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패션, 북한산 패션



한국의 패션은 한국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흔히 패션하면 ‘여성의류’를 주로 한 예술적 감각과 실용적 감각이 잘 어울려진 옷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불편하더라도 아름다워야 하고, 여성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었다. 실제로 전 세계의 패션을 이끌어가는 곳은 뉴욕패션위크를 중심으로 한 뉴욕, 이태리 원단시장을 바탕으로 한 밀라노 패션, 오튀쿠트르를 중심으로 한 파리패션이 여성복 위주의 패션쇼장임이 우연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패션산업을 본받아 서울패션위크를 개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의 패션산업은 ‘아름다운 여성복’이라는 패션의 개념에 반항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패션이라 함은 ‘등산복’이라고 보아야 할 때가 점차 다가오고 있다. 가장 큰 의류업체는 여성복 메이커나 브랜드가 아니라 아웃도어 브랜드인 ‘노스페이스’이다. 노스페이스는 아웃도어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연매출 5000억원을 넘어섰다. 국내 의류시장에서 한 브랜드 매출이 5000억원을 넘는 건 의류는 제일모직 `빈폴`이 있을 정도다. 2010년 이랜드와 제일모직에 이어 LG패션과 코오롱 패션사업군이 ‘매출 1조 클럽’에 가입한 것도 아웃도어 시장 활성화 덕이 크다. 특히 LG패션은 국내에서 아웃도어 브랜드 라푸마를 성공적으로 꾸려나가면서 최근 프랑스 본사와 손잡고 중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기능성에 더해 패션성도 강조되면서 아웃도어는 단골손님이던 산행길의 중년남성뿐 아니라 남녀노소가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입는 평상복으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대 초만해도 등산복이 그리 널리 입히지 않고, 시장이 협소했을 때만하여도 등산객들의 색상은 거의 검은색으로 획일성을 띠었지만, 이제는 여성들이 산을 많이 찾으면서 패션성이 매우 강조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까다롭다고 악명이 높은 보라색계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그만큼 한국인의 색감이 발전했다고 보아야 한다.



등산말고도 또 하나의 새로운 트렌드인 ‘걷기열풍’은 아웃도어 패션이 앞으로 더욱 활기를 띠게할 중요한 요소이다. 이전에는 ‘산에 가면 반드시 정상을 올라가야 한다’는 식의 아웃도어 활동이 그저 자연을 즐기면 건강도 챙기는 ‘가볍게 걷기’가 젊은 층에서도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보여주는 과시적 레져활동, 뭔가를 이루어야 하는 목적이 있는 레져가 아니라 그저 천천히 즐기는 슬로우레져, 자연 그 자체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연주의적 레져가 패션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주의적 경향은 필맥스의 ‘맨발로 걷자’, 프로스펙스의 워킹화 ‘W 시리즈’등으로 신발업계에서 이끌어 가고, 의류에서 뒷받침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제 전 세계에 한국만의 새로운 패션동향이 생기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가 서양의류인 ‘양복, 양장’으로는 세계 패션의 흐름을 따라갈 수는 있지만, 선도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새로 불기 시작한 패션, 기능성, 자연주의, 슬로우레져등이 결합한 ‘북한산 패션’을 발전시킨다면 한국은 새로운 경향의 패션메카가 될 수있다.



섹스앤더시티에서 캐리브랜드 쇼가 ‘내 지미추(구두)를 잊어버렸어요’가 뉴욕패션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라면, 이효리가 ‘내 등산복어때요?’하고 북한산을 누비는 게 한국 패션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적합할 수있다.