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행복은 어떤 관계일까?
                                                              (딸에게 보내는 경제편지)

과연 우리는 행복해질 수있을까?
난 자유자본주의에 사는 동안에는 그게 무척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건 바로 자유주의의 꽃인 매스미디어와 자본주의의 꽃인 마케터들 때문이라고 보지.



우선 마케터의 경우를 먼저 볼까?

행복이란 게 뭐니? 그냥 쉽게 말하면 현재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거야. 부자면 부자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난 지금이 좋아!’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지. 그런데 일단 우리는 시장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잖아. 그 안에는 무수한 기업들이 있고. 그리고 사람들이 소비를 해야 자본주의가 움직이지. 모든 사람들이 스님처럼 살아봐. 죽장에 삿갓쓰고 있으면 있는 대로 먹고, 없으면 없는 대로 굶어가면서 세상을 돌아다니면 즐기는 사람들이 많으면, 기업에서 만드는 것들이 팔리지 않잖아. 시장이 잘 굴러갈려면 사람들이 행복하면 안되. 끊임없이 왠지 불만족스럽게 해야 하고, 그것을 채우기 위하여 뭔가를 소비하도록 해야 하지. 그리고 그 역할을 마케터들이 하지. 다비트 보스하르트는 그가 쓴 ‘소비의 미래’에서 마케터들을 엄숙하게 비꼬았지. “삶은 더욱 고되고, 더욱 고되고, 더욱 고될 것이다.”. 그렇게 불안감을 잔뜩 불러일으켜 놓고는, 마치 그들이 이 험한 세상으로부터 소비자를 구해주는 구세주처럼 이렇게 말해. “우리가 너희를 고된 삶에서 구원할지니, 너희를 구원할 지니 너희를 구원할지니 ........ ” 그러면서 슬쩍 신용카드를 내밀어. ‘한 번 써보시죠, 외상이에요’. 아, 그럼 아빠도 장사꾼이니까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어야 하냐고? 아니지 아빠의 회사이름이 뭐야? 필맥스 아니냐, 영어로 하면 FEEL-MAX, 느낌을 최대로, 행복을 최대로. 아빠는 좀 다른 장사꾼이야! 뭐가 다른 데? 글쎄~.



그럼 매스미디어는 왜 행복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일까?

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잖아. 그런데 만일 사촌이 땅을 사든, 멋있는 미남에 돈까지 많은 남자하고 결혼을 하든 내가 모르면 배 아플 일이 없지. 그런데 사람들의 ‘알권리’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에 잡혀있는 사람들이 세상의 몰라도 될 시시콜콜한 일까지도 자꾸 대중매체에 크게 낸단 말이야. 옆 집에 사는 사람도 잘 모르는 현대 사회에서 왜 미국의 누구는 몇 천평의 땅에 수영장까지 딸린 집에서 사는 걸 알 필요가 뭐가 있난 말이야.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다보면 세상에는 잘난 사람도 많고, 잘 생긴 사람도 많고, 돈많이 번 사람도 많고, 그런데 난 그들보다 훨씬 못하거든. 자꾸만 누군가하고 나를 비교하게 만드는 거지. 그런데 행복이란 게 물질이 많다고 되는 건 아니야. 정말 행복이란 것은 심리적인 면도 상당히 강해. 근데 그 심리적인 것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바로 ‘남과의 비교’야. 그래서 ‘상대적인 행복’이라는 말도 있어. 그런데 ‘알권리’에 너무 투철한 언론인들 덕분에 ‘몰라도 될 권리’ (이런 게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는 무시되지. 그러다보니 우리는 세상의 모든 슬픈 일도 알아야 하고, 세상의 모든 엄친아, 엄친딸과도 비교 당하게 돼서 기죽고 살게 되지. 덕분에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면 어쩌나, 아프리카에 가뭄이 나면 어쩌나 하며 세계 평화까지 스케일크게 걱정하게 된 것도 고마워해야 할까?



좋아, 그냥 대범하게 무시하자, 세계 평화 그까이거. 나만 행복하면 되지. 그렇게 마음먹으면 행복하게 살 수있을까? 아무리 행복이 심리적인 면이 강하기는 하지만 역시 물질적인 것도 무시할 수는 없어. 언젠가 친구들과 산에 가는 데 한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 ‘재화야, 아무리 부자들도 다 자기 나름대로의 걱정과 고민이 있어.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거야!’ 그러더라고. 그래서 난 대답을 했지. ‘부자도 고민이 있고, 가난한 자도 고민이 있다면 기왕이면 부자가 돼서 고민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말이야.



‘이스털린의 역설’이라는 말이 있거든. '소득이 높아져도 꼭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거야. 그는 1946년부터 빈곤국과 부유한 국가, 그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국가 등 30개 국가의 행복도를 연구했는데, 소득이 어느 일정 시점에서 지나면 행복도가 그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현상을 발견했어. 이스털린은 당시 논문을 통해 비누아투, 방글라데시와 같은 가난한 국가에서 오히려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게 나타나고,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행복지수가 낮다는 연구결과를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지. 그리고 세계행복지수를 보면 코스타리카, 도미니카와 같은 기후조건이 좋은 국가와 부탄이나 방글라데시와 같이 종교적 내세관을 가지고 있는 국가는 1인당 GDP는 낮지만 주관적인 행복지수는 무척 높아. 반면에 이들보다 훨씬 잘사는 한국은 거의 꼴찌수준에 불과해. 그리고 세상사람들은 ‘행복은 소득순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마음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지. 물론 상당히 맞는 말이기는 해. 그런데 이게 국가간의 비교뿐만 아니라, 한 국가안에서 국민들간의 비교에서도 적용이 되. 어느 나라든지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보면 부럽잖아. 그래서 남과 비교하면서 덜 행복해지지.



그런데 또 다른 자료들도 있어. 아까 말한 세계 행복지수에서 주관적 요소 이외에 경제·사회적 객관적 요소를 반영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간 행복지수 비교를 보면 1인당 GDP 순위와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미국에서 1945년부터 200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이 3배 가까이 올랐지만 전국여론조사본부에 축적된 자료를 뒤지다 보니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의 비율은 변동이 없었어. 일본은 1958년에서 1991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이 6배나 증가했는데 행복하다는 대답은 비슷한 비율로 나왔고. 왜 그럴까. 로널드 잉글하트 미국 미시간대 교수가 소득과 행복감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각국의 통계를 모아 분석해 봤더니 기준점이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라는 결론을 냈지. 2만 달러 이하일 때 경제성장이 이뤄지면 행복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그런데 2만 달러를 넘어서고 나면 경제가 성장해도 행복도는 그리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 잉글하트 교수는 이를 ‘경제성장 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불러. 30평대 아파트, 중형차, 대형TV 같은 중산층의 아이콘들이 처음 마련했을 때와는 달리 지속적으로 감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아빠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삶의 방편이 마련되어 있어야,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거지. 물론 위의 조사처럼 꼭 얼마여야 한다는 것은 없어.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소득이 높아질 수록 행복감을 더 느끼다는 거야. 심리학자들은 10%의 소득, 50%의 유전적 요소, 40%는 본인의 의지가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하거든.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행복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지. 모든 것을 100% 다 가진 사람이 없기는 하지만, 어느 한 요소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아빠는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우리 딸들도 돈이나 돈으로 살 수있는 것들에 너무 얽매여도 안되지만, 그 것들이 삶의 바탕을 꾸려가는 데 무척 중요한 요소임을 알았으면 한다. 그 걸 무시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배반이야.

그림 : 조선일보 2010.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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