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나는 사람을 잘 쓸수 있을까?
(1화)

야, 홍재화씨, 오늘 저녁 부서회식있으니까, 그렇게 공지해!

예, 부장님!



그렇게 해서 89-90년 사이의 어느 날 코트라(KOTRA) 홍보출판부는 여느 때와 같이 온 부서원들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화기애애한 식사를 한 후에 당시에 처음 생겨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신종 엔터테인먼트인 ‘노래방’으로 2차행. 모두들 전작이 있어서 거하게 취한 상태에서 노래방에서 또 한잔을 더 하다보니 기분들이 매우 좋았다. 이럴 때 막내인 내가 분위기를 살린다고 한 마디했다.



“저~~, 부장님, 야자타임하실까요?”

“그래, 좋지 야자타임하자. 근데 딱 5분이다.”



아무리 술을 먹었지만 모두들 쭈볏쭈볏. 하지만 야자타임을 하면 내가 최고 윗사람이 된다.



“야, 박부장! 너 말이야, 그래도 내가 아무리 못해도 서류는 던지지 마라!”

“아, 예, 재화형~”



그다음부터는 그야말로 위아래가 바뀌어서 평소에 하지 못하던 말들이 다른 고참들의 입에서 더 높은 과부장님께로 나간다. 그러면 과부장님들은 ‘아이고, 형님들 잘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쫄다구들을 위한 분위기가 막 무르익어 가는 데, 갑자기 짱~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더니 나의 직속과장님의 험악한 목소리.



“야이, 짜식들아, 니들이 아무리 술처먹었어도 위아래는 있어야 할거 아니야.”



엇 뭔일, 그러더니 소주잔이 또 날라온다. 째애앵~ 우장짱~

으이그 무시라. 일단 분위기 확 가라앉은 상태에서 모두들 긴장. 과장님의 얼굴을 보니 아까는 분명 취하셨는 데, 지금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면서 눈동자는 이글거린다. 덩달아 다른 쫄병들은 술이 확깨고, 다른 과장님들은 뭔일인가 놀란 듯이 쳐다본다.



그리고 잠시후, 상황파악이 되었다. ‘야자타임하시죠?’ 할 때 이과장님께서는 화장실에 가시느라 듣지 못하였고, 갔다와보니 분위기는 천하에 없는 상놈들 분위기로 바뀌어있었고, 다혈질이 아니신 성격에도 불구하고 화를 참으시지 못한 것이었다. 이 때 박부장님께서 한마디 하셔서 분위기를 재운다.



‘이과장, 왜 이래요! 우리 재미있게 놀고 있는 데,

자자, 앉아요. 야, 홍재화, 이제 야자타임 끝이다. 앞으로 까불지마’



그렇게 해서 잠시 살벌했던 분위기는 부드러워지면서 깨진 술병과 술잔을 치우느라 어수선해졌다. 그렇게 화기애애, 막장, 살벌 분위기를 다 갖추었던 회식이 끝나고 좀 더 길게 하지 못한 야자타임을 아쉬워하며 집을 갔다. 다음 날 아침, 과장님께 단단히 혼날 생각을 하고 출근을 하고 아침 과부장회의를 시작하였는 데, 전날의 살벌한 분위기는 다 사라지고 모두들 박장대소하며 그 어이없는 해프닝을 재미있어 하셨다. 그리고 우리들의 화기애애한 부회식은 쭈욱 계속되었다.



(2화)

해외무역관에서 하는 일중 가장 큰 업무중의 하나는 박람회를 주최하는 것이다. 파나마무역관에 있을 때였다. 박람회 개최는 다가오는 데, 한국관의 설치를 맡았던 업체에서는 개최 전날 밤까지도 ‘한국관’ 장치는 시작도 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파나마대통령과 대사등 주요 VIP들이 방문하기로 되어있었는 데 텅비어있는 한국관을 보여주게 생겼다. 둘러보니까 중국관, 대만관,미국관등도 마찬가지 사정이었다. 그렇다고 한국관의 설치를 맡은 장치업체의 사람들에게 계약서를 들이밀면서 항의해봐야 소용이 있을 것같지도 않았다. 워낙 다른 국가관들도 밀린데다가, 더운 나라들의 특성인 느긋함을 이길 방도가 없으니, 현지 장치업체 노무자들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청소를 해주며, ‘한국관’도 신경써달라고 애원 반, 협박 반 하면서 커피도 사주었다. 그러자 자기네들도 미안했던 지, 자기네들이 급하다고 생각했던 파나마관을 마치고는 우선적으로 한국관부터 설치를 하기 시작하였다. 온 직원들이 달라붙고 나는 쓰레기를 치우면서 설계도를 보고 고칠 것은 현장에서 임기응변으로 수정하고, 장치하다보니까 새벽녘에 겨우 마칠 수 있었다. 결국 대만관이나 중국관은 그날 오후에나 마쳤고, 파나마대통령의 한국관 방문은 무사히 마쳤다. 일을 마치고 나서 윽박지르기보다 같이 일하고 도와주면서 웃으며 밤샌 것이 훨씬 나았다는 걸 실감했다.



