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 공기업원론

저 자 : 김 용우

남의 술은 못먹어 보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코트라에 들어갔을 때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런데 전공시험을 실제 전공인 무역이 아니라 스페인어로 보았다. 워낙에 경쟁률이 세서 붙을 거라고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떨어져도 할 말이 있는 스페인어로 본 것이다. 그런데 운이 좋아 붙었고, 막상 들어가보니 다른 합격자들 역시 나하고 크게 다르지 않은 고만고만한 사람들이었다. 그 때는 입사시험 날이 여러 군데가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사람이 여러 군데 붙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것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나는 그 날 대기업과 코트라가 같은 날이어서 어느 곳을 볼 까하다가 코트라를 보았다. 대기업에 들어가서 총수의 머슴이 되느니, 모든 사람의 머슴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지만, 암튼 젊은 나이에는 그랬다. 지금처럼 내가 돈을 벌기 위하여 애를 쓸 줄 알았다면 증권사나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나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하고.



“공사형의 공기업은 공공성과 기업성을 가장 잘 조화시킨 독립적 특수법인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공사는 20세기의 새로운 기업형태로서 처음에는 영.미계 제국에서 시작된 제도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일본과 같은 대륙계 국가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 많이 활용되었다. 공사는 국유화기업처럼 정치적 이념에 따라 설립되기도 하였지만, 경제적 필요에 따라 설립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민주국가의 공기업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민주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가지 원칙 간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하여 생겨난 제도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공사형태의 공기업은 주식자본조직을 갖지 않는 법인형 공기업을 말하는 데, 주식자본을 갖지 않는 이유는 전액 정부출자기관인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공사의 주인은 정부 하나뿐이므로 주식회사와 같이 자본을 여러 개의 주식으로 쪼갤 필요가 없고, 이에 따라 주당 금액을 산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공기업의 경우에는 기업적 목적과 동시에 공적 목적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에 …. 공적 목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초래된 것으로 간주되는 비용은 국고로부터 보전된다.”



지금 돌아보아도 난 코트라 생활을 정말 즐기면서 하였다. 그리고 누구보다 오래 있을 줄 알았다. 우선 내 성격에 딱 맞았다.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었거니와, 남에게 큰 소리 칠 일도 없었다. 우선 회사의 규모가 크지 않아 사업비 자체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인허가권이 전혀 없으니 남이 나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일도 없었다. 그래서 난 코트라를 ‘본의아니게 깨끗할 수밖에 없는 조직’이라고 한다. 정말 남의 돈으로 술먹어 본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하는 일은 우리나라 기업의 해외 수출을 돕는 그야말로 항상 남 좋은일만 하였다.



자신을 위하여는 거의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위축되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코트라는 공기업의 공공적 기능을 가장 잘 구현하는 공사형의 공기업이다. 그 때 이런 책을 읽었다면 좀 더 잘했을 지도 모르는 데, 이제와서 읽다보니 때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그들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진 것만도 행운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