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전체에 흐르는 분노의 수위가 아슬아슬하다. 시한폭탄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위기감마저 든다. 살기는 훨씬 좋아 졌다. 뭐든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면 손쉽게 얻을 수 있다. 그것이 물질이든 이상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도들이 생겼다. 눈만 뜨면 접할 수 있는 정보가 그렇고 조금만 움직이면 만날 수 있는 문화가 그렇다. 차만 타면 원하는 곳 어디든지 갈 수 있고 TV만 켜면 세계 곳곳을 안방에서 볼 수도 있다. 수도만 틀면 냉온수가 철철 흘러나오는 사실이 나는 아직도 꿈만 같다. 집에서 샤워를 하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뜨거운 물에 머리를 감을 수도 있고 연탄을 갈기 위해 추운 부엌에 나가 가스를 마시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좋다.

읽고 싶은 책은 언제든지 볼 수 있다. 쓰고 싶은 글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다. 넘치는 정보는 필요 적절히 찾아 볼 수 있고 지식을 물어 볼 수도 나눌 수도 있는 공간이 언제나 열려있다. 친구를 사귈 수도 있고 그룹에 가입할 수도 있다. 자신을 자랑할 수도 있고 멋진 친구를 고를 수도 있다. 안 방에 앉아서. 뭐든지 할 수 있다. 뭐든지!!! 그런데 왜? 뭐가 불만일까? 뭐가 부족해서 분노할까?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일까? 사실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분노한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어서 분노한다. 상대적 빈곤!!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하는 일을 왜? 나는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분노를 만든다. 자신만 불행한 것 같은 생각! 자기만 소외된 것 같은 느낌! 혼자만 바보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미치게 만든다.

우리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가족로망스Family romance 콤플렉스에 걸려있다. 남의 가족은 다 행복한데 내 가족만 불행하다는 생각, 나만 불행하다는 생각이다. 페이스 북이나 카카오 스토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즐거운 일상을 올린다. 친구들과 맛난 음식을 먹는 모습, 지인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낸 모습, 멋진 곳에 가서 찍은 사진, 각기 다른 여러 사람들의 일상을 연속으로 보다보면 자신만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이렇게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데 자신만 늘 별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알고 보면 그 사람도 오랜만에 친구 만나 자기도 한 번 찍어 올린 사진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여전히 우울하고 맥 빠지기는 마찬가지다. 몇 번이고 페이스 북을 접었다가 폈다한다. 보면 화나고 안 보면 궁금해서 습관처럼 열어 보고 보면서 외롭다.

연초부터 들리는 뉴스라고는 흉포한 살인마, 어린이폭행, 자신의 이기를 위해 몸부림치는 정치놀음, 국민의 혈세를 뜯어 대기업을 살리는 것이 창조경제라 부르짖는 정부, 이 나라가 싫어 세계적 폭력조직에 가담한 청소년이야기다. 들리는 소식은 전부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일들뿐이고 삶은 더욱 팍팍해지니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작년에도 국민들은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울분을 연일 쏟아냈다. 그 분노는 사건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고 자기 내부에 있는 또 다른 분노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아팠다. 아무리 아파하고 아무리 소리쳐도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들은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으니 분노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노릇이다. 차선을 양보하지 않는다고 삼단 봉으로 차량을 부수고, 애인을 남편을 아내를 자식을 부모를 칼로 찔러 죽인 사건을 접하는 일은 이제 익숙하다.

아무리 충격적인 상황도 반복되면 둔감해진다. 그래서 더 잔혹해지고 더 흉포화 된다. 강화되는 것은 흉악함이고 둔해지는 것은 죄책감이다. 분노도 그렇다. 처음 경험되는 분노는 무섭고 두렵다.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강화되어 더 큰 분노를 만들어 낸다. 감정은 다스려져야 한다. 다스리는 것은 억누르거나 자제하는 것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솟구치는 감정을 해소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의 노예가 된다. 분노를 다스리며 승화(昇華)시켜 나갈 것인지 아니면 분노의 노예로 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시대를 맞고 있다.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