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와 우파의 경제학 (딸에게 보내는 경제편지)





요즘 우리나라가 좀 시끄럽지? 하기사 우리나라는 항상 정치가 조용한 적이 없지. 그런데 정치인들은 왜 서로 저렇게 나뉠까?



보통 좌파와 우파로 나누잖아! 그건 바로 경제를 어떻게 운영하는 가에 대한 차이에서 시작해. 그러니까 좌파는 보통 사회주의내지는 공산주의서 시작되고, 우파는 민주주의자 내지는 자본주의자에서 시작되었지. 그런데 어느 한 극단은 보기가 힘든 것처럼 지금은 그 구별이 애매모호해. 일단 사회주의 자체는 붕괴되었고, 그 논리의 타당성중에서 상당부분은 용도폐기되었거든. 그렇다고 민주주의나 자본주의의 논리가 완전히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야!

좌익과 우익이라는 말이 정치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혁명기야. 1789년 혁명 직후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의장석에서 보아 오른쪽에 왕당파(보수파)가 앉고 왼쪽에 공화파(급진파)가 앉은 것이 좌우파를 가르게 되고, 이후 1800년대에 마르크스를 좋아하는 지 여부에 따라 다시 한가지 의미를 더하게 되지.



그런데 이 두 개의 정치적 파당을 처음 나누게 된 것은 형식상으로는 ‘왕의 정치’에 대한 거부감에서 나온 거거든. 그런데 그 당시에 왕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신흥 부자들 주축이었지. 세금은 자기네가 다 내는 데, 이미 토지를 기반으로 한 귀족의 신분제에 막혀서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기회가 막혀있었기 때문에 불만이 많았지. 그 이후로 마르크스가 등장하면서 정치세력은 다시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자본가와 노동자로 이분되거든. 그러니까 이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 기본바탕에는 ‘경제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에 대한 인식이 가장 기본이 되는거야. 그러니까 결국 정치와 경제는 전혀 분리될 수 없는 것이지. 둘 다 기본은 ‘국민을 등따시고 배부르게 최고’라는 대 전제가 없으면 안되.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이 단 한마디로 선거에서 이기고 당선되잖아. ‘결국은 경제야, 이 바보들아!’















좌파 (진보파)



우파 (보수파)





국가운영



국가 역할 증대(큰 정부 지향)



국가 개입 최소화(작은 정부 지향)





사회정책



평등과 분배, 복지 중시



경쟁원리에 따른 성과 배분 중시





기업정책



기간산업의 국유화 추진



국유기업과 공기업의 민영화 추진





경제정책



시장에 대한 국가의 통제 및 개입



시장원리에 따라 경제정책 운영

















그러니까 좌파(진보)와 우파(보수)는 결국 가진자와 갖지 못한 자,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고 자 하는 자와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자로 편가름이 되지. 그래서 여권론자 (페미니스트)들이 좌파내지는 진보파로 분류가 되지. 왜냐하면 여성의 지위란 항상 남성의 권위에 밀려서 발전을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거든. 그러니 당연히 진보파에 속하는 것이지.



그런데 대체로 보면 실질적인 구분이 애매해! 가진 자중에서도 현재의 제도를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고, 갖지 못한자들중에서 혁명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거든. 게다가 이제는 이전에 있던 구 소련과 미국간의 이념분쟁도 사라지고 나니 그 차이는 더 미미해졌지.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정파가 바뀌어도 그 나라의 실질적인 경제정책이 바뀌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아. 대체로 그 나라의 관료들이 경제의 흐름을 이끌어가지. 가장 대표적인 게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야.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외교정책, 대외정책이 바뀌지는 않았거든. 이제는 좌우파 구별없이 자기 당의 오래된 구조를 가지고 정권을 다툼한다고 보면 되. 여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제는 충분히 여권이 성숙되었으니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알파걸’들의 등장이 상징적이라 할 수있지.



그럼 별 차이도 없이 왜 그렇게 항상 다투며 합의를 낼 수없냐고? 만일 그들이 서로 대화를 충분히 한다면 합의를 끌어낼 수있을까? 아빠는 그렇지 않다고 봐. 왜냐고? 아빠가 너희를 완전히 설득시켜 본 적이 있니? 내 생각에는 한 번도 없거든. 어렸을 때는 윽박지르기라도 해서 아빠가 원하는 대로 했지만, 이제는 머리가 다 큰 너희들한테 아빠의 윽박이 먹혀들지도 않잖아. 어른들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탁자 앞에 오래 앉아서 토론을 한다고 해도 한 쪽이 온전히 설득될 일은 거의 없어. 왜냐하면 서로 세상을 보는 바탕자체가 달라! 그러니까 같은 세상에서 똑같은 것을 보아도 느끼는 게 달라. 그 이유는 한쪽은 언제나 ‘우리는 착취당하는 자를 대표한다’고 생각해왔고, 다른 한편은 ‘기존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 사회의 안정과 번영에 유리하다’고 생각해왔지. 그런 차이는 단적으로 현재의 ‘한류’가 세계로 수출될 때 보여지는 관점의 차이로 나타나지. 한쪽은 그게 마치 한국의 문화가 세계를 정복할 것처럼 흥분하면서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자랑하려고 하는 반면에, 다른 한쪽은 여러 명의 아이들이 마치 기계처럼 똑같이 움직이면서 개성을 상실한 노예계약의 결정론처럼 보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차이는 그 모든 논리의 기본이고, 어느 쪽의 논리도 완전하게 옳거나 틀린 경우가 없으니 쉽게 합의를 이루어낼 수 없는 건 당연해. 게다가 항상 의견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극단주의자나 원칙론자들인 경우가 많아. 왜냐하면 그들이 따라가고자 하는 ‘~~주의’에 가장 충실하거든. 그런데 자기들의 원칙을 깨고 상대방과 합의를 해봐, 그럼 바로 ‘역적’소리를 듣게 되니까.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좀 심해보이기는 하지. 그래서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면도 많아. 어떤 사안에 대한 서로간의 합의점을 최대한 찾아내고, 그리고 모자란 부분은 다수결의 원칙으로 하면 되거든. 그래도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대체로 민주주의를 위하여 투쟁했던 사람들이 많아.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이해도가 깊지. 게다가 우리 민족은 ‘인본주의 사상’이 있어서 사람을 무척 존중해. 좀더 기다려보면 그들도 결국은 민주주의 원칙에 좀더 접근하게 될거야. 정치의 상대방을 인정하면서 자신들이 국민들한테 부여받은 숫자만큼 권한을 행사하면 된다는 의식이 높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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