그리고 코트라를 그만두고 무역회사를 운영하면서 사장이라는 것에 대하여, 관리자라는 것에 대하여 고민을 하면서 살게 되었다. 그러면서 리더십이나 사장학에 관한 책도 몇 권을 읽었는 데, 그 때마다 생각나는 게 그 때의 일이다. 돌이켜보면 일은 잘하지 못했어도 코트라 생활은 참 재미있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막상 내가 직원을 두어보니 내가 해주는 만큼 직원들은 나하고의 생활을 별로 그렇게 재미있어 하지 않았다. 뭐 구멍가게 수준에서 월급이야 다른 데 만큼 주지 못해도 나름대로 열심히 해준다고 해도 뭔가가 만족스럽지 못해 하는 게 나도 불만이었고.



‘린다 A. 힐’이 지은 보스의 탄생을 보면, “관리자들은 이제 변화하는 ‘심리적 계약’을 따라야 한다. 심리적 계약이란 직장 조직과 종업원간에 존재하는 암시적인 교환관계로 보상, 인정, 업무의 양과 질, 충성심등 서로에게 가지는 암묵적인 기대를 말한다. ……. 이와 같은 심리적 계약으로 인해 관리자들에게는 과제가 생겼다. 근무유형이 다양하고 조직에 일시적으로 머무는 인력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이런 인력들은 조직의 장기적 성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조직에 헌신하려는 마음이 부족하다. 어떻게 하면 이런 부하직원들이 업무에 대한 충성심을 갖게 할 수있을까? 이런 직원들이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직이 훌륭한 성과를 거두려면 직원들의 충성도가 높아야 한다. 이들은 어떤 동기로 업무에 남다른 노력을 쏟을까? 이런 문제들 때문에 관리자들의 어깨는 상당히 무거워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때 모셨던 박부장님이 바로 ‘보스’의 전형임을 알았다. 나도 좀더 일찍 ‘심리적 계약’이라는 단어를 알았다면 내가 더 나아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더 큰 회사를 만들고 조직을 만들어도 굳이 리더가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신인철’이 지은 따라야 따른다‘를 읽으면 그래야 하는 이유가 나온다.



“하지만 더 이상 (정주영, 박정희같이 비범한 사람이 나서서 상식을 뛰어넘는 영향력과 지도력을 발휘하는) 신화는 없다. 신화 속 리더 몇몇에 의지하기엔 대한민국은 너무 큰 나라가 되었고, 한국의 기업, 학교, 공공기관등도 세계인들 앞에 활짝 열린 조직이 되었다. 대신 새로운 유형의 리더들이 뜨고 있다. 부하들을 자신의 업무, 영역, 분야에서의 리더로 키워 멋지게 활약하게 만드는 팀장, 자신의 기업이 고객을 리드하기 보다, 고객이 자신의 기업을 리드하도록 열린 경영을 하는 경영자, 영과의 순간에 앞장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보다 무대 뒤에서 힘껏 박수쳐주고 후배들을 진심어린 가슴으로 안아주는 선배, 바로 이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부상하고 있다. …… 리더가 리더십을 발휘하여, 팔로워로부터 원하는 팔로워십을 발행시키는 데까지이다. 리더십에 인식과 평가의 기준은 사실 리더의 행동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팔로워의 능력발휘, 팔로워십의 발현 수준에 대한 평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리더십은 팔로워십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다. 팔로워십도 마찬가지이다. 제대로된 팔로워십을 발휘해서 리더로 하여금 조직을 올바로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을 원활하게 발휘할 수있도록 하는 것이 그 최종적인 결과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직에 문제가 생겼다. 리더 탓인가? 팔로워탓이인가? 하는 질문이 얼만 우매한 질문인지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결국 부하직원이 편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고, 계획하고, 추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슨 말을 하는 지 열심히 들어주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결과와 과정을 같이 즐기면서 이번 일이 잘된 것은 사장님이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열심히 일한 덕분이라고 편하게 말할 수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된다. 직원들을 그 수준까지 감복시키는 것이 문제이지, 그 이후로는 참 편하게 사장을 할 수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난 그걸 박부장님과 파나마박람회에서 분명하게 보았다.



사진출처 : http://monologue82.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