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난 사교성이 있을까?

                                    (나를 알고 장사하자)




‘사교성’이라~ 뭐 이게 사장하고 뭔 상관이 있을까? 많지요, 정말 많지요. 일단 직원들과의 관계가 좋아야 회사분위기도 좋고, 그래야 직원들이 회사나오고 싶어하지. 직원이 아닌 사람들하고도 좋아야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세상 소식을 듣고 그 속에서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들을 얻을 수있을뿐더러, 영업상으로도 정말 필요하다. 일단 세상 살이를 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꾸준한 관계속에서 발전하는 것인데, 그 바탕이 되는 것은 ‘그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은 지?’ 여부에 달려있다. 그런데 사교성과 리더십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나름대로 간단히 정의를 내려보았다.



사교성 ->목적성없이 사람만나는 것 자체가 좋은 것

->리더십과 달리 널리 많은 사람들과 거부감없이 편하게 지내는 것.



음, 그럴듯하네. 그런데 사장이, 아니 요즘 사람들이 가져야 할 사교성이란 이전과는 많이 범위가 넓어졌고 방법도 다양해졌다. 편하게 네가지 범주로 나누어 보았다.



사교성의 범위 -> 잘아는 사람과 잘 지내는 것, 잘 모르는 사람과 잘 지내는 것

-> 온라인 사교성, 오프라인 사교성



1. 잘아는 사람과 잘 지내는 것

이거 쉬운 것같아도 쉽지 않다. 요즘은 서점에 가면 ‘사장’에 관한 책을 우선 찾아본다. 윤용인이 쓴 ‘사장의 본심’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직원과의 관계를 펼쳐낸 사장의 속내이다. 사장이 직원에게 본심을 확실하게 말하지 않고 에둘러서 말하는 내용이다. 우선 제목을 보자.



자네 실력이 정말 대단하군 --> 내가 젊을 땐 너보다 더 했어

장기 휴가를 쓰겠다고? 그럼 쉬어야지 --> 평가를 받을 시간이 돌아왔군

요즘 무슨 책을 읽나? --> 제발 부끄러우니 공부 좀 해라

지난 번에 내가 말한 건 어찌 되었나? --> 너, 딱 걸렸어

그런데 왜 사장은 직선적으로 말하지 못할까? 직원들에게 좀 더 솔직해져야 하지 않을까?

뭐, 사장이라고 하고싶은 말 탁탁 내놓고 속시원하게 했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은 사람관계에 치이다보면 그럴 수없다. 내 속으로 낳은 아이마저 내 말을 잘 듣지 않는 데, 기껏해야 적은 월급으로 묶여있는 사장과 직원의 관계가 내 속같지 않다. 그래서 어르고 달래면서 같이 가야한다. 그게 이 책의 본심이다.



그렇다고 직원이 사장에게 본심을 내놓지는 않는다. 뒷담화를 할 지언정 눈치를 보면서 사장 앞에서는 말조심을 한다. 정말 직원하고 사장이 계급장 띠고 야자타임하면서 솔직하게 대화를 하면서 회사을 운영하면 그게 잘 될까? 난 아니라고 본다. 설사 직원이 사장만큼이나 책임감도 있고, 능력이 있다고 해도 사장 1인과 직원들 다수간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민주적인 회사 운영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사장이 회사를 운영해야 하겠다는 방침과 직원 전체의 생각이 다르다면 사장은 직원의 의견을 따라야 할까? 게다가 직워들간에도 하나의 의견으로 일치하는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직원들도 다 다른 생각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장은 직원들을 설득하고 다독거려가면서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 비록 그대로 말하지는 못하지만, 이 책처럼 사장은 직원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에둘러서 말할 수밖에 없다. 내가 사장이라고 직원들에게 명령만하면 그 회사는 오래 못간다. 결국 회사도 직원이 움직여야 움직이는 거니까. 오히려 아는 사람, 내가 지시해야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장 어렵다. 사장도 직원에게 잘 보야야 하고, 잘 대화를 해야 한다. 그래서 직원들과 사장의 사교적인 관계도 중요하다.



2. 잘 모르는 사람과 잘 지내는 것

잘 아는 사람과의 관계가 ‘내적인 사교성’이라면 잘 모르는 사람과의 관계는 ‘외적인 사교성’이다. 엘린다 블라우가 쓴 ‘가끔보는 그가 친구보다 더 중요한 이유’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는 ‘중요한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중요한 이방인’ : 우리는 매일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지만 가깝지는 않은 사람들과 접촉한다. ...... 이들은 존재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지만, 실은 우리의 일상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저자에 의하면 “가까운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면 편안하다. 그들이 하는 생각은 대개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를 제한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하’라고 외치게 만드는 생각은 바깥쪽 차선을 달리고 있는 중요한 이방인들에게서 나온다”고 했다.



