국 사람들의 오기이다. 줄 것 받을 것을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한다. 난 이런 방식의 협상을 좋아한다. 말을 이리저리 빙빙 돌리고, 애매하게 하는 것은 서로를 지치고 피곤하게 한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상호간에 불신이 쌓인다. 그렇게 되면 협상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도 상대방이 그 협상을 이행할 지에 대한 검증의 과정도 길어진다. 물론 장사는 흥정하는 재미도 있다. 시장판에서 가서 장사치가 부르는 값을 다 주고 사면 왠지 손해를 본 것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협상이라는 것은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 듯이 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시장의 장사도 뜨내기에게는 높은 값을 부르고 바가지를 씌우려고 할지 모르지만, 단골 손님에게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 동네 손님들에게 소문 한 번 잘못나면, 얼마가지 않아 문닫아야하는 걸 우리는 모두 다 잘안다. 협상도 그렇다. 한두번 거래할 사람과 하는 게 아니라, 오랜 기간을 두고 큰 이익을 앞두고 하는 게 협상인데, 그걸 뜨내기 손님대하듯이 할 수는 없다.



우리는 흔히 전략이나 전술을 논할 때 삼국지를 말한다. 그리고 제갈공명이나 조조의 영민함과 교활함을 전략의 진수로 꼽는다. 그런데 실제로 삼국지는 거의 백년이나 끌었다. 그건 상호간의 믿음이 아니라, 속임수가 전제로 한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하면 삼국지에 나오는 믿지 못할 사기적인 일화들을 떠올리고, 그게 이제와서 ‘중국인은 믿기 어려운 민족’이라는 말로 정의가 된다. 거기에 비하면 한민족은 ‘참 착한 사람들’로 정의된다. 그건 한국 사람만 안 믿는 말이기는 하지만.







사람을 일시적으로 속일 수는 있지만,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다. 더구나 거의 모든 정보가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설령 내가 한 말의 진실성을 확인할 수는 없어도, 시장에서의 흐름은 검색만하면 매우 쉽게 확인할 수있다. 그런데도 시장의 흐름이나 정보에 역행하는 자료를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협상을 이끌어냈다면, 오히려 나중에 된통당할 수있다. 어느 경우에도, 그게 설령 개인간의 사적인 계약이라하여도 거짓에 의한 계약은 언제든지 폐기할 수있고, 나아가서는 손해배상을 물릴 수 있는 게 일반적인 법논리이다. 설령 본의가 아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였어도, 그게 고의가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협상을 말할 때 게임이론들이 참 많이 적용된다. 그런데 그 모든 게임논리에서 가장 확실하게 적용되는 결론은 ‘착하게, 상대에게 잘 해주는 게 장기적으로는 결국 옳다’이다. 내가 상대에게 잘 해주었는 데, 상대가 배신을 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럼 그 때 나도 배신하면 된다. 그럼 큰 손해를 보게 되지 않냐고? 장사란 처음부터 크게 하지 않는다. 서서히 상대가 믿을 수있을 만큼 하는 게 장사이다. 협상이란 양방의 장기적 이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