내가 이 책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구절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누군가에게서 들어본 이야기이다. 그리고 최근에 읽었던 소셜네트워크에 관한 책에서도 나왔던 ‘느슨한 유대관계’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이다. 실제로 사업을 하다보니 일로 연결되는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라 항상 ‘엉뚱하게 내가 왜 이일을 하지?, 어떻게하다 이 사람하고 연결이 되었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와 평소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아하, 인맥이라는 것이 중요하고, 많은 사람을 알아야 하겠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누가 부르면 ‘예, 써’하고 달려 나간다. 그리고 가능한 한 나의 인간관계에 대한 지평을 넓히려고 노력한다. 멜린다 블라우는 책에서 말하기를 “중요한 이방인을 소중한 존재로 만드는 요소인 ‘서로 다름’은 인간관계를 맺는 데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양한 사람들을 우리 삶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 더 편안하게 느끼고, 제한된 경험으로는 자신을 가르칠 수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요즘은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서 만나자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나 역시도 내가 만나보지 않았던 분야의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려고 하고 있다. ‘이방인’을 만나면 만날수록 내가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난다. 언젠가는 오랜만에 어떤 분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는 뭔가를 나보고 해달라는 것이었고, 그게 나의 일에 상당히 도움이 되는 일이다. 한때는 그와 나는 서로가 중요한 이방인이었다가 먼 이방인이 되었는 줄 알았는 데 다시 중요한 이방인이 되었다. 그와 통화하면서 ‘아하! 이렇게도 도움이 되는구나!’하는 감탄을 다시 했다. 요즘은 잘 아는 사람과의 관계만큼이나 중요한 이방인과의 관계가 무척 중요해졌다. 그만큼 세상일들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3. 온라인 사교성과 오프라인 사교성



요즘의 사교성은 농담을 잘하고, 술잘먹고 인간성 좋은 것에 그치지 않는다. 회사를 하다보면 인터넷 쇼핑몰에서의 매출 비중이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장사는 하지만 직접 고객을 얼굴로 맞대고 하는 것보다는 인터넷을 글로 만나서 친해지고, 영업을 넓혀가는 게 점점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다음’이나 ‘네이버’등의 포털사이트에서 블로그를 쓰고, 카페를 만들고, 페이스북을 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따라서 사이버공간에서의 사교성도 매우 중요해졌다.



원든 원하지 않든 간에 어쨋든 우리 대부분이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만들어지는 느슨한 네트워크의 한 부분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또한 우리 스스로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를 얼마든지 만들 수있다. 기왕에 친한 사람은 친한 사람대로 중요하고 그들과 만나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장사를 하다보면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뭔가를 물어야 할 일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들을 반드시 얼굴을 맞대고 만나야 할 시대는 지났다. 우리가 이제껏 친숙했던 ‘공동체’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람들과의 교류는 더 이상 지리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페이스 북’이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맺은 사람은 평소 자주 연락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과거에 친했던 사람들, 한두번은 만나보았던 사람들, 사업과 연관되었지만 자주 보지 못하는 사람들, 좋은 기억이 있어 잊지 않고 싶은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흔히 말하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6단계면 모두 연결될 수있다고 하는 데, 페이스북을 통하면 3-4단계면 될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온라인 사교성은 전적으로 그 사람이 쓰는 글로 나타난다. 그래서 인터넷시대에는 글을 얼마나 친근감있게 쓰는 가도 중요하다. 온라인글은 책을 쓰거나 논문을 쓰는 글과는 다르다. 짧고 유머있으며 유익하거나 감성있는 글이 사이버공간에서의 사교성이다. 사이버사교성의 중요성은 오프라인 사교성이 갖고 있는 숫자적, 지리적 한계성을 뛰어넘을 수있다는 점이다. 이는 영업을 해야 하는 사장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대부분의 펜션들은 블로그를 통한 영업이 주를 이루고 있고, 수많은 쇼핑몰들은 온라인 활동이 거의 전부이다. 아무리 아날로그제품을 판다고 해도 온라인사회를 무시할 수는 없다. 나같은 경우도 온-오프라인을 겸한 모임이 여러 개있다. 이러한 모임은 주로 온라인에서 서로간에 호감을 갖게 된 사람들이 모이고, 서로 정보와 도움을 주는 식이다.



그리고 이 모든 사교성의 중심에는 재미, 유머가 있다.

“오바마가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실수로 선서를 잘못하는 바람에 취임식이 끝난 뒤 백악관에서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서를 다시했다. 이때 오바마는 선서를 다시 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다시 한 번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난 이렇게 말과 글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들 부럽다. 그래서 가끔은 유머에 대한 책도 읽기도 한다. 유머란 살다보면 어색해지고 화내야 할 때 사람들에게 여유를 준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넘어갈 수있는 힘이 있다. 그래서 유머가 있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것은 나를 남에게 열어보이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그 상황을 즐길 수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본인이 원하면 수만명의 사람들과 동시에 교류할 수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그 사교성에는 사람을 좋아하는 천성만큼이나 글을 쓰는 훈련, 상황을 부드럽게 넘길 수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렇게 사교성을 넓힐 때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나에게 ‘좋은 우연’이 일어날 확률은 훨씬 더